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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May 20. 2024

과자의 집 대신에, 통계물리의 집으로

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책 <CODE>를 읽고

척척석사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마음 속에 품어두었던, 글과 강연 등으로 과학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학원에서 전공한 내용을 소개하기가 가장 만만했다.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용이고, 해당 내용으로 비록 학회에서일지라도 발표도 여러 번 했으니 말이다.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시작했지만,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학계의 언어를 일반적인 언어로 옮겨야 했다. 무엇보다도 수식을 사용하지 않는 일이 걸림돌이었다. 세상에는 <수학없는 물리>라는 책도 있는 만큼, 수학 없이도 물리학의 개념과 발상은 분명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웬만한 물리학 논문에 수식 한 줄도 없기란 쉽지 않은 만큼, 수식 없이 물리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언을 구할 기회가 생겼다.


웹툰 작가에게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강의를 들을 일이 있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진행하는 과학문화 전문인력, 즉 과학커뮤니케이터 양성과정의 일환이었다. 즐겨보는 웹툰이 있기는 하지만 이종범 작가를 알지도, 작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웹툰 작가에게 듣는 ‘스토리텔링’ 강의를 들어보면 뭐가되었든지 얻을게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이종범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10년 가까이 연재한 <닥터 프로스트>가 있다. 


토요일 아침, 게으름을 피우며 카메라를 끄고 소파에 누워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필기를 하며 강의를 마저 들었다. 그렇게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웠다. 생각보다 강의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작가 님은 강의에 ‘스토리텔링’을 녹여냈다. 이런 사람이라면 과학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과학을 재미있게 읽게 만들 묘수를 알려줄 것만 같았다.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과자의 집 대신 컴퓨터의 집을 향해


이종범 작가는 나에게 <코드>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전문 지식을 이야기할 때에 어떻게 접근해야하는지 참고하기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프나 도식이 나오기 전에는 미리 아주 친절하면서도 상세한 설명을 이어간다고 했다. 그렇게 밑밥을 충분히 깔아 도식이 나오더라도 놀라지 않게 해준다고 했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상대방도 재미있게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 같았다.


<코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계산기로서의 컴퓨터의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computer)를 파헤쳐보면, ‘계산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compute에 ‘~하는 사람’이라는 -er 접미사가 붙어 만들어진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실제로 기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는 전문 계산원이 있었고, 이들을 컴퓨터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기계에게 계산을 시킬 수 있게 되면서 기계를 컴퓨터라 부르게 되었다.


초기 기계 컴퓨터는 아주 단순한 작업만을 수행했지만, 현대의 컴퓨터는 단순 계산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아주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내부에서는 여전히 단순한 덧셈 계산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과장하자면 컴퓨터는 단순 덧셈만으로 영상통화까지 수행해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코드>는 컴퓨터가 어떤 계산을 수행하는지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조금은 생뚱맞아보이는, 옆집 친구와 전구를 켜고 끄면서 신호를 주고받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무리는 아닌 듯이 보인다.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보다보면 창문을 타고 내려가 옆집 친구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는 설정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미국에서는 담을 넘기까지 하는데, 전구 통신 쯤이야. 


컴퓨터와 별로 관련 없어 보이던 전구 통신은 이내 컴퓨터 연산의 기초를 설명하는 이진법으로 이어진다. 전구가 켜져 있으면 1, 전구가 꺼져있으면 0 이다. 그 밖에 다른 숫자는 없다. 책을 따라가다보면 0과 1의 세계에서 차근차근 쌓아올려 현대의 컴퓨터에 이르게 된다. 저자가 뿌려놓은 빵조각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과자의 집 대신 컴퓨터의 집으로 향해가는 기분이다.


아, 그러니까 이종범 작가는 이런 ‘떡밥’을 내게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빵조각을 많이 뿌려놓고, 이를 유인책으로 저자들을 내가 알려주고 싶은 내용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말이다. 별로 관련이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친숙하고 재미있는 소재에서 시작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연결고리를 찾는 방법을 말이다.



통계물리학의 집으로 가는 길


우선 예시들을 많이 찾아보기로 했다. 논문을 쓸 때에도 내 연구가 어디에 응용될 수 있을지 예시를 많이 들기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가깝게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논문으로 발표된 예시만 논문에서는 인용하고, 더불어 분야의 시작과 더불어 발견된 고전적인 예시들은 그만큼 옛날 옛적에 논문으로 나왔으니 더더욱 지금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다행이도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주제는 일상과 맞닿아있는 지점이 많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했다. 통계물리학에서는 방 안의 기체분자처럼 아주 많은 수의 입자를 다룬다. 하나하나 추적할 수 없으니, 기체분자의 평균 속도나 속도의 분포 등 집단적인 특성을 본다. 한 가지 예로, 방 안의 온도는 기체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로 정의된다. 이러한 통계물리의 접근 방식은 기체 분자나 고체 결정 구조 등 물질세계를 넘어 동물이나 사람의 집단행동으로까지 확장된다.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이럴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갤럭시를 썼지만, 주변에 아이폰을 쓰는 친구들을 보고 아이폰으로 갈아탔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 아이폰이나 갤럭시 둘 중 어느게 시장에서 더 우세하게 될테다. 그렇다면 아이폰은 결국 갤럭시에 비해서 얼마나 더 우세하게 될까?


또 이런 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우리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코로나는 주로 침이나 콧물 등을 통해 전파되었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감염자와 식사를 한 경우 대부분 코로나에 걸렸다. 그래서 모임의 최대 인원 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거리두기가 이어졌다. 그러면 최대 모임 인원 제한은 몇 명이어야 적합할까? 이런 재미난 예시들을 떡밥처럼 뿌려놓고, 통계물리학의 세계로 사람들을 유인하면 되겠다! 


예시들을 찾다보니 재미있고 다양한 예시들이 많이 보였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서 통계물리학 특강을 할 일이 있었다. 이런 예시들을 활용해서 아이들을 통계물리의 세계로 이끌어보았다. 그런데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이게 왜 물리예요?’ 아차차, 떡밥은 많이 준비했는데, 통계물리학의 집까지 가는 길이 중간에 끊겼나보다. ‘재미는 있는데, 모호해요.’라는 피드백도 있었다. 통계물리학의 집을 좀 더 꾸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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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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