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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Dec 29. 2019

병원 일기 3

20191212


수술 후 이틀이 지났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사실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수술실에서 나온 형님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저도 밤을 새웠죠.
수술 부위가 잘못될까 봐 겁이 나서
자세 조금만 이상해져도 노심초사.  

수술 6시간 이후 식사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물 마시고 싶다는 것도 안 줬습니다.
하지만 정작 식사가 가능한 새벽 1시 30분이 되자
물도, 음식도 다 싫다더군요.
아침도 거부했고요.
다행히 점심부터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술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형님이 너무 조급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제 6시간 수술하고 나왔다.
오늘 첫날이다.
내 말 믿고 딱 일주일만 참아라.
18일에도 똑같으면 그때 이야기해라.


이해하는 듯도 했지만 잠시였습니다.
조금 전 뚝 소리가 나더니 손이 더 나빠졌다.
다리도 힘이 완전히 풀렸다.


수술 결과에 대한 불신과 조급증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후 더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요.
다양한 증상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감금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자꾸 어디로 전화를 하려 했습니다.
차근차근 설명하면 잠시 안정되는 듯하다가 다시 시작.
미치고 환장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급기야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대뜸 이러는 겁니다.


구해 주세요! 구해 주세요!


물론 어눌한 말투였습니다.
아직 수술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거든요.
깜짝 놀라서 어디에 전화했냐니까 말도 안 합니다.
강제로 전화기 빼앗으면 더 흥분할까 봐 살살 달랬죠.
저쪽 소리도 살짝 들리더라고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렇게 묻는 듯했습니다.
간신히 전화기를 빼앗아서 보니 112였습니다.
대충 설명하고 끊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시달렸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을 차근차근 달래려니, 참.


저녁 7시 이후에 누님과 잠시 교대를 했습니다.
친구가 찾아와서 밖에서 저녁 먹고 잠시 집에 다녀왔습니다.
병원 도착 시간은 10시 전후쯤.
근데 형님 눈빛이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자리 지워서 삐졌나? 화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옆에 있던 누님이 말을 안 하고
저에게 톡을 보냈습니다.
제가 없는 사이에 형님이 그랬답니다.
자기 죽이려고 여기에 감금했다고요.
저도 낮에 있었던 112 사건 톡으로 보냈죠.
누님도 충격, 저도 다시 충격.


누님 가신 후 증세가 점점 심해졌습니다.
극도로 불안해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화기의 번호 목록을 뒤적이더라고요.
사실 형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열 개도 되지 않습니다.
이미 취침 시간이고 다른 환자고 있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자신의 팔뚝에 꽂혀 있는 바늘을 번갈아 보는데,
금방이라도 주삿바늘 빼버리며 난동을 부릴 것 같은 공포.
그리고 다리에 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심각하다 싶어서 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술에 대한 금단 증상 같은데
혹시 제가 모르던 사이 치매 증세도 있었던 건 아닌가 불안했죠.
환자가 어제 잤냐고 묻더라고요.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자지 않았습니다.
간호사 왈,
간혹 전신마취 후 그럼 증세 보이는 환자가 있답니다.
취침하지 않은 환자에게 주로 나타나고
밤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네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데
전 무섭기도 하고 다른 환자에게 민폐도 걱정이고.
병원이니 다른 환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은 서로 그 정도 감수하는 거라는 투였습니다.
결국 의사에게 보고 후 안정제 주사를 맞았습니다.
30분 안에 잠든다는데,
무려 1시간 후에 잠이 들었습니다.
안정제 맞은 후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 와중에도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기어코 전화번호를 뒤적이는 모습 보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겨우 잠이 드는 거 보고 저도 눈을 붙였는데
부스럭 소리에 눈 떠보니
또 안 자고 눈 껌뻑 껌뻑하고 있더라고요.
형님은 제가 안 보이지만
저는 보호자 침대에서 형님이 보이거든요.
몰래 시간 보니 겨우 1시간 반이 지났더라고요.
약 발이 이렇게 짧은 것인지 겁났지만
자극하지 않으려고 계속 자는 척.
그렇게 형님은 안정제를 맞고도 밤새 몇 번을 깨어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형님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착하고 말 잘 듣는 어른아이로 되돌아간 것이죠.
아마 저날 저녁 일은 기억도 못할 겁니다.
묻지도 않았고요.
아침 식사 때는 나보고 같이 먹자고 앞에 앉으라더라고요.
다리 당기면서 자리도 마련해주고.
전날 조카가 사 왔던 돈가스가 있다는 것을 알더라고요.
따로 밥 먹으러 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먹자고.
애효, 참 마음 아팠습니다.


식사 후 형님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술 후 처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이었죠.
아, 분명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저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겨우 10cm 정도씩 걸음을 옮겼는데
걸음 폭이 족히 30cm는 될 것 같더라고요.
물론 여전히 부축을 받아야 하고
한 발 옮기고 다른 발 가져오고를 반복하는 걸음이지만요.


사실 제가 수술에 큰 기대를 했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수술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안 거죠.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분도 수술 후 재활 하 듯
형님도 재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보호자 침대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곧 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침대에 올라간 후 곧 잠이 들었고요.
수술 후 가장 평온하게 숙면을 취했습니다.
아, 그 순간의 평화란.
마치 태풍이 지나간 후 맑고 고요한 날이 찾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
형님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세상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수술 후 결과가 궁금한 분들이 계실 듯해서 남기는 글이고요.
저에게는 형님에 대한 기록이 될 수도 있겠네요.


형님이 혼자서 무리 없이 걷게 되는 날,
이제는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 여행을 떠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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