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클래식 제14장: 다정한 이별의 방식

다정한 이별의 방식

by Helia

윌리엄 월튼 – Touch Her Soft Lips and Part


모든 이별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이별은 말없이 지나가고, 어떤 이별은 기억조차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아주 드물게, 오래도록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적시는 이별도 있다. 상처보다 여운이 먼저 남는, 그런 이별.

윌리엄 월튼의 ‘Touch Her Soft Lips and Part’는 제목부터 그 이별의 방식을 말해준다.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건드리고, 그리고 헤어지라니. 이보다 더 섬세하고, 더 조용한 작별이 있을까. 곡은 아주 짧다. 몇 분 남짓의 길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오히려 더 길게 남는다.

선율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낮고, 잔잔하다. 소리의 크기를 키우지도 않고, 감정을 끌어올리지도 않는다. 그냥, 아주 조심스럽게 곁에 머무르다, 어느 순간 스르르 빠져나간다. 사랑했던 시간이 아닌, 사랑했던 마음이 천천히 사라지는 느낌.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분노도, 집착도 없다. 오직 다정함만 남는다.

나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떤 감정은 끝까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놓아주는 것이 더 큰 애정일 수 있다는 걸 이 곡이 알려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었다는 것은 음악 안에서 저절로 드러난다.

창밖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잎사귀 하나가 유리창에 닿았다가 흘러내렸다. 꼭 그 사람이 나의 하루를 스쳐간 방식 같았다. 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이 곡의 선율처럼, 아주 잠깐 나를 지나간 것이 전부인데도, 한동안 나는 그 감정 안에 머물렀다.

음악은 기억을 붙잡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 곡은 기억을 떠나보내는 방식에 가깝다.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감정을 안쪽에서 밀어내는 것. 그래서 듣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정돈된다.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도, 잘라내지 못한 감정도, 선율 안에서 조금씩 다듬어진다.

헤어진다는 건, 꼭 누군가를 떠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은 스스로를 떠나보내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아직 품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마음, 혹은 나 자신에 대한 후회 같은 것들. 이 곡은 그런 것들을 억지로 끊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인도해 준다.

나는 오늘도 이 곡을 반복해 들었다. 다정한 이별은 한 번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천천히, 조금씩, 마음속에서 익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다정하게 익은 이별은,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음악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음악은 말했다. 지금은 보내야 할 시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