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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Mar 08. 2017

잘 지내고 있을까?

이별에 대한 고백

     울면서 잠에서 깼다.


    꿈에서 너는 내게 사과를 했고 나는 그것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하던 공연을 하며 꿈에서 깼다. 1년 가까이 연락이 되지 않던 너는 돌연 듯 나타났고 내가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라는 눈빛을 보내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아무 일 없던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아무 일 없던 듯 그 사이에 낄 수도 있었겠지만 갑자기 나타난 네가 반가우면서도 얼마나 미웠는지, 내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었는지 알아줬으면 해서 알게 모르게 원망이 서린 눈빛을 보냈다. 슬그머니 다가온 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미안해, 그동안 일이 좀 많았어.'라고 했고 나는 너의 어깨를 툭치며 '그랬어? 다음부터 걱정은 시키지 마'로 그 순간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고는 함께 했던 동아리 활동의 공연을 하러 갔고 너는 늘 그렇듯 매서운 눈빛으로 공연을 리드해 나갔다.


     1년 만에 만난 네가 무탈하게 잘 살아있어서 안도감을 느껴서일까, 2년 만에 다시 한 너와의 공연이 행복해서였을까, 아니면 이 모든 순간들이 다 꿈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마음도 진정되지 않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내가 했던 생각은 단 하나,

'잘 지내고 있을까?'


     이별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이별(離別)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을 의미한다. 이젠 언제 어디서나 메신저로 연락할 수 있고 화상채팅으로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물리적 이별은 이별이라 부르기도 애매해졌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상대방이, 상대방의 마음속에 내가, 더 이상 커지거나 그대로가 아니라 더 작아지게 될 때, 나는 그때가 진정한 이별이라 생각한다.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커서) 처음 맞이한 이별은 고3 때였다. 친구의 자살소식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학원도 같이 다녔고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해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다. 학업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꽃봉오리 같은 인생을 져버리고 말았다. 많이 울었던 당일과는 달리 그 이후 한동안은 그것이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분간하지 못했다. 층마저도 달라 평소에는 잘 마주치지 않았고 고3은 동아리 활동에서도 제외되어 당연히 그 친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 친구의 빈자리를 느낄 일이 없었고 내가 그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이 이별을 인정하지 않고 밀어내기만 했다. 온 힘을 다해 현실을 부정하던 고3의 어린 나는 주변에 귀를 막은 채로 그녀의 장례식도 가지 않았고 이별을 밀어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비로소 그 친구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었을 때, 미리 찍어놓은 졸업 사진에서만 그 친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이 이렇게 잔인함을 깨달았을 때, 나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한참을 울었고 세상과 단절하는 날들도 종종 있었다. 옆에 있지 않다는 공허함보다는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친구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당시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소외계층을 알아가고 도와간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당장 내 옆에 있던 친구에게는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별을 밀어낸 시간만큼 더더욱 괴로웠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친구의 기일이 다가오면 홀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어디도 나가지 않고 조용히 방안에서 책을 읽는다던가 이제는 몇 장 남아있지 않은 그녀의 사진을 들춰본다던가. 그렇게 온전히 그녀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길마저 함께 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홀로 눈물을 흘리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도 있었다. 어느 순간 네가 나를 보고 있다면 '못 봐주겠네'하며 딱콩 꿀밤을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못난 짓을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너를 힘들게 했던 이 세상을 바꿔보도록 할게. 하늘에서 잘 지켜봐 줘!'라는 약속을 했다. 그녀의 기일은 내가 1년 동안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는지 얘기하고 너를 원 없이 그리는 날이 되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네가 더 커지지는 않더라도 더 작아지는 건 막으려고.


     이성과의 이별 중에도 굉장히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교제가 끝이난 후 다시 친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이가 있는데 한 번은 너무 아쉬워 차라리 사귀지 않았었으면 친구로나마 남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한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길거리를 걷다가 생각나거나 느낀 점은 바로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는데 나에게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글감이 생각났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을 파고드는 문장들만으로도 나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해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았고 좋아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인간으로서 마음에 품기 시작했다. 우리의 연애가 끝난 뒤에 더 이상 그와 연락하진 않지만 SNS를 통해 그의 글을 계속해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그의 글마저도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그때 알게 되었다. 이런 걸 팬심이라 하는 건가. 그냥 이런 이별도 있었다고.


     누군가를 인간으로서 마음에 품고 안 품고는 이별하는 순간에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물리적 이별에서도 가벼이 느낄 수 있고 그것이 감정적 이별이라면 파장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 안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에 따라 그 파장의 크기는 어마 무시해진다. 그러고 보면 이별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일 일어났을 때 네가 꿈처럼 다시 돌아오지는 않아도 살아있다는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너의 존재는 내게 너무나 커서 나는 그저 너의 동굴생활이 끝나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어. 이건 이별로 잇기 싫으니까. 이렇게 해야 내 마음속의 네가 더 작아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빨리 돌아와라,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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