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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Jan 13. 2022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이들에게

형이 사회를 보던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부르다가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 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이 구절에서 갑자기 울음이 크게 터졌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성도님들은 '심목사님이 은혜를 많이 받으셨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형의 상태를 알던 분들은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었다. 


위의 찬송가 구절은 창세기의 어느 한 장면으로 

고향집에서 사랑을 받던 동생 야곱이 형 에서의 살해위협을 피해

혼자서 멀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 여정 가운데  

차가운 광야의 밤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어 꿈을 꾸는 내용이다. 


야곱이 꿈에서 본 장면은 천사가 하늘까지 이어진 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하셔서

야곱이 꿈에서 깬 후에 자신이 베고 자던 돌에 기름을 붓고

제사의 단을 만들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형은 자신의 고향인 한국과 어머니 곁을 떠나 

멀리 외국에 가족들을 이끌고 홀로 정착하며 살아왔던 

지난 10년의 세월이 마치 야곱의 방랑길과 같다고 느꼈던 거 같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숨을 죽이며 꾹 참고 살아왔을까.


감사히도 교회에서 올해 1월 한달간을 안식월로 주셔서 

형은 레드우드국립공원으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고, 

하루에 3-4시간씩 숲길을 걷고 또 걸으며 너무 좋다고.. 

나무 사진(?)을 계속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좀 더 어렸을 때는 확실하고 견고해 보이던 것들이 

점점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어갈 수록 옅어지고 흐릿해지는게 

비단 나만이 겪고 있는 현상들은 아닌 거 같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라며 불같이 화냈던 일들이 

'음.. 그럴수도 있겠네..' 라고 바뀌는 정도만큼

어쩌면 세상을 더 알아가거나 상황을 이해하거나,

내 자신이 조금은 더 깊고 넓어졌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22. 강화 / Leica M10 Monochrom

 

지난 월요일, 아내와 함께 강화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석모도와 바다가 마주한 카페에 앉아서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보며 

날씨가 더 좋았다면 석양을 봤을텐데.. 아쉽기도 했으나

오히려 흑백의 사진으로 담기에는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오늘은 반대로 돌아볼까?"

카페를 나와서 굽어지는 해안의 도로를 따라 서울로 향하는 방향의 

반대로 차를 몰고 가는데 이 길은 이전에 한번도 와보지 않은 길이다. 

생각보다 바다풍경은 짧게 끝났지만 '강화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어?'라며 

놀랄 정도로 지금은 추수가 끝난 논이 길게 펼쳐져 있다. 


"여기서 카페하고 사진관 함께 하면 좋겠다"

"당신은 답답해서 못 견딜껄요?" 라며 아내는 또 정곡을 찌르고

멋쩍은 나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도 못 살아" 라며 함께 웃었다. 


사실 어딘가로 우리가 끊임없이 가야만 한다면

누구와 함께 걷는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두려운 길을 홀로 걸었던 야곱과 형에게 그분이 함께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는 내게 아내가 함께 있어줬던 것처럼.








https://youtu.be/yB9coF8ufsM

 '함께 걷는 길' - 곽진언.


https://brunch.co.kr/@findmyselfphoto/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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