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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바라 May 27. 2023

이 나이에는 조울증 잘 안 걸려요

글쓰기 좋은 질문 642 (3)

524. 가장 최근 병원에 갔던 경험을 묘사하라



병원 안은 하얗고 반짝반짝 윤이 났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독서실처럼 고요했다.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의 대기실은 항상 그렇다. 누구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원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얌전하게 정자세로 앉아 있는다. 일행이 있어도 아주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대화할 뿐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으로 가득한, 특히 어린 아이와 노년층이 많이 찾는 이비인후과나  정형외과의 시끌벅적한 대기실과는 다르다.


카운터에 이름과 예약한 시각을 말하자 접수원이 코팅한 종이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다.


빳빳하게 코팅된 A4 종이를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았다.  이제 막 비닐을 뜯은 듯한, 새 소파의 감이 부드러웠다. 


의대나 의전대 동기 셋이 돈을 모아 최근 개업했으리라. 개업 전 세 친구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이 A4 용지의 공지사항을 작성했겠지.


'초진은 40-50분 상담으로 진행되며, 진료비가 일반적ㅇ.로 4-5만 원이 나오지만 그 이상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거 낭패군.

나는 그냥 평소 먹던 약만 타가면 되는데, 쓸데없이 4-5만 원 돈을 날리게 생겼다.


근데 이걸, 예약하기 전에 얘기를 해줘야지, 초진 받으러 이미 병원에 왔는데 지금 말해주면 무슨 소용이 있는 거지?


멀더라도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갈 걸. 괜히 가까운 데 찾아서 왔나, 후회하고 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사투리 섞인 앳된 목소리가 나를 맞는다.


또 낭패다.


선생님이 생각보다 너무 젊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이랑 안경 밖에 안 보였지만 아주 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요새는 어느 과든 의사가 대부분 나보다 젊다. 그들은 별 생각 없겠지만, 열등감이 있는 나는 나보다 어린 의사를 만나면 괜스레 스스로가 부끄럽고 움츠러든다. 나도 참 나다.


상담은 20여 분만에 끝났다.


이미 오랫동안 병원 진료도 받고 있었고 약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의사는 나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먹던 약을 갖고 갔더니 이 약과 똑같은 약을 지어 줄 테니, 2주 정도 후에 와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 기억에 남는 말  문장


'이 나이에는 조울증 잘 안 걸려요.'


그렇지. 나는 의사의 나이를 짐작만 할 뿐이지만 의사는 내 나이를 알고 있지. 순간 또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진료실을 나왔을 때, 다른 여자 환자가 접수원에게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아. 약국 안 가도 돼요? 여기서 약을 바로 주시는 거예요?"


나는 그 쪽을 쳐다보진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여자 환자가 매우 놀랐고 심지어 약간은 감동까지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서 4만 원 정도가 나왔다. 종이에 써있던 초진 진료비의 범위 에선 그나마 가장 낮은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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