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장편소설/창비
[ 경애(敬愛)의 마음, 나도 그 마음과 함께 울고 웃었네 ]
우연이었다, 이 책을 본 것은.
어느 무료한 오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있었으나 무료함에 지쳐있던 어느 날 오후.
트위터를 보다가 이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죄송하게도 김금희 작가님의 글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경애의 마음'이라니.
읽기를 잘 했구나...
아니 실은,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다.
책을 덮고 나서 경애의 마음에 이끌린 내 마음이 아련하고 아프고 숨이 차서...
사실 책의 '경애'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처럼 마음을 드러내고 울거나 웃지 않는다.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또 다른 주인공인 '상수'는 서툴지만 감정을 툭툭 내어뱉는 것에 비해.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마음을 드러내게 되었다.
ㅁ 책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단단한 슬픔과 아픔을 계속 얘기하고 있지만 슬프지 않은 어조로 얘기한다.
- 여지는 삶에 있어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이 없는 삶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다는 상수의 마음과는 달리, 상수와 경애는 잘 견뎌낸다.
삶은 여지없이 그들을 몰아친다.
함께 잃은 '은총/E'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전에 가족을 잃거나 잃을 뻔하거나, 사랑을 잃거나.
회사에서 설 자리도 잃고 베트남이라는 낯선 곳으로 가게 된다.
상수는 언니 아닌 언니로서의 삶이 휘둘리는 일을 겪어야 했고, 경애는 사랑했으나 이별했던 산주가 바람이 되어 흔드는 통에 홀로 딛고 서거나 쓰러지거나 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흔들리면서도 꿋꿋하다.
담담한 그들의 마음이 두 다리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 담담함이 내겐 감동이었다.
책은 담백하게 그들의 사랑과 이별과 아픔과 인생을 노래하지만 그런 담백함이 자꾸 마음을 할퀴었다.
ㅁ 이미 알고 있다, 인생은 '그런' 것이라는 걸.
-...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번뇌를 어떻게 없애요?'라고 묻는 주인공에게, '야, 내 번뇌도 못 없애.'라고 말해주는 누군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아픔을 견디고 번뇌에 괴로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ㅁ 책은 천천히 끝까지 마음을 이야기 하지만 직접 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 경애의 마음이 제목인데 왜 마음을 말하지 않는가, 싶을 정도로.
- 한번 써본마음은 남죠. 안 써본마음이 어렵습니다. 힘들겠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
경애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은 상수에게, 조 선생이 한 말이다.
경애에게,
-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
고 했던 상수와, 그런 상수에게 경애는.
- 어떤 시간은 가는 게 아니라 녹는 것이라서 폐기가 안 되는 것이니까요, 마음은.
이라고 돌려주었다.
그 둘은 그들 안에 아픔으로 숨 쉬고 있는 '은총/E'에 대해,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위로했다.
그 위로에 얻어맞고 또 멍이 들었음에도 그렇게 상처는 깊어지고 살이 돋아나고 단단해진다.
ㅁ 이 책은,
내겐 처음부터 끝까지 '위안과 위로'였다.
경애가 어느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고 '불행'이라고 언급했을 때
E는 그에 대해 반박을 했다. 경애는 그런 E를 이렇게 표현한다.
-... E는 그때 겨우 열여덟의 소년이었다. 그런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반복된 현실과의 충돌이 있었을까.
나는 경애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런 깊이를 이해하기까지 당신은 얼마나 홀로 아픔의 시간들을 견디며 단단해졌느냐고...
ㅁ 눈물이 차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몸 안 가득 눈물이 찼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책을 덮을 때까지는. 그들에 대한 존경과 나름대로의 위로였다.
-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경애는 아프다고 생각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은 없었다.
다행히도 상수와 경애는 오랜 시간을 돌리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 상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들은 오래 아프고 그 아픔을 견뎠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함께 아프고 견뎌주고 싶었다.
책을 덮으며 눈물이 왈칵 나왔던 것도 같다.
슬퍼서가 아니라, 나의 모습이라서.
그들이 겪은 사랑과 이별과 아픔과 슬픔, 이런 것들이 어느 누군가의 모습이라서.
아름다운 책이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감사했다.
어느 봄날, 바람이 불어 미치듯 꽃잎이 날리는데 문득 그 아래서 외로운 생각이 든다면
그땐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러면 아련한 감정이 폭풍처럼 몰려와 누가 보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오열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오버가 아니냐,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내 마음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랬구나, 안아주는 방법이라고.
앞으로 또 견디며 그러겠구나, 성장하는 방법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