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별은 사적인 통로를 지나온다.
추천곡: 프레데리크 쇼팽 – Piano Sonata No.2 in B-flat minor, Op.35, 3악장 'Marche Funèbre'
사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장례식 내내 엄마보다 더 많이 울었다.
하루 종일 무너진 듯 울고 또 울었다.
마른 티슈를 또 꺼내고, 또 눈가를 문지르다,
눈이 퉁퉁 부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채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나는 분명 그때 다 울었다고 생각했었다.
더는 흘릴 눈물이 남지 않았다고 믿었다.
슬픔이라는 건 그렇게 통과해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쏟아내야 할 눈물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그 많은 울음이 지나갔는데도,
왜 나는 타인의 빈소 앞에서, 다시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
그날은, 친한 언니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 언니는 내게, 세상의 언니 같은 존재였다.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상처를 말없이 닦아주던 사람.
언니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이지도 않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처음으로 조문객의 자격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누군가의 빈소에 초대받지 않고 스스로의 발로 들어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내가 그 빈소를 지키는 가족의 위치였다.
조문객을 맞이하는 입장이었고, 정신없이 손님을 안내하고 절을 받는 입장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고개 숙이는 장면들 사이로,
나는 제대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도, 슬픔도, 그 안의 다정함도.
그저 바쁘고 울고, 또 바쁘고 울었다.
그러다 보니, 조문객이 어떤 마음으로 빈소를 찾는지에 대해서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 없던 틈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문객이 되었고,
그 자리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슬픔을 삼킨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고인의 영정 사진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심장이 철렁했다.
숨이 턱 막혔다.
고인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너무도 익숙했다.
왜인지 모르게 우리 할머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사진 속 할머니의 눈매와 입꼬리,
온화한 미소와 하얀 머리칼의 결이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슬픔이 터져버렸다.
울면 안 되는 자리였지만,
내 눈물은 그 어떤 의지보다 빠르게 흘러내렸다.
애써 멈추려 했지만,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 영정 사진 속에는 내가 애써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니의 할머니가 아닌,
내가 떠나보낸 우리 할머니를 향한 것이었다.
조문객으로 왔지만, 나는 내 상실을 다시 꺼내고 있었다.
“너는 왜 우냐고.”
언니의 말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래,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이 자리는 언니의 슬픔을 위로하러 온 자리였다.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울고 있는 걸까.
혹시 내가 울고 싶어서, 울 자리를 찾아 여기에 온 건 아닐까.
이기적인 감정이 앞서버린 건 아닐까.
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슬픔보다 민망함이 더 컸다.
내가 왜 우냐고, 그 질문은 정확했으니까.
나는 생전 알지도 못했던 사람의 사진 앞에서,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내 과거의 상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조문객이었다.
그 슬픔의 주인이 아니었다.
빈소의 중심에는 언니가 있어야 했고,
나는 그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너무도 앞서 울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
억지로 만든 것도 아니었고,
감정 과잉도 아니었다.
다만, 예고 없이 터진 진짜 그리움이었다.
그건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재’를 떠올린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하며,
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빈자리를 떠올리게 된 것.
그날 이후, 나는 조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애도의 방식은 하나가 아니고,
조문이라는 행위 속에는 무수한 감정이 겹쳐 있다는 걸.
단지 예의와 절차가 아니라,
진심으로 누군가의 이별에 마음을 보태는 일이라는 걸.
나는 슬픔을 통과한 줄 알았지만,
그것은 그냥 잠시 멈춰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다 울었다고 생각했지만,
슬픔은 종종 다 흘러내린 척하다가,
어느 날 전혀 상관없는 순간에 다시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터짐은,
비난받아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가능한 ‘연결의 증거’ 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슬픔 앞에서 내가 나의 슬픔을 떠올렸던 것은
그 슬픔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물에 나도 모르게 공명했던 것이다.
그날의 나는 분명 서툴렀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비로소 누군가의 죽음을 '내가 아닌 사람의 죽음으로'
진심으로 애도해 본 첫날이었다.
그리움은 때로 타인의 얼굴을 빌려 찾아온다.
그 얼굴은 낯설지만, 그 감정은 익숙하다.
그 사진 속 미소가 내 기억 속 할머니와 겹쳐졌던 것도,
어쩌면 그날 내 마음이 너무 오래 기다려온
작은 이별의 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울어도 되는지 망설였던 순간,
사실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할머니에게 닿았을까.
이제야 제대로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