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이름의 주인
“내 진짜 이름은…”
그림자 아이의 입술이 떨리며 열린 순간, 달빛이 크게 흔들렸다. 숲 전체가 웅— 하고 낮게 울리는 듯했다. 마치 말랑숲도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한 떨림이었다. 나는 토끼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의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 심장 같은 맥박이 힘 있게 뛰고 있었다.
그림자 아이는 한 걸음 우리에게 더 다가왔다.
달빛이 아이의 얼굴을 스치며 형체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작은 코, 둥근 눈, 희고 회빛이 섞인 부드러운 털—그리고 귀 뒤의 리본 자국 같은 희미한 흔적.
그 흔적은 토끼의 머리 뒤에서 본 리본 매듭 자국과 거의… 아니, 너무나 같았다.
토끼가 숨을 들이켰다.
“저거… 제 리본이랑… 똑같아요.
선생님… 저 아이… 혹시…”
그 목소리는 떨리다가, 갑자기 확 부서져 나왔다.
“저랑… 같은 아이였던 건가요?
아니면… 제가 잊어버린… 동생이나… 친구… 그런 건가요?!
왜 이렇게… 가슴이 아파요… 선생님…!”
토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 순간, 바닥에 있던 은빛이 작게 일렁이며 금빛으로 변했다.
달빛이 두 마음의 흔들림에 반응하듯 색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토끼를 꽉 안아주었다.
“토끼야, 마음은 아플수록 더 깊이 숨어.
그리고 숨어 있는 마음은… 때로는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해.”
그림자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 맞아. 그래서 나는 그림자가 되었어.
너에게 닿지 못해서…
너에게 잊혀서…”
그 말은 울음도 아니고, 한숨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진실을 조용히 건네는 듯한 떨림이었다.
토끼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왜 도망쳤어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내가… 너를 버린 게 아니라면…
왜 난 네 이름을 잊었어요…!”
그림자 아이의 눈에 은빛이 찰랑였다.
토끼의 눈동자와 완전히 같은 색의 빛.
그러나 그 안에는 토끼에게 없는 ‘상처의 깊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너는… 잊은 게 아니라… 지켜낸 거야.”
순간, 나는 숨이 멈췄다.
토끼도 눈을 크게 뜨고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림자 아이는 이어 말했다.
“너는 너무 아파서… 네 마음을 둘로 나누었어.
웃는 마음은 네 안에 남겼고,
울던 마음은… 나였어.”
토끼가 어깨를 떨었다.
“… 내가… 너를… 떼어낸 거야…?”
“응.
지키려고.
너를 웃게 하고 싶어서.”
토끼는 흐느낌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이 숲을 흔들자, 달빛이 강하게 출렁였다.
바닥 위, 나무 위, 공기 중에 있던 은빛이 모두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림자 아이의 가슴에서 또 하나의 금빛 조각이 떨어졌다.
이 금빛은 이전과 다르게 강하게, 뚜렷하게 빛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금빛은 ‘되돌아오는 마음’의 색이었다.
두 마음이 서로를 다시 움직일 때만 나타나는 특별한 빛.
그 빛은 따뜻했고, 손에 올리자 심장처럼 미세하게 뛰었다.
내 가슴 어딘가도 함께 울렸다.
마치 나 역시 잃어버린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토끼는 금빛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를 지키려고… 혼자서 아파했던 거야…?”
그림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가 기억을 잊을 때마다, 나는 더 작아졌어.
그리워할수록… 더 희미해졌고.
그래서 너는 나를… 이름 없이 부르게 된 거야.”
이름 없이.
그 말에 토끼는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럼…
내가 네 이름을 불러주면…
돌아올 수 있어?”
그림자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응.
하지만… 혼자서는 부족해.
마음을 둘로 나눴던 건…
너 혼자였던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 순간—
그 아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깊게 고정되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어딘가… 본 적 있는 눈빛이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어떤 기억이 목 안쪽까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
그림자 아이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미미…
너도 기억하고 있어.
아니… 기억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 말.
“내 이름은… 너희 둘이 함께 지어준 이름이야.”
달빛이 일렁였고,
숲의 공기가 크게 흔들렸다.
그림자 아이의 입이 열렸다.
“… 내 진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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