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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Oct 17. 2022

스물아홉 #3

여름에서 가을

2015년, 부산


68

가려져 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조금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면 눈앞에 펼쳐질 광경.


69

나를 만나려고 달려온, 낡고 바랜 너의 세월이 궁금하다.

팝콘을 담는 용기에서 시작해 누구의 곁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재활용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까.

점점 사람을 만나고 깊이 알아가는 일이 벅차다.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은 모두 오래된 옛날 사람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새로운 관계가 길게 지속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때론 나의 인생을 단 몇 줄로 요약해 말해주기도 하고, 조금만 아니다 싶으면 거리를 둬 버린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 한다. 외롭다고 한다.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도 이렇게 궁금해하면서 사람을 궁금해하지 않은 나를 반성한다.

당신의 세월을 궁금해 하기. 나의 세월을 보여주기.

모두가 달리는 세상일지라도 당신과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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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눈물 나게 웃었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 더위를 엄청 타는 내가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준. 말주변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답답하단 말을 듣는 나를 스스럼없이 떠들게 하는.

여행의 목적지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늘도 또 하나 배웠다. 아직 이십 대 아가씨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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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인사치레라도 마음에 없는 빈 말은 하지 못한다. 아직도 나는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싫어도 괜찮은 척, 좋은 척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다소 어리석은 생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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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고 물어와서 안 괜찮다고 대답했다. 무엇을 해주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해서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아늑한 위로를 받은 나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무엇을 해주어야 좋겠냐고 물었다. 그는 나를 따라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안 괜찮을 때 괜찮아진 것보다 괜찮을 때 더 괜찮아진 기분을 아냐고 그는 물어왔고 나는 모른다고, 그러니 괜찮은 지금, 다시 한번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래오래 함께 했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더할 나위 없이 괜찮았다.


73

FM2에 첫 필름을 물리고 처음 쓰던 날 우리는 어느 타르트 카페에서 타르트와 아메리카노를 먹고 마셨지. 사진을 찍으려고 길을 나서자마자 골목 깊숙이 앙증맞게 숨어있는 카페를 발견했어. 애석하게도 우린 가던 길을 가야 했고 실내에서 바깥이 이렇게나 잘 보일지 짐작 못한 채 유리에 비친 우리 모습을 찍고 떠났어. 오늘은 롤라이 35에 첫 필름을 물리고 처음 쓰는 날이야. 문득 네 생각이 나서 때마침 내가 이곳에 있어서 그때 우리 들어가지 못한 카페에 혼자 들어왔어.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은 모두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는데 이곳은 벽을 보고 앉아도 마음이 놓여. 어릴 적 좋아했던 플라이투더스카이의 십오 년 전 노래가 흐르고 옆 테이블에 앉은 여대생 두 명의 수다가 사랑스러워. 많이 좋아하는 이병률 작가님의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펼친 채로 멈추지 못해 다 읽어버렸고 나는 결국 네가 더 보고 싶어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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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드디어.

하루 종일 기다렸어.

그런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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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없게 바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맞춰 걸으며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보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 애써 나에게 맞춰 준 것이라기보다 공교롭게도 속도감이 맞아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잘 알아서 그러한 경우일 때가 있다.

일일이 표현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수십 번도 더 고맙다고, 너무 좋다고 말했던 날이 있었다.

실은 내가 이렇게 느끼도록 그가 애쓴 것이리라 짐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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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궁금해서 알고 싶지 않다. 이만큼의 기대마저 깡그리 사라질까 봐 너의 마음을 내가,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너를 몹시 사랑하지만 너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전화하지 않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나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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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어떤 일을 벌였고 혼자서 해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으나 결국 난 따뜻한 그들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몰랐고 그저 원래 하는 일인 듯 대수롭지 않게 날 도와주었다. 고맙다는 인사에도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 것이 없다며 시큰둥해하는 것이 정말로 고마웠다. 모두 가던 길을 갔고 나 또한 가던 길을 갔다. 나무가 하늘을 향하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오래된 친구에게서 아주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별다른 이유는 없는데 그냥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고 했다. 목소리를 들어봐도 역시나 이유는 생겨나지 않아서 별말 없이 싱겁게 전화를 끊었다. 몇 년 만의 통화였는데 어제도 했고 내일도 할 것처럼 툭, 끊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이 참 기분 좋아서 싱긋이 웃으며 돌아왔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더운데 따뜻한 마음이 싫지 않아서 행여나 식어버릴까 봐 마음을 여미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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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해 끌리듯 주변을 맴돌다 아는 사이가 되고 친해졌을 땐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일방적인 감정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은 봄이었고 때론 그의 작은 한마디가 벚꽃잎처럼 가슴에 날아들어 내 속을 간지럽혔다.

