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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May 13. 2024

봄맞이 집정리

집안 가구배치를 대대적으로 바꿨다. 시작은 작은 방에 있는 서랍장 정리였다. 원래 집안일이 그렇듯이, 작은 것 하나에서 시작하여 결국 큰 일까지 번진다. 이사왔을 때에 짐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동안 애매하고 귀찮은 마음에 대충 집어넣은 물건들이 1년 동안 쌓였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무언가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묵혀두었던 서랍장을 정리하면서 나는 집 정리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봄바람도 봄바람이지만 마침 이사한지 일년이 지난, 짐 정리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이 작은 방, 거실 겸 주방, 안방으로 나뉘어있다. 작은 방에는 행거와 서랍장, 책장이 있다. 옷가지는 주로 작은 방에 있지만, 일부는 거실과 안방의 서랍장에도 보관되어 있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서랍장이, 거실에는 소파와 식탁 겸 책상, 노트북과 아이패드 등 전자기기를 수납하는 트롤리가 있었다. 물론 그 밖의 잡동사니들은 여기저기에 숨어있었다.


가장 큰 불편은 옷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원룸에 살 때에는 내가 구획하는 대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리정돈이 오히려 수월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주방과 침실이 분리된 투룸이었지만, 평수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각 공간의 크기가 애매했고 물건들을 정리하기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 결과 옷가지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있게 되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를 계속 사용하다보니 생긴 문제이기도 했고, 작은 공간에 비해 내 욕심이 과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지 나갈 준비를 하든, 빨래를 개고 정리하든 여러모로 옷들을 한 공간에 모여있어야 했다. 그래서 작은 방에 옷들을 모두 모아두기로 했다.


서랍장들은 모두 작은 방에 밀어넣었다. 옷들은 웬만하면 옷걸이에 걸었고, 서랍장에는 옷걸이에 걸기 애매한 속옷이나 양말, 그 밖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잡동사니들을 모두 서랍장에 넣었다. 옷을 걸기 위해 작은 방에 행거를 추가로 설치해야했다. 그렇게 하면 너무 비좁지는 않을까, 왔다갔다하기 불편하고 보기에 답답하지 않을까 등의 걱정이 있었지만, 수납에 질서가 필요하다는 당위가 앞섰다. 게다가 공간의 치수를 재보니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못 견딜정도는 아닐 듯 했다. 계획했던 대로 서랍장을 배치하고 행거를 설치해보니 다행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작은 방에 있던 책장들은 거실로 뺐다. 잡동사니들을 모두 작은 방에 몰아넣고 욕심을 버리니, 책장을 넣어둘 딱 알맞은 공간이 나왔다. 책장을 옮기면서 책도 다시 정리했다. 이사를 오면서 책을 주제에 상관없이 대충 꽂아놓았는데, 이번 기회에 책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다시 꽂아주었다. 과학책과 인문사회책을 분리했고, 전공서적들도 한데 모았다. 예전에는 필요한 책을 찾으려면 책장을 모두 훑어봐야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필요없는 책을 골라내니 책장에도 공간이 생겨났다. 


안방에 서랍장이 있던 자리에는 책상을 놓으려 한다. 식탁 겸 책상을 쓸 때에는 노트북을 펼쳤다가 정리하고를 반복했다. 책상이 생기면 매 번 치우는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책상에는 커다란 모니터를 놓을 수 있다. 13인치 노트북을 쓰면 작은 화면이 불편할 때가 있다.  ppt를 만들거나 코딩을 하는 등 여러 창을 띄워놓아야 할 때 특히 그렇다. 여러 창을 띄워놓지 않더라도 세로 방향으로 길이가 짧다보니 글을 읽거나 메일을 확인할 때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거기에 작은 화면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거북목을 하고 있었다. 이제 커다란 모니터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사오고나서 1년이 지나고 집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공간별로 역할을 확실히 했고, 특히 작은 방은 수납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다. 물건만 질서를 찾은게 아니다. 나의 마음도 정돈되었다. 그토록 염원하던대로 원룸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집에서 무언가 어정쩡하게 지냈다. 아무래도 공간에 맞게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집에 질서가 만들어지고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나의 마음도 제자리를 찾게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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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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