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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Dec 29. 2020

그림 연습

20201229

오늘은 열한 시쯤 봄날 같이 따듯한 햇살에 눈을 떴다. 집에서 인스턴트 추어탕을 데워 얼린 밥을 대충 말아먹고 유튜브를 보며 집 청소를 하다가 아는 언니를 만나러 거리에 나섰다. 사실 쉬는 날에는 집에만 처박혀 있는 게 요즘 일상이었는데 오랜만에 외출하니 생각보다 엄청 춥지도 않고 날이 꽤나 따듯해서 좋았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서로 호텔에서 일하는 탓에 시간이 자꾸 어긋나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선물로 집 앞 선물 가게에서 산 예쁜 헤어브러쉬를 주고 커피도 내가 샀다. 내가 일하는 호텔 밖의 사람을 만나니 기분 전환도 되고 정말 좋았다. 항상 참 열심히 산다던 언니의 말에 언니처럼 멋진 매니저가 되려면 아직 더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언니와 헤어지고 내일 체크아웃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객님께 드릴 작은 선물을 사기 위해 코즈웨이베이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사실 최근에 그림을 여러 번 그려 드려서 선물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할머니께서 그림 열심히 그리라고 너무나도 멋진 마커 세트를 받은 게 마음에 걸려 책갈피라도 사 드리고 싶었다. 트램이나 MTR을 타면 금방 가는 거리였지만 운동 삼아 걷기 시작했다. 초저녁이라 그런지 어둡지도 않은 하늘에 달이 걸려 있었는데 높은 빌딩 사이에 걸려 있으니 참 독특하고 멋진 풍경이 되었다. 내 앞 뒤를 빼곡히 메운 인파에서 잠시 벗어나 풍경 사진을 하나 찍었다.

나는 빌딩이 참 좋다. 빌딩의 생김새가 정말 구조적이면서도 빌딩 사이로 연출되는 원근감이라거나 창문에 반사되는 빛의 모양이 참 멋지기 때문이다. 달까지 걸린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초현실적이었다.

책갈피를 사고 집에 다시 걸어와서 오늘 찍은 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물 받은 색연필로 색깔도 입혔는데 아직 서툴러서 명암 표현이 잘 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같이 쓴 펜도 많이 굵었다. 얇은 펜을 하나 사야 할 거 같다. 그림도 내가 쓰는 이 글처럼 매일매일 조금씩 늘었으면 좋겠다. 그림은 나에게 발현된 재능이지만 재능은 나 혼자 쓰고 자랑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재능이 사회에 환원이 되어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전달이 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나에게 가장 직접적인 재능 환원은 호텔을 찾아 주시는 고객님들께 호텔에서의 추억을 떠오르게 해 줄 멋진 카드를 그려내는 것이다. 더 멋지고 더 근사한 카드를 선물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그림 연습을 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내 꿈은 사람들에게 평생 간직할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는 마법사가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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