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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Aug 23. 2020

질문의 굴레

얽혀있지 말자.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살면서 꽤나 많은 질문들을 받는다. 전부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도.


몇 살이니? 학교는 들어갔니?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

고등학교는 어디로 가니?

수능 잘 봤니? 어디 대학으로 가니?

(남자) 군대는 언제 가니?

졸업은 언제 하니? 취업은 했니? 얼마나 버니?

결혼은 언제 하니? 애는 언제 낳니?


그 후엔 질문의 대상이 나의 자식이 되어 같은 질문들이 꼬리잡기 하듯 다시 시작된다.


숨이 턱 막혀왔다.


     질문을 주욱 곱씹어보니 여기에 답하려면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대학을 가야 하고 (남자) 군대에 가야 하고 졸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그다음엔 결혼을 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애를 낳아 다시 돌아오는 첫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인생만이 옳은 인생이라 내 귓가에 계속해 속삭이는 듯했다. 대답이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다행이라 여기고 덜 답답해해야 하는 걸까.


     질문자가 듣고 싶어 하는 답안이 이미 정해져 있는 답정너 질문들이라 더더욱 숨이 막혀왔다. 첫 두 질문을 제외한다면 반에서 상위권에 들어야 하고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남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으며 졸업도 (제 때) 해서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가져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물론 그 좋은 사람도 모범 답안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볼 때 적절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그리고 그 아이가 같은 답을 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모범 답안이 아닌 답을 할 경우에는 당연한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혹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제 맘대로의 요상한 척도로 나를 판단하는 듯한 시선과 함께 왜?라고 되물어온다.


     나의 부모님은, 아빠 엄마는, 내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 압박을  적이  번도 없었고 명문 사립고에 진학하라 강요한 적도 없었다. 휴학을 하게 돼서 졸업이 늦어지고 타지에서 적응을  못해  기대보다 성적이  나왔을 때도, 취업이 조금 늦게 되었어도, 남들보다 시작선이 달랐으니 조금  시간이 걸리고 조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꾸준히 해보자 격려를 해줬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데다가 우연찮게 내가 원해서  선택들이 사회 대다수가 생각하는 모범 답안과 일치해서 일까 얼마 전까지  질문들이 주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년만에 만난 어르신들께서 성인이  내가  삶에 만족하고 있는 지보다  키가 몇인지를  궁금해하기 전까지는.


     여행지에서 만난 S는 또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우선적으로 군대를 갔고 전역 후에 배낭 하나만 메고 유럽여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직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걸 굉장히 조심스럽게 얘기하던 S의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으면서 무슨 얘기를 들어왔길래 그렇게나 조심스러워했던 걸까. 배낭 하나만 달랑 들고 떠나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지만 여행 이야기를 해주는 내내 그의 표정은 오랫동안 갖고 싶던 것을 가진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했다. 그가 이 여행에서 추억하는 건 굶주렸던 순간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일 테니까. 몇 시간 남짓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마음이 좋아져 여행의 모든 순간이 그에게 굉장히 소중했다는 게 절로 느껴졌다. 귀중한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단 생각을 하던 찰나 내가 이미 그의 여행 일부분이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S의 모습이 거미줄을 벗어나 훨훨 나는 나비처럼 느껴졌다.


: S에게는 이런 풍경들을 보고 느끼는 시간들이 행복했을 것이다.


     성인이 된 후의 우리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통해서이건 아니건)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꿈꾸던 이상적인 미래가 아닐까.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갖는다는 건 필수가 아니라 선택 이어야 하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최고일 텐데. 질문의 굴레에 얽매이다 보면 남이 정해놓은 “모범” 답안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 꼭 해야만 하는 미션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윗세대가 던지는 요상한 질문들에 모범 답안을 내느라 우리를 옥죄이면서 우리의 꿈을 남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까지 숨기고 밀어내는 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내 인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만 하는데.


     어떤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인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자신만이 정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만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면 대다수처럼 대학을 다니지 않더라도 대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살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다.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고살아야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파고들어야 행복하다. 남들의 시선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만 알 수 있다.


: 무릎팍도사 황석영작가 편에 나왔던 구절


     어떻게 해야 조금 더 당당하게 나를 존중받을 수 있을까. 대학에 가지 않아도,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아니어도, 우리가 행복한 것이 최우선시되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동의하지 못할 때마다 우리 아빠는 날을 세우고 대적하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의 위치에 놓여있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렇게 해보려고. 이미 나는 내 질문의 굴레를 어느 정도 겪었고 이제는 내가 질문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조금 더 건강한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니?

요새 네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이니?

네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니?


내가 관심 있는 건 그들의 학벌과 연봉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그들도 나의 표면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안의 내 모습을 더 궁금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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