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스노트: 라스트 네임>(2006)에서 야가미 소이치로(카가 타케시)가 자신의 아들이자 '키라'가 된 라이토에게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니 완벽하지 않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인류의 노력이 담긴 산물이라고 일갈하는 대목이 후반부에 있다. 흉악범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어 정의를 구현한다는 발상에 심정적으로는 통쾌하다고 생각하게 될지 몰라도 결국 키라의 독선을 낳고 완전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영화 <범죄도시 4>(2024)에 특별출연한 권일용 교수의 작중 발언도 위와 비슷한 맥락처럼 보인다. 명문화된 법이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도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즉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그들을 잡아내고 사회안전망을 지키는 일이 바로 경찰이 하는 일이라며 마석도(마동석)의 '소탕 작전'을 승인해 주는 대목이다.
영화 '범죄도시 4' 스틸컷
시리즈를 거듭하면서도 포스터에 반복 기재되는 '싹 쓸어버린다'라는 문구가 지시하는 것처럼 <범죄도시> 시리즈의 목표와 목적은 명확하다. 게다가 그 자체로 실화 기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 사건 등에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아 기획되고 있는 이 시리즈의 연출 및 제작 방식을 보면 권일용 교수의 특별출연도 자연스러운 맥락처럼 헤아려진다. 영화가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끊임없이 상기한다는 뜻이다.
영화 '범죄도시 4' 스틸컷
흔히 '(배우의) 이미지가 너무 소모된다'라고 하거나 '똑같은 연기만 한다'와 같은 표현을 할 때 그건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간편한 단평일 수 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오히려 스스로 얼마간의 자기 복제를 감수하면서도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1편부터의 탄생 과정이나, 전편의 반응을 보지 않고 속편 제작에 바로 착수하는 방식, 계속해서 연출 경험이 많지 않은 인물을 감독으로 기용하는 점 등이 그렇다.
반복과 복제 속에서도 <범죄도시> 시리즈는 계속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번에는 빌런 캐릭터 중 하나는 의도한 것처럼 장악력과 판단력이 부족해 보인다. 액션이 벌어지는 공간 중 배경인 비행기 일등석 칸은 특정 시점 이전까지는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과 카메라워킹이 제한적인 좁은 공간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연출이 돋보인다. 주먹 쓰는 일에 능한 형사는 '동기화' 같은 표현을 거의 개그 요소처럼 써가며 디지털 범죄를 상대하는 일에 스스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듯 '판'을 고민한다. 그 결과 <범죄도시 4>도 여지없이 관객몰이에 성공했고, 이 예상되고 익숙한 맛의 액션 프랜차이즈도 이제는 기획력을 다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