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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영감 Feb 07. 2017

슬픔도 웃음거리가 되는 아이러니

#133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켄 로치)

영화는 ‘Ridiculous' 로 정의된다.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 고지식한 기준, 법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 이토록 답답한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노나 서러움 따위가 아닌 'ridiculous' 바로 '우스꽝스러움'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상식을 벗어난 그들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한다. 우스꽝스럽다고.


의사는 다니엘 블레이크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일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원칙만을 내세운다. 지극히 사실적인 서사엔 반전이나 역전 같은 요소는 없다. 그가 했던 도전과 반발 중에서 가장 위대한 행보는 무력적인 거나, 폭력적인 거나,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위같은 것도 아닌 고작 벽에 적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일이다. 그러나 그 혁명의 씬은 짧은 시간 동안에 사람들의 응원을 사고 경찰에게 제압되며 우스꽝스럽게 표현된다. 우스꽝스럽다. 정부의 원칙, 절차, 다니엘의 반항 모두 우스꽝스러운 일로 비춰진다. 슬픔마저 우스꽝스러운 게 되어버리는 지독한 현실은 영화를 이루는 주된 역설로 작용한다.


때로는 상어보다 코코넛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상어가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코코넛은 법을 지키는 일이다. 의외성이 가지는 잔인함.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죽인다. 국민을 지켜야 할 법이 국민을 죽인다.

결과가 중요한 사람들에게 과정을 강요하는 것은 새로운 유형의 폭력이다.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그 과정 속에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이 얻은 게 있다면 아마 악법도 법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공허의 시간들 뿐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끝을 본다. 그 끝은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에 별이 되어 맺힌다. 정말이지 질리도록 슬프고 완벽한 결별.

글_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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