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저녁식사 후 소파에 누워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무언가 내 몸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을 타고 커다란 돌맹이가 가슴까지 굴러다니듯 했다.
이건 뭐지?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당황스러움과 공포가 밀려 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판단을 내릴 수조차 없다.
이 순간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나 이렇게 죽는 건가? 숨 쉬는 근육이 마비가 오고, 난 허무하게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그동안 내가 배워온 학술적 지식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건 심폐소생술의 대상도 아닌 듯 했다. 거실에 있는 남편을 부른다.
“여보, 여보, 나 죽을 것 같아. 팔, 다리에 마비가 오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달려온 남편은 아무것도 내게 해줄 것이 없다. 숨을 편안히 쉬어보라는 주문밖에 남편이 해줄 수 있는 한계에 부딪힌다.
평범했던 일상이 한 순간에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듯 아수라장이다. 숨을 고르게 쉬어보고자 애를 써도, 남편이 나의 팔, 다리를 주무르며 도움의 손길을 주어도 쉽사리 내 몸이 정상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갑작스런 숨막힘과 불안 그리고 신체적 증상을 이겨내기에는 그 공포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원인이 무엇일까? 이유가 무엇일까?
일 년 중 한번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던 내가 갑작스럽게 이런 상황에 접한 까닭이 무엇이란 말인가?
뇌졸중? 아니면 뇌종양? 아니면 심근경색?
그냥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르는 관련된 질환들을 연결시켜 내 진단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 의사도 아닌 내가 마치 의사인 양 말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난 직장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매우 괴롭고 힘든 날 들의 연속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 ‘누구나 이 정도는 스트레스 받으며 힘겨움을 이겨내지’라고 되 내이고 긍정적인 사회인이 되고자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의 뇌에서 판단하고 생각하여 내리는 결론과 몸에서 나타나는 신호는 어긋났다.
견디다 못해 나의 몸이 그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너의 한계는 여기까지야.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고 잘 견뎌왔어.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힘들게 묶어두지 마.’ 라는 마음 속 울림이 나를 달래 왔다.
나는 작업치료학 학사전공 후, 인간의 정신건강과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박사학위를 재활심리학으로 취득했다. 교수로 임용된 후 대학에서 심리학을 비롯해 정신의학과 상담심리학을 교육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공부했고, 교육자인 내가 정신과 질환으로 진료를 받는다는 것이 처음엔 정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체적 질환이나 사고도 아니고, 정신적 영역의 문제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마치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무책임함 내지는 자격 없는 교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황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반복되는 빈도가 늘어갔다. 반복되는 횟수만큼이나 심리적 불안은 더욱 커져가고 생활을 유지하지 못할 만큼 이어졌다. 결국은 병원에 가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나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고 원망도 가득했다.
그리고 상상을 한다.
나는 움츠린 채 한가운데 앉아있고, 학교에 다른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나를 손가락질 하는 비참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 나 그냥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용기 내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난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용기를 내어 그리도 문턱이 높게만 느껴지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자율신경계 검사와 설문지를 비롯한 심리검사가 이어진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검사지들도 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 교육자가 아닌 환자가 되어있다. 다음으로 주치의선생님의 심층면담이 이루어졌다.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단이 나왔다. 담당 주치의는 정확한 나의 진단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과 유사한 적응장애(Adfustment disorder)라고 말하였다. 적응장애는 특정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생되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내 경우는 적응장애로 인해 공황(Panic Disorder)으로 발전한 케이스였다.
그동안 정신의학 수업을 하며 수없이 들어왔고 이해했다고 자만했던 결과가 고스란히 나의 진단명이 되었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막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 하나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학생들을 교육한다고, 무슨 교수를 한다고... 그렇게 나를 탓하고 질책하는 자책이 시작되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두 내 탓이옵나이다.'
성당에서 으레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읊어왔던 내 탓이 제대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며 작고 큰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때로는 인간관계 안에서의 갈등으로 언성을 높여야하는 상황도 생기고, 대부분은 마음속에 담아둔 채 인고의 시간들을 견뎌야하는 억누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적절하게 싸울 때 싸울 수 있어야하고 피할 줄도 알아야한다. 그것이 생존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다.
나의 경우는 사회생활에서 적절히 대처할 줄 모르는 시간들이 늘어나며 내 몸 안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생각해 보니 식사 후 체하는 경우도 많아 소화제를 자주 복용했다. 멍하니 앉아있다 한숨을 내 뱉는 시간도 늘어났었고, 머릿속은 많은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두통도 자주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보내온 신호들을 무시한 채 하루살이처럼 ‘그저 오늘을 잘 살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만 스트레스를 쌓아오며 병의 증상들을 만들어왔던 것이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처방된 일주일 분량의 약을 받았다. 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요동치는 복잡한 생각들이 혼란스러움을 가중했다.
누구나 살아가며 아플 수 있고, 발전한 의학기술로 성공적인 치료도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정신적 질환의 경우 그 원인에 대한 요인을 찾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또한 요인이라고 하는 것이 갑작스런 트라우마나 사고에 의한 충격일 수도 있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한 요인도 있다.
나의 경우는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된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 치료는 얼마나 소요될까?
진단된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다시 회복하려면 치료는 반드시 해야 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다시금 생각했다.
'나 공황장애?'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표한 정신질환 통계편람(DSM-5)에 의하면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하위 정신질환에 포함된다. 자신의 증상을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공황장애를 진단하고 임상적 양상에 제시하고자 한다.
예상하지 못한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공황발작은 극심한 공포와 고통이 갑작스럽게 발생해 수분 이내 최고조에 이르러야 하며 그 시간 동안 다음 중 네 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난다.
1. 호흡이 가빠지거나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2. 어지럽고 휘청휘청하거나 졸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3. 맥박이 빨라지거나 심장이 마구 뛴다.
4. 손발이나 몸이 떨린다.
5. 땀이 난다.
6. 누가 목을 조르는 듯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7. 매슥거리거나 토할 것 같다.
8.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들거나 자신이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9. 손발이 저릿저릿하거나 마비되는 느낌이 든다.
10. 화끈거리는 느낌이나 오한이 든다.
11. 가슴 부위에 통증이나 불편감을 느낀다.
12.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13. 미칠 것 같은 극단적인 기분이 들거나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