그러나 이내 그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음에 지치고 사랑이 없는 그의 행동과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내 안에 콕콕 박힐 땐 그와 친해지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후회되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반복되는 감정을 겪으며 사계절을 지낸 후, 진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또렷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첫눈에 반해 무턱대고 빠진 사랑이 아니라서 더욱 확실하고도 위험할 사랑에 젖어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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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안경을 빼고 다닌다. 적응이 되니 애써 똑바로 보려 하지 않고, 희뿌연 시야로 길을 걷고 사람의 얼굴을 본다.

딱 이 정도. 풍경도 사람도 적나라하게 사실적인 모습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선명하지 않지만 너무 흐리지도 않게 바라보는 것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아무리 살아보고 겪어봐도 사람은 다 달라서 어렵고, 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도 여전히 어려우니. 애써 단정 짓지 않도록 마음의 안경을 빼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겠다. 상대방이 안경을 빼지 않은 채 날 보더라도 그것 역시 그런가 보다 하며.

 

80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행복한 오늘이었는데 하루가 지나고 밤이 오니 아무 일도 없던 날보다 더 마음이 먹먹하다. 가슴속에 봄이 왔다가 순식간에 겨울이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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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어도 아프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변함없이 아프던 머리.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을 꺼내 깨끗이 씻어 다시 넣고 싶은 심정으로 다대포에 갔다. 일몰을 찍고 싶었는데 무슨 공연을 하는지 해지는 쪽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프레임을 어떻게 잡아도 별로였다. 사진은 포기하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갔다. 두 번째로 찾았는데 바로 알아봐 주신 사장님 덕분인지, 비엔나커피를 주문했는데 같이 주신 복숭아 샤베트 덕분인지 통증이 좀 가라앉았다. 조용한 카페 안, 눈앞엔 점점 까맣게 물들어가는 밤바다. 어느 책을 읽다가 두려움이 없다면 무엇을 하겠냐는 물음에 독립, 세계여행, 마음에 꼭 맞는 좋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고백하기 등을 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모든 일을 하기 위해 먼저 넘어야 할 공통된 산 하나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도 아닌데 한동안 그 산을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이 새삼스러워 의지를 다지다 보니 어느새 미지근하게 남아있던 두통이 싹 사라졌다. 두려움이 없는 순간은 없을지라도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의 용기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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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밤, 여자는 한화와 롯데의 야구경기를 보며 치킨을 시켰다. 집에서 입고 생활하는 옷차림 그대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집과 오분 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맥주를 사 왔다. 한 캔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병을 집었다가 그것도 좀 모자랄 것 같아서 제일 큰 페트병 하나를 집어왔다. 슈퍼 아저씨는 설마 이걸 혼자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하며 장난스럽게 물었고 그녀 에이, 그럴 리가요 하고 답하며 웃는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너무 더워 찬물을 끼얹고 맥주를 한 잔 따라 마시고 있으니 치킨 배달이 도착했다. 눈은 야구, 코는 호흡, 입은 치맥. 완벽하다. 보고 먹는 것에 열중하며 경기장에 있는 여느 관중들처럼 반응했다.

한화가 이기고 롯데가 졌다.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오늘도 어떻게든 밤을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지만 잠자리에 눕자마자 그런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머릿속으로 뛰어드는 생각을 그녀는 막지 못했다.

차라리 당신과 이별할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질리도록 싫어도 끊어낼 수 없는 관계가 아니어서. 그렇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찌 되었든 여전히 힘든 이별이지만.

여자는 쉬지 않고 들이킨 맥주 덕분에 금세 잠들어 버렸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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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생신.

정확히는 내일이지만 아침엔 모두 바쁘기에 오늘 저녁을 생일 당일 아침인 양 차렸다. 온전히 내 손으로 다 준비해보기는 처음이었던 미역국과 호박전, 미역을 넣은 오이냉국과 고등어구이. 나머지 가족 모두의 생일은 엄마가, 엄마의 생일은 언니와 내가 차렸던 지난날들이 참으로 미안해서 약 두 시간 동안 불 앞에 서서 흘린 땀들도 부끄러웠다. 별 것 없는 밥상을 앞에 두고 그저 고마워하는 엄마를 보니 더욱.

