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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May 06. 2024

다수 속에서 소수로 지내기

내가 속한 합창단은 월요일, 금요일 오전에 정기연습을 한다. 연습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30분까지이다. 시간대를 보면 알겠지만, 단원 대부분은 전업주부이다. 평균연령은 알 수 없지만 자녀들이 초등학생부터 많게는 대학원생과 직장인까지 있다고 하면 대략 단원들의 나이대가 예상될 것이다. 내가 들어가기 전 가장 어린 단원은 38세로 알고 있다. 나의 입단이 평균연령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지언정 분산은 높였으리라 추정한다.


성비를 따져보면 아주 단순하다. 지휘자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단원과 반주자 선생님까지 모두 여성이다. 대략 30:1인 듯하다. 정말이지 이런 성비는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아니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과학과 관련된 활동을 할 때면 남성이 대다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의 성별로 인한 소수자성을 절절히 느끼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남학생들이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고, 물리 선생님들은 언제나 남성이었고,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서 내가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었고, 과에서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능력자였던 학생도 여성이었고, 무엇보다도 과에 동경할 만한 여자 교수님이 계신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듯하다.


물론 물리학과에는 남학생이 대다수였다. 군대 다녀온 동기들 사이에 생겨난 유대감을 관찰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배타성을 느껴본 적은 없다. 군대 다녀온 친구들이 나에게 불닭볶음면의 세계를 소개해 주었고, 선배들이 나에게 군대 문화를 강요한 적도 없다. (그리고 어차피 공부는 내가 더 잘했다) 성비로만 따지면, 소수자이기는 했지만 내가 소수자여서 불편했던 적은 내 기억에는 없다. 물론 내 기억이 조작되었을 수도 있고, 세월이 지나면서 희미해졌거나, 나의 소수자로서의 불편함이 실재했으나 내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옛날처럼 화장실이 없던 것도 아니고, 대학에 여성이 없던 것도 아니고, 내가 느낀 불편함은 단순히 ‘수가 더 적다.’ 정도였다. 불편함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오히려 나의 소수자성이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이상한 애들, 나보다 더 이상한 애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에 여성 차별이 없다는 오해를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숫자로 따지면 소수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소수자로 살아오지는 않는 그렇지만 소수자로 오해받는 사람의 배부른 고민이라고나 할까.


나의 소수자성은 합창단에서 오히려 도드라진다.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굉장한 소수자이다. 합창단원들의 대화는 대부분 자식에 관한 것들로 채워진다. 반면에 나는 나 자신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대화 주제가 겹치지 않는 일은 서로 관심사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합창단원 여러 명에게 같은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은 언제 해?’ 어떤 단원은 묻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하는 일이 무례라는 것을 알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는 것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딱히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런 걸까? 이러나저러나 무례한 것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 소수자성은 단순히 숫자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다름을 이해하려는 의도로 이것저것 물어보면, 그 물음들은 또다시 나의 소수자성을 드러낸다. ‘왜 머리를 짧게 잘라?’라고 묻는 것은 관심일 수 있지만, 그러한 관심이 30번 이어지면 그건 다름을 부각하고, 소수자가 ‘내가 나임을 설명해야’ 하게 만든다. 이런 류의 관심은 머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화장을 왜 안 하는지, 왜 꾸미지 않는지 물어온다. 나는 적당히 웃으며 ‘귀찮아서요’라며 더 이상 대화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하나의 물음에 답하더라도 그 뒤에는 더 많은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본인들의 잣대를 드리우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대를 고려했을 때에 예상되는 피곤함이 있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이 다수인 세계에서 지내다가, 여성이 다수인 사회에 발을 들인다는 데에는 일종의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이 다수인 사회에서 나는 소수자였다. 반대로 남성이 다수인 사회에서는 그런 류의 피곤함은 겪지 않는다. 남성이 다수인 물리학과와 학회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아무도 이렇게 묻지 않았다. ‘너는 왜 여자야?’,  ‘여자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이야?’, ‘왜 머리를 길러?’ 다름을 발견했을 때에 ‘그냥 그런가 보다’하는 적당한 무관심이 소수자가 자기답게 살아가는 데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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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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