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피아노는 기억을 거슬러 흐른다

잊고 싶던 날에도 피아노는 흐르고 있었다

by Helia

쇼팽 - Nocturne in C-sharp minor, Op. Posth.


아빠라는 사람은 다정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그 손은 늘 거칠었으며, 집은 언제나 폭풍이 지나간 듯한 정적과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클래식 음악과 같은 섬세한 감성은 그의 세계엔 없었다. 그저 술에 절은 기침 소리와 무거운 발걸음, 고함과 냉소가 우리 집의 배경음악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클래식을 처음 들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음악실에서였다. 나는 자퇴를 하기 전까지 고등학생이었고, 실기시험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야 했다. 반쯤은 억지였고, 반쯤은 도망이었다. 선생님이 시험 곡으로 연습하라고 건넨 악보 위에 적힌 곡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음악실에 흘러나오던, 누군가 연습하던 클래식 선율 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을 스쳤다. 처음으로 음악이 위로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피아노를 치는 시간만큼은 조금 더 오래 학교에 머물렀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였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들은 마치 내 안에 고여 있던 말을 대신해 주는 듯했다. 울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었던 시간들을 건반은 기억해 주었다. 클래식은 그렇게 내게 스며들었다. 누가 작곡했는지,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는 몰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선율이 대신 말해주었으니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클래식은 내 삶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삶은 바빴고, 현실은 거칠었다. 하지만 어느 날, 카페에서 잔잔히 흐르던 선율이 나를 다시 멈춰 세웠다. 멜로디는 낯설었지만, 그 감각은 익숙했다.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음악은, 정확히 말하면 클래식은, 내게서 완전히 떠난 적이 없었다는 걸.

어릴 적, 내가 숨을 곳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선택해서 머무를 수 있는 숨결 같은 공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음악이라는 이름의 피난처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대신, 나를 감싸주던 라흐마니노프의 음률. 엄마의 품 대신, 손끝에 남아 있던 쇼팽의 잔향. 그리고 아무도 날 몰라주던 날들 속에서,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던 드뷔시의 ‘달빛’.

클래식이 내 삶을 바꾼 건 아니다. 다만, 살아갈 수 있게는 해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오후 세 시가 되면 나는 음악을 켠다. 누군가의 생이 담긴 음표가, 내 오늘을 살게 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