그러다 문득 잘하지 않는 숫자 계산을 해 보았다.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 뱃속에 내가 있었구나.

저녁상을 다 치우고 선풍기 앞에서 아아~~~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응, 생각도 못했는데 딸내미가 일찍이 장 봐와서 잔칫상을 차려줬어. 난 멀리 있다는 핑계로 엄마한테 한 번도 이렇게 못 해 드려서 늘 미안했는데 이제 딸한테도 미안하게 생겼네.

이모들과 통화할 때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강원도 사투리. 다른 방에서 그렇게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파서 더 크게 아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내가 미안한 것까지만 아는 척.


84

일사병이 두려운 여자와 냉방병이 두려운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시원한 실내에 좀 더 머물고 싶어 했고 남자는 실내에선 잠시 쉬어갈 뿐 얼른 가던 길을 가고 싶어 했다.

어느 가장 더운 날 둘은 함께 해야 했고 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여자를 위해 남자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참았다.

남자를 위해 여자는 뜨거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가슴이 뜨거운 여자와 머리가 차가운 남자가 있었다.

여자는 거리를 걸으며 여러 가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남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남자는 여자와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는 알고 그녀는 모르는 많은 곳을 얼른 보여주고 싶었다.

여자를 위해 남자는 생각보다 더 쉬었다.

남자를 위해 여자는 생각보다 더 걸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치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85

벌써 네 번째다. 알고 지낸 지 한참이 된 친한 친구의 쌍꺼풀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혼자 뒤늦게 알고 놀라는 일. 심지어 오늘은 그 네 번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주말에 길에서 누가 날 부르는 거야. 돌아보고 가까이 가서 눈을 마주쳐도 못 알아보겠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동창이었어. 눈, 코, 입, 턱을 전부 성형해서 목소리 말고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게 전혀 없었지. 동창 누구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아직도 낯설어. 넷 중에 하나만 해도 놀라운데 그 모든 걸 했다니 세상에."

이 말을 듣고 뭔가 찔리는 표정을 짓던 친구의 고백.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야. 나도 눈을 해보니 코도 하고 싶어서 코도 했는데 그러고 나니 더 욕심나더라."

뭔가 굉장히 민망해져서 나도 용기만 있었다면 뭐라도 했을 거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횡설수설 지껄였다, 한참 동안.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또 한 번 괜한 말을 했다.

"어머니가 워낙 예쁘시고 둘이 닮았길래 상상도 못 했지."

"엄마도 같이 했어."


86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참으려 해도 제멋대로 터진 눈물샘은 멈춰주질 않았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얘기할 수 없어서 더 억울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무례하게도 그럴 시간조차 빼앗았다. 나중에 얘기하자는 나를 붙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다섯 번 연이어했다.

삼십 분을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어느 버스정류소에서 멈췄다.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번호도 안 본 채 탔다. 아무 데나 내려서 눈물이 멈출 때까지 울어야겠다. 오후 다섯 시 삼십구 분.

목적지는 없었지만 어디든 그곳이 바다이길 바랐다. 그제야 내가 탄 버스의 번호와 노선도를 확인했고 송도에 내렸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물도 멈췄다. 오후 일곱 시 이분.

검푸르게 어두워지는 바다 위로 도시의 불빛이 길게 내려앉고 있다. 이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지으며 집에 들어갈 수 있겠다. 오후 일곱 시 삼십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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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수가 적은 나를 두고 어떤 이는 편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불편하다고 한다.

전자는 물어보지 않은 속내를 털어놓고 후자는 나오지 않는 대답을 답답하게 기다린다.


88

'숨이 멎게 아름답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너무 좋아 죽을 것 같다.'

따위의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왔다. 수식어가 없거나 정말, 아주, 많이 등의 수식어를 붙일 때보다 강력한 의미임을 호소하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인지 일요일 새벽 세 시경 나의 심장과 호흡으로 느꼈다.

