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3화|

길에서 온 아이

by Helia

루네가 문을 향해 숨을 고르는 순간, 우체국의 종이 다시 울렸다. 이번 울림은 더 깊었고, 마치 문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는 듯한 파동을 품고 있었다. 문틈 아래로 은빛 가루가 잔물결처럼 스며들었다. 포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네… 방금 기척, 쿼카가 가져온 것과 달라. 더 또렷해.”

루네는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다. 손끝에 차가운 떨림이 스며들었고, 문이 열리자 햇빛이 고요하게 흘러들어왔다. 계단 위에는 작은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서 있었다.
작은 남자아이였다.

포노는 눈을 크게 뜨고 털을 조금 세웠다.
“아이…?”

남자아이는 두 손을 모아 쥔 채 루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어린데, 눈동자엔 오래된 마음의 흔적이 담겨 있었고, 말수는 적어 보였다. 루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길을 잃었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루네를 만나러 왔어요.”

그 순간 루네의 심장이 가볍게 흔들렸다. 포노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다가도 경계를 풀며 중얼거렸다.
“낯선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아.”

아이의 작은 손에는 네모난 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에는 종이학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달빛 잉크를 닮은 은빛이 스며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루네에게 내밀었다.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요.”

루네는 손끝을 떨며 물었다.
“누가… 보내달라고 했니?”

아이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은 말하지 말래요. 그래도 루네는 알 거라고 했어요.”

그 말 한 줄에, 오래전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가만히 깨어나는 듯했다. 포노가 루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떠오른 사람 있지?”

루네는 대답하지 않은 채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종이학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 종이학은 전보다 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날개 끝이 살아 있는 숨결처럼 움직였다.
그때 아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분이 말했어요. ‘루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루네의 눈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정말 그렇게… 말했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포노는 아이 곁에 서며 낮게 말했다.
“너… 대체 어디에서 온 거야?”

아이는 포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길에서요.”

포노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길…?”

아이는 다시 말했다.
“마음이 멈추면 길이 사라지고, 마음이 움직이면 길이 생긴대요. 그분이 지금 길을 찾고 있어요.”

루네는 넋을 잃은 듯 아이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사람이… 왜 나를 찾는 걸까?”

아이는 주저하지 않았다.
“루네가 쓴 마지막 답장이 마음을 다시 열었다고 했어요.”

바로 그때, 종이학이 루네의 손 위에서 번쩍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은빛 먼지가 길처럼 이어지며 문밖으로 흘러갔다. 아이는 그 빛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도착할 거예요.”

포노가 날카롭게 물었다.
“누가? 누구야?!”

아이는 단 한마디만 남겼다.
“루네가 아주 오래전에 기다렸던 사람.”

그리고 그 순간—
우체국의 종이 네 번째 울렸다.
이번 울림은 분명히 누군가가 문 앞에 서 있다는 걸 말해주는 울림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Helia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55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3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