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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Nov 05. 2022

보금자리를 찾아서

20221105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홍콩에서 거주하지 않습니다. 

근 4개월 전에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로 직장을 옮겨 막 적응 중입니다. 


저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약혼자가 있습니다. 일년 전 홍콩 같은 직장에서 만나 교제를 시작하여 머나먼 미국까지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옮기고 싶은 것은 제 생각이었지만 그 꿈을 이뤄 준 건 제 약혼자였습니다. 먼저 오퍼 레터를 받은 것도,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제 약혼자의 제안이었으니까요.

솔직히 8년 정도 있었던 지긋지긋한 홍콩을 떠나 제가 20대 내내 바랬던 미국으로 옮기면 장밋빛 인생만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인생게임을 아시나요? 사람이 태어나서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고 가정을 꾸리며 점차 성장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만든 보드게임입니다.

미국으로 옮기고 난 후 저는 제 자신이 인생게임 속 아무런 계획 없이 한 칸 한 칸 전진하기만을 기다리는 한 개의 말이 된 것 같습니다. 도와주는 이 없이 약혼자랑 둘이서 모든 것을 이뤄 나가야 하거든요. 


철저한 자본주의, 기회주의, 개인주의 문화를 바탕으로 흘러가는 직장생활이 이렇게 빡셀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라인 스탭으로 일했던 홍콩에서의 직장 생활은 제가 광동어를 못해도 4년간 있었던 짬(?)과 동아시아권 특유의 전우애 덕에 1년차 이후로 빡세다는 생각은 그닥 해 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익숙치 않아서 그런걸까 미국은 하루 하루가 많이 빡센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이유엔 조금 더 올라간 타이틀 탓도 있겠지요. 

첫번째, 직원들 다루기가 힘듭니다. 직원들 개성이 많이 강해서 그들을 다루는 스타일도 각각 달라야 합니다. 두번째, 쇼 앤 텔(show and tell)하기가 힘듭니다. 매니저 미팅이 빈번한데 미국에서의 미팅이란 묻어 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미팅이 끝나고 한 명 한 명씩 돌아가면서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일단 정보를 공유해야 하거든요. 상사의 분위기를 살피고 지시하는 바를 정확히 이행해 나가는 데 집중해왔던 저에게는 이 부분이 무엇보다도 적응하기가 참 힘듭니다. 

세번째, 고객 다루기가 힘듭니다. 하루에 최소 300만원 이상 되는 객실비를 지불하고 오는 '미국인' 손님답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대치에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 싶으면 바로 연락이 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체크아웃 할 때 컴플레인하는 손님들입니다. 자신이 구매한 이 호텔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않았으니 환불해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이거든요. 점잖게 요청하는 손님 뿐이라면 너무 좋겠지만 컴플레인 하시는 고객님들 중 왕왕 감정적인 부분을 표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객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가끔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표현 방식부터 홍콩에서 겪었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솔직해서일까 싶기도 합니다. 

네번째, 영어가 힘듭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계속 영어를 써야 하는 처지에서 성장해 왔지만, 아시아를 떠나 미국에서 사람을 상대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니 여러모로 참 어렵습니다. 그들이 던지는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싶은데, 혹은 갑작스레 보내오는 벨맨과 하우스키핑 그리고 세큐리티 팀의 무전에 즉각 답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미국 문화와 미국 영어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바라는 것만큼 티키타카가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지금을 생각하면 예전에 홋카이도에서 잠시 지냈을 때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어리다는 것을 무기로 일본 문화부터 요리까지 차근차근 배워 나갔거든요. 


길고 긴 하소연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압축하자면... 살아 나가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아시안 음식부터 문화까지 너무 그리운 것도 사실이고 막연하게만 꿈꿧던 미국에서의 삶이 제가 지금까지 그려 왔던 이상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믿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는 순간 설렘은 사라집니다. 그곳이 정말 아름다운 신전이라 하더라도 그곳에서 생애를 걱정하며 매일 매일 원치 않는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면 신전은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지많은 않을 것입니다. 

두번째, 현재 겪는 고난은 결국 미래의 어느 부분에서는 추억이 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이란 발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조금 더 풀어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힘든 것은 미래에서는 "왕년에 말야~" 로 추억될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일단 오늘을 살아 나간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어떻게든 어떻게든 버티기를 거듭한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높은 곳에 도달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습게도 그때 가서는 또 그때 닥친 걱정에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참 좋았는데~" 하는 지금 당장 우리의 상황을 예전으로 놓아버리는 간사한 생각과 함께 말이죠.

세번째, 결국 어느 것이 되었건 우리가 겪는 지금 이 것들은 저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저는 말이죠, 최근에 벨맨 팀 돕는다고 무리하다가 추돌 사고에 휘말렸었습니다. 그 때 겪었던 패닉만큼은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사고 현장에서 발벗고 뛰어오던 인사도 나누지 않았던 직원들부터 괜찮냐고 물어오던 총지배인까지 저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진심을 느꼈고 그것에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느꼈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진심에 벗어나지를 못해 그렇게 힘든 회사를 아직까지도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더더욱 성장해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길 때쯤에는 지금 이 스토리 역시 잠시 꺼내 보는 귀중한 이야기가 되겠지요? 생판 모르는 남을 돕기 위해 발벗고 달려오는 이들을 조우한 것은 평생 독고다이만을 믿어왔던 제 생각을 바꾸는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긍정이란 마냥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긍정입니다. 저는 제 지금 상황이 힘든 것만큼 어떻게든 그것을 받아들이며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제 자신이 근무 1년차 때, 그리고 코로나 때처럼 노력하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말을 포장하는 이유도 제가 힘들어서입니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지금 만큼이나 제가 하는 일을 계속해 나간다면 다른 이들이 그것을 알아주는 것 역시 한순간이라고 말이지요.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나파밸리로 거처를 옮긴 이상 와이너리에 대해서도 제가 올릴 짬이 되었으면 합니다.

구구절절한 하소연 들어줘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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