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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Nov 11. 2017

서른 즈음에

인생 여행의 중간 지점까지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만 스물일곱이 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만 스물일곱의 생일 직후부터, 곧 계란 한 판을 채우는 서른이란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인생 여행의 중간 지점이 거의 다가오고 있다.


    내게 '서른'은 한 층 더 성숙해야 하는 나이처럼 느껴진다. 평생을 감정에 인색하지 않은 것이 덕이라 여기고 살아왔으면서도 성숙한 사람은 본인의 감정을 숨기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어디론가부터 머릿속에 박혀왔다. 기쁜 일이 있어도 별거 아니라는 듯 쿨하게, 슬픈 일이 있어도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내게 기쁜 일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슬픈 일이 있어 나를 축하해주기 아주 힘들 수도 있으니까. 나는 슬프더라도 그 슬픔이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하면 안 되니까.



    여자 나이 서른이 되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따라온다. 아마 이건, 엄마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생긴 감정일 것이다. 엄마는 엄마나 지금 내 나이일 때 아빠와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다. 그때의 엄마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꽤나 잘 나간 듯했다. 엄마의 부유하지 못한 유년시절을 유쾌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자식들에게 같은 경험을 해주고 싶지 않았고 결국 엄마의 부모님께 나를 부탁했다. 나는 그렇게 5년간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며 주말마다 외가댁에 오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이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릴 적 모습이랄까-


    내가 여섯 살이 되면서 엄마는 나를 엄마, 아빠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한동안 일과 육아 모두를 얻으려 했지만 출판사 일에 시간이 많이 들어갔던지 머지않아 엄마는 자식을 위해 출판사를 접고 나와 동생이 집에 없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원하던 직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식들에게 남의 옷을 물려다 입히기보단 새 옷을 사 줄 수 있었고 비싼 스테이크는 아니어도 떡순이 딸이 좋아하던 무지개떡을 마음껏 사줄 수 있었다. 엄마는 그걸로 만족했다. 나와 동생이 커 가면서 교육비가 늘어나게 되었고 엄마는 우리 스스로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고 밥을 덥혀 먹을 수 있을 만큼 컸을 즈음 새로운 직업을 구했다. 여전히 엄마가 원하던 직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배우고 싶다는 것은 다 배우게 해줄 수 있었다. 엄마는 그걸 행복으로 여겼다. 비록 엄마는 사고 싶은 옷을 사지 못했지만.


    내게 서른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서른에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면서 엄마가 좋아하던 일을 포기해야 했고, 당신의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자식들에게 되풀이시키고 싶지 않아 하루 종일 고생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들어가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이들이 들을까 힘들다는 소리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잠에 들고 난 후 안방에서 조용히 울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엄마였다면, 잘 버틸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로서는 못 버텼을 것이다.


    엄마도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소녀였다는 점에서는 나는 엄마를 아주 많이 닮은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남편과 자식을 배려해 본인의 희생을 선택한데 비해 (아직 남편도 자식도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욕심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서른 언저리에 가족을 꾸리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던 가족과 커리어 모두를 쥐고 손아귀에 힘이 다 사라질 때까지 어느 한쪽도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서른은, 내게 모든 걸 포기하는 시작점으로 다가온다.



    서른이 되면, 이렇게 감정에도 인색해져야 하고, 아니 최소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어쩌면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곧 서른인 지금 나이에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른이 되기 전에 최대한 내 감정을 아껴주며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해봐야 한다는 이유로 나를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동시에 서른이 되었을 때, 내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진 않을까 너무나 두렵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실수하고 후회하고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성숙해야 할 것만 같은 서른은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고, 과연 그 몇 년 사이에 내가 생각해오던 그 서른의 모습이 되어있을지 걱정이 된다. 서른이었던 내 멘토처럼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려나- 커리어면에서도 조금은 성장해 있어야 할 텐데. 서른이 되어서도 양은 냄비같이 활활 끓는 성정이나 감정에 과하게 솔직한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어찌해야 하지.


    서른을 넘긴 직장 동료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서른이 되면 뭔가 있을 거 같아 보여도 사실 별거 없어. 스물아홉을 넘겼을 때랑 다를 게 없는 거 같아. 또 다른 1년이 시작되고 나이가 한 살 더 먹을 뿐이야.

나의 고민을 100% 해결해주는 말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만 하는 고민은 아니구나.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도 아무도 내가 서른이 되었으니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스물일곱의 나를 조금 편하게 놓아주어도 되는구나- 스물일곱의 나를 조금 더 아끼고 소중히 해줘야겠구나-



    여전히 나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고 언젠간 포기해야 할 것들이 생길까 두렵지만 그 모든 것이 서른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랫동안 믿어왔던 것에 반하는 것이라 과연 성숙함이 감정을 숨기거나 감정에 인색해야 한다는 뜻일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는 것만 조금 자제해도 성숙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기기로 했다. 언젠간 내가 아끼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그 날이 오더라도 그건 내가 더 아끼는 무언가를 위해서 일거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고 매일매일을 발전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노력하기로 했다. 모두 닥쳐봐야 아는 일들일 텐데 당장 지금부터 걱정하고 나를 괴롭힐 필요가 없으니까-


    오늘은 자기 전에 책을 한 권 읽고 자야겠다.



맑고 밝은 느낌의 사진 몇 장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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