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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May 15. 2022

서두르지 않는 법

  2017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5년간 1인 출판과 온라인 강좌 콘텐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기타 레슨도 했었지만 사무실을 정리하고 주부가 되면서부터는 레슨도 모두 정리하였다. 그 후 코로나가 터졌다. 신기에 가깝게 코로나를 피하자 업계 사람들은 나에게 "당신은 신내림을 받았느냐!"며 로또번호를 물어보길래 4 - 8 - 15 - 16 - 23 - 42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미드 로스트에 나온 저주받은 로또 숫자)    


  1인 출판은 꽤 재밌지만 따분하고 한없이 늘어질 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일을 하지 않으면 좀처럼 수익을 낼 수 없다. 심지어 나는 다른 이의 원고를 받아서 출간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원고 작업을 하면서 온갖 업무의 쓰나미를 겪었다. 그야말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일만 해도 한 덩어리의 일이 몇 달씩 걸리다 보니 업무의 난이도가 문제가 아니라 인내심의 한계가 문제였다. 아무리 해도 놀랍도록 끝나지 않는 일을 지지부진하게 잡고 하나씩 꾸역꾸역 만들어가는 과정은 내 인생에서 처음 겪어본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능 시험을 준비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훈련을 했을 테지만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겪어본다.    


  안 그래도 사업을 시작하며 하루 16시간씩 일 하는 건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1인 출판을 하면서 겪었던 업무량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원고를 쓰는 것도 직접, 인디자인에서 편집을 하는 것도 직접, 표지 디자인이나 전체적인 인쇄의 틀을 만드는 것도 직접, 마케팅과 채널 운영도 직접, 동영상 강좌 촬영과 편집도 직접 한다. 동료가 있다면 일을 나눠서 할 수 있지만 나눠서 한다 해도 두세 명이 더 붙어야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사람이 있으면 동시에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건비의 추가 지출은 불가능하기에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원고를 쓰고, 편집을 하고, 교정을 보고, 다시 원고를 수정하고 편집을 수정하고 교정을 진행하는 무한궤도로 빠져든다.    


  일의 분량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언제나 더 길게 늘어지고 일의 진행 속도는 하나하나 구슬 꿰듯 속이 터질 지경으로 느리다. 할 일이 천지라 급해 죽겠는데 책이라는 매체는 대충이 없다. 틀리지 않기만을 사력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을 빡빡 쳐가며 아주 느리게 확인을 해도 틀리는 글자가 나오고 이상한 문장이 발견된다. 어김이 없다. 그래서 책을 만들수록 수정 사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수정사항을 주의 깊게 살핀 후 교정에 반영한다. 할 일이 쌓여도 급해서 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을 만들게 된 이후로는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고 대충 해서 메꿔지는 것도 없으며 어설프게 해 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누더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급하게 갈 필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이라는 것은 되는 방식이 있고 쌓이는 것이 있어서 그걸 무시하고 달려들다가는 구멍 숭숭 뚫린 젠가처럼 위태로워지기 십상이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모두 이런 식이 었다. 너무 급작스럽고 빠르게 결과를 보려 하고, 수준 이하의 것들을 성급하게 준비해서 성과도 노력에 대한 보상도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없이 어설프게 끝나버렸던 것들이 많다. 이런 묵직함을 너무 늦게 배웠지만 지금이라도 배운 것이 어디인가. 덕분에 사업의 성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성과를 크게 내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시간에 쫓기듯 무언가를 하지 않도록 바뀌어가고 있다. 물론 인생의 언젠가는 한 획을 긋기 위해 느긋이 칼을 갈고 있지만, 되어가는 일을 관찰하며 살피는 것이 더 소중하다. 그러고 나서 움직여도 뭐, 늦지 않드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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