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발굴에서 발견하는 인생을 갈아가는 방식
지금 살고 있는 집 앞에는 북서울꿈의숲이 있다. 과거 드림랜드라는 이름의 놀이동산이 있었지만, 2008년 초 폐장하고 지금의 북서울꿈의숲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덕분에 서울에 이렇게 넓은 부지의 숲과 공원이 조성될 수 있었다. 북서울꿈의숲 앞에는 옛날 놀이동산의 이름을 딴 드림랜드라는 분식집이 있다. 처음 이 동네에 오게 된 이유도 떡볶이를 먹고 공원을 산책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내가 살고 있던 지역과는 다르게 안정감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대학원 근처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동네는 주거지역이라기보다는 도시 느낌이 더 강했다. 교통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보다 주거지역에 가까운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원룸치고 꽤 넓은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지내는 일은 점점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점차 투룸으로 이사 가기를 염원했으나, 대학원생에게 연구실과 가까운 곳이 가지는 메리트는 엄청났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마음에 드는 공간이 없기도 했다. 작년 이맘쯤 즈음, 졸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역을 조금 넓혀서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이 집은 단번에 내 마음에 들었다. 지어진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빌라였고, 아주 깨끗했다. 이전 세입자는 불과 3개월 살고 사정이 생겨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너무 좋은 기회였다.
마침 지역도 내가 그렇게 동경하던 북서울꿈의숲 바로 앞이었다. 북서울꿈의숲까지 걸어서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 아주 흔쾌한 마음으로 계약했다. 그렇게 이사 온 집에서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북서울꿈의숲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대학원을 다니며 보기 힘들었던 나무들을 마음껏 보았다. 마치 엽록소가 결핍된 사람처럼 나무들을 보러 나갔다. 북서울꿈의숲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 아이들이 뛰놀기 좋았다. 여름이면 작은 물놀이장도 개장했다. 아이들의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와 물결에 비치는 햇살에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 것이 흡족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계속 누리다 보면 질리는 순간이 온다. 그토록 부러웠던 동네였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북서울꿈의숲 산책에 싫증이 났다. 그때부터는 경로를 바꾸어 인근 동네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산책로를 찾아냈다. 집에서 석계역까지 걸어가는 길, 반찬가게를 들러서 장을 봐오는 길, 또 다른 근린공원에 다녀오는 길 심지어 학교까지 걸어가기 좋은 길까지 발굴해 냈다. 졸업 후에 취직한 사무실에 가는 버스는 학교를 지나갔다. 나의 지인들은 아직 학교에 있기 때문에, 퇴근 후에 종종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오곤 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면, 집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또다시 산책하러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야말로 1석 2조의 효과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
지금은 사무실이 있는 뚝섬역에서 상왕십리역까지 걸어간다. 어차피 집 가는 버스를 타려면 상왕십리역까지 전철을 타고 가야 했다. 내가 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기본 15분이다. 눈앞에서 놓쳤을 경우 운이 좋으면 12분 만에 버스가 오지만 운이 좋지 않으면 20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는 한 두 정류장 정도 걸어가면서 버스와 시간을 맞추었다. 어느 날은 그냥 사무실에서부터 걸어가 볼까 싶었다. 날이 조금 풀리면서 걷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전철을 타고 실내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밤공기가 상쾌했다.
사무실에서부터 걸어가면 전철에서 내려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운에 맡기지 않아도 된다. 걸어가면서 버스와 시간을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를 타면 갈아타는 일 없이 집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산책로를 발굴했다. 새로이 발견한 장점에 참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싫증이 났지만 앞서 다른 산책로를 찾아냈을 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장점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인생에서 한 가지 길을 정하면, 한 가지 방식을 정하면 끝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한 가지를 정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렸다. 그렇지만 뭐든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그 길이 어떠한지 알 수 없다. 머리만 굴려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중간에 그만둔 게 하나둘씩 쌓여갔다. 하루는 누군가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뭐든 끝까지 하는 게 없어요. 관심사가 계속 바뀌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계속 바뀌는 게 꾸준하네요!’
새로운 산책로를 발굴했다며 즐거워하다가, 이내 싫증을 내고 또 다른 산책로를 찾아내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어찌 되었든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좋은지 안 좋은지 분별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면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의 경험으로, 내가 참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로 쌓일 테다. 아, 이제는 나 자신을 이렇게 정의해야겠다.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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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