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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금빛 조각이 가리키는 곳

by Helia

“둘이… 왔구나.”
그림자 아이의 목소리가 달빛을 흔들며 사라지자, 말랑숲은 다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졌다. 나는 토끼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아이의 작은 손끝이 차가운 긴장을 머금고 떨리고 있었다. 달빛은 은빛으로 길을 펼쳐놓았고, 나무들은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향해 가지를 기울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린 숲처럼.

그림자 아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달빛이 비치는 길 끝에 작은 몸을 세우고, 우리를 바라보는 듯—아니, 알아보는 듯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발끝이 달빛 위를 스치자 은빛이 부서지며 퍼져 나갔다.

그 아이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토끼의 귀와 닮았지만, 완전히 같지도 않았다.
더 둥글고 짧았고, 귀 끝은 달빛을 흡수하듯 은회색으로 번들거렸다.
그리고 귀 뒤에는 희미하게 풀린 리본 자국 같은 무늬가 깜빡이고 있었다.

토끼는 내 품에 파고들듯 속삭였다.
“선생님… 저 아이… 저랑 정말… 닮았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요…?”

그 목소리에 묘한 떨림이 있었다.
슬픔도, 그리움도, 두렵지도 않은…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마주했을 때만 나는 진동.

나는 토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말랑숲에는 오래된 규칙이 있어.
‘찢어진 마음은 서로를 찾으면 금빛으로 돌아온다.’
네 가슴이 아픈 건… 네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야.”

달빛이 조용히 떨어지며 길의 표면이 일렁였다.
그 순간—
그림자 아이가 한 발자국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발끝마다 아주 작은 회빛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고, 우는 아이처럼 작고 섬세한 빛이 사라졌다.

나는 긴 숨을 들이마셨다.
이 아이는 그림자만이 아니었다.
달빛이 아이의 얼굴에 닿는 순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작은 코.
둥근 눈.
희고 회색빛이 섞인 부드러운 털.
그리고—
토끼와 똑같은 눈동자 색.

토끼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왜… 제 눈이랑… 같은 색이죠…?
선생님… 저 아이… 저였던 건가요…?
아니면… 제가 잊어버린… 누군가…?”

그 말에 내 마음 한구석도 딱 하고 울렸다.
왜냐하면—
토끼의 떨림이,
그 아이를 볼 때의 두려움과 이상한 친숙함이…

나에게도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장면.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던 목소리.
희고 은빛 같은 작은 울음.
자꾸만 떠오르는 그 그림이 달빛에 겹쳐 흔들렸다.

알 수 없지만…
내 마음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나 역시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 온 것처럼.

나는 떨리는 숨을 삼키며 아이에게 물었다.
“… 넌 누구니?”

그림자 아이는 아주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야.
너의 것—”
아이의 눈이 토끼를 향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의 두 눈은 이번엔 내 쪽으로 돌아왔다.
“너와도… 조금 닿아 있어.”

순간 토끼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왜… 왜 선생님이랑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고,
어떤 묘한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마치 잊어버린 기억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림자 아이는 우리 쪽으로 더 다가왔다.
달빛이 아이의 가슴을 스치자—
그곳에서 금빛 조각 하나가 또 떨어졌다.

이 금빛은 은빛이나 회빛과 다르게
따뜻하고, 살아 있고, 숨을 쉬고 있었다.

토끼는 금빛을 보자마자 울먹이며 말했다.
“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저건… 정말… 제 마음인가요…?”

그림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돌아온 마음.
네가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지켜졌던 감정.”

나는 금빛 조각을 손에 올렸다.
손바닥이 따뜻해졌고,
가슴 한쪽까지 온기가 깊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림자 아이가 아주 느리게,
아주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네가 지어줬어.”

토끼가 숨을 멈췄다.
나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달빛이 길 위에서 크게 일렁였다.
숲의 공기가 떨렸고,
금빛 조각이 손바닥에서 진동했다.

그리고—
그림자 아이가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리고 미미, 너도… 나를 알고 있어.”

나는 숨을 잃었다.
토끼도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나를 올려다봤다.

달빛 아래에서
그 아이의 실루엣은 더 이상 그림자만 아니었다.

우리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름을 꺼내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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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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