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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14. 2022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누군가의 가슴 속에 영원히..

멕시코에는 전통적으로 '망자의 날'이 있어서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인상깊이 봤던 애니메이션 '코코'는 이런 풍습을 배경으로 해서 '죽은 자들이 산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순간 영혼마저 사라진다'는 전제 위에 코코가 뮤지션이었던 고조할아버지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 내 삶의 인지가 생긴 이후로 외부 세계와 내가 어떤 류의 관계를 맺는다는 건 꽤나 어렵고 곤혹스런 일이었다. 섣불리 친해지기도 쉽지 않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 어떤 대화들을 나눠야 할지, 내 안의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거나 받아들여야 할지.. 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이도, 실제로 보여주는 선배도 없었던 거 같다. 학교는 이상한 것들만 잔뜩 늘어놓으면서 정작 필요한 것들에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 하다.


그렇기에 노래는 내게 관계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선생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조규찬의 '그리움'이 사랑하는 이와 단절된 상처의 아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면, 루시드 폴의 노래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는 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누군가가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곡이다.  



이제 난 알지.. 돌아가셨어도 나에게 누나에게 살아있음을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숨쉬는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서른 즈음.. 함께 일하던 친한 동료가 루시드 폴의 광팬이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그의 노래 속에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었다. 아주 강렬한 고음으로 지르지도 않고, 화려한 세션을 사용하지 않기에 어쩌면 심심하다 느끼는 이들도 있을 테지만 조용히, 조곤조곤 읊조리듯 속삭이며 부르는 잔잔한 음과 선율에서 그만의 온도가 느껴지는 건 참 신기한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스며드는 그의 목소리를 동경하며 어느 새 나도 가만히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https://youtu.be/AylLdDc5Tas

2009년. 대한교회 청년부 여름수련회에서.


십여 년이 지나 마흔 중반이 된 지금, 가끔씩은 서툴고 날 것이었던 감정들을 그대로 여과없이 쏟아내어 때로 상처가 되고, 때로 열병처럼 아파했던 어떤 날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면 어린 시절의 내게로 다가가서 가만히 안아주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괜찮다고, 아직 몰라서 그렇다고,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나면 이런 문제들로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날이 올 거라고 조용히 속삭여주고 싶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감정들을 풍성하게 누릴 때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결국 사라지고 '이름' 통한  존재의 이미지만 남을텐데   나를 기억해주는 몇몇의 사람들이 '어진'이라는 사람을 회상하며 '루시드 폴만큼 따뜻한 사람이었어, 루시드 폴의 할머니만큼 넓은 사람이었어.' 라고 말해준다면 아마도  이상의 찬사가 없을  하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  날들도 어떤 태도와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조금  선명해지고 있다. 세상은 결국 힘이 있고 강한 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드럽게  품어주면서도 단단하고 예의바른 이들로 인해 살아갈  할테니까.


2020. 강릉. 내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사람.  Leica M10-Monoch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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