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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2. 2024

시저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속편의 좋은 화두를 제시하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2024) 리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2024) 같은 영화야말로 할리우드가 관객을 현혹할 시각적 볼거리에만 골몰해 있지 않고 어떤 스토리텔링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서사로 구현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일컬을 수 있다. 리부트 시리즈로 거의 완벽한 결과물을 선사했던 직전 <혹성탈출> 3부작('진화의 시작'(2011), '반격의 서막'(2014), '종의 전쟁'(2017))에 이어서 7년 만에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와 더불어 우려도 품었을 관객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세대를 거듭하여 이 세계관이 계속해서 전작을 계승하고 후대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내게 이건 꼭 <토이 스토리 4>(2019)가 나올 때 '이전 삼부작에서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나' 싶었던 기분과도 비슷한데, "이 시리즈의 시작을 "장난감에게 언어를 주자" 같은 착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토이 스토리 4>는 "장난감에게도 삶을 주자"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개봉 당시에 쓴 적 있다. 그러니까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범위를 그저 '토이 스토리' 정도로 생각하면 삼부작으로 충분하지만 특히 '보 핍'을 중심으로 누군가(사람)가 주인인 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로 간주하여 기획은 충분하고도 필연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스틸컷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시작하고 맷 리부트 감독이 매듭지은 직전 3부작을 '시저'(앤디 서키스)를 중심으로 하여 실험실에 갇혀 있던 유인원이 해방을 그려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면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신석기에서 청동기 사이로 보이는 유인원 초기 문명을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시저가 남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에 대해 적극적인 화두를 제시하는 좋은 속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와 "유인원은 유인원을 해치지 않는다"가 시저의 규율 같은 것이었다면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는 시저의 정통성을 사칭해서 왕국을 건설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변으로부터 시저에 대해 배우고 무엇이 문명을 지속하게 해 주는지 깨달아가는 이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스틸컷


로마사에 심취해 있고 힘에 의한 강한 왕국을 멸망한 인류 문명이 남긴 흔적('금고'라고 일컬어지는)을 통해 빠르게 이루고자 하는 프록시무스는 평면적이지 않고 나름의 당위성과 논리를 지닌 캐릭터다. 시미안 플루 창궐 이후 수 백 년 만에 그것에 내성이 있으면서도 말을 할 수 있게 된 '메이'(혹은 노바) 역시 이 영화의 주인공 '노아'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분적으로만 요약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마을이 파괴되는 사건이 있은 후 노아의 성장을 다루면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1960-70년대에 나온 5부작 속 일부 이야기를 계승하는 방식으로 인류가 왜 과거부터 전쟁을 지속해 왔고 갈등과 정복의 역사를 일궈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우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납득할 만한 서사적 토대를 갖춘 작품이 뛰어난 시각 효과를 가지고 블록버스터로 구현될 때 그 결과물은 지적 화두를 함의하면서도 즐길 가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여전히 시저의 잔영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앞으로의 서사 확장을 염두에 둔 좋은 교두보로 기능한다.


*<혹성탈출> 시리즈 전작들은 디즈니플러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s://disneyplus.bn5x.net/4P93Y1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국내 메인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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