손이 떨리고 뱃속 모든 장기들의 울렁임이 느껴지는 새벽이었다. 숨이 가빠 헥헥거리며 아버지가 있는 거실로 기어갔다. 아버지는 배를 주물러주다가 등을 주물러주겠다고 엎드리라고 했다. 엎드려서 베개를 베고 있는데 점점 고개가 바닥으로 쳐졌다.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숨을 쉬는 걸 '잊어'버린 걸로 기억한다. 정말 잊어버렸다. 당연히 쉬어져야 할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숨이 멎었다.

나는 차라리 편안했고 아버지는 불안했던 순간 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수많은 감정상태의 목소리를 들어왔지만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숨 쉬고 있냐는 말도 처음 들었다. 

그 음성과 등을 토닥거리는 손길에 나는 의식적으로 숨을 쉬었다. 다음날 아버지는 정말 딸 하나를 잃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인생을 돌아보고 회개기도를 했다며.

작년 말부터 숨이 가쁜 것이 벌써 세 번째. 늘 잔병치레가 많은 나라도 그 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좀 무섭다. 죽음의 순간이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 언제든 삶이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피부로 느껴지는 더위 같아서 식은땀이 나는 하루였다. 머리로 아는 것과 다르게 온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회복하는 시간도 점점 오래 걸려 언제 괜찮아질지 모르겠다.

거의 항상 내일이 없이 살았지만 더욱 그렇게 살 것 같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오늘,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그리고 기도해야지. 하루를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며 그 뜻 안에서 살게 해 달라고.

앞으로 '숨이 멎도록...'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을 것 같다.


89

오랜만에 시원한 비가 주룩주룩.

굵은 비가 후드득 떨어질 때면, 지나간 사랑과 이별을 묻어 놓은 가슴속으로 빗방울이 툭툭 떨어져 선명한 자국이 남는다. 비가 그치면 자국이 남은 모양 그대로 굳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독여 놓지만, 잊을만하면 내리는 비에 또다시 다른 자국이 남고 결국은 그가 떠오른다.

보고 싶네.


90

사람은 둘인데 의자는 하나이다. A가 먼저 앉았다가 B가 앉았다가 나중엔 같이 앉는다. 엉덩이를 반만 걸쳐 위태롭지만 등을 맞대고 기대는 것이 싫지 않아 앉아있다가 허리가 뻐근해 일어섰다가를 반복한다.

여름과 가을이 그러고 있다. 사이좋게 너 한번 나 한번 그리고 같이.

둘이 같이 내려앉는 요즘 저녁의 공기가 강아지풀처럼 간질이기도 하고 이따금씩 토라져 서늘해지기도 하는 것이 귀여워서 자꾸만 걷고 싶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이십 분쯤 걸리는 거리를 골목골목 먼길을 돌아 한 시간 동안 걸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걸은 적이 없었다는 듯 반대방향으로 새롭게 걸음을 뗀다.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봄과 가을, 혹은 이른 봄과 늦은 가을을 좋아한다고 대답해왔다. 누군가 다시 나에게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걷기 좋은 계절이라고 말해야지. 이를테면 지금. 그러니까 여름과 가을이 너 한번 나 한번 그리고 같이 다정하게 내려앉고 매미 울음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어지럽게 섞이는 시간 말이다.


91

어릴 적 내가 쓴 일기가 읽고 싶었다. 몇 권 중 민트색의 두꺼운 노트를 펼쳤더니 1999년 8월 18일의 일기가 시작되었다. 여름방학이었고 언니랑 도넛을 만들었는데 맛이 없었다. 다음날엔 통도 환타지아에 가서 놀이기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탔다. 1999년 8월 25일엔 신창원을 신고한 사람이 경찰이 되었단다.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해서 덜컥 경찰이 되었다나. 난 그 일에 대해 아무리 신창원을 잡은 사람이라도, 경찰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상상도 못 한 일들이었다. 비 오는 날, 저 비는 날 대신해 울어주는 것 같긴 한데 너무 많이 울어서 질린다는 둥 뉴스를 보니 자꾸 누가 자살을 해서 세상이 흉흉하다는 둥 애어른 같은 소리를 많이도 끄적였다. 같은 해 10월 25일엔 줄넘기 대회에서 1등을 하고 10월 29일엔 뜨개질로 목도리를 완성했으며 12월 20일엔 우리 집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아 춤을 췄다. 매일 밤 여덟 시부터 열 시까지 이정현의 클릭 1020을 들었고 열 시부터 열 시 반까지 차태현의 인기가요를 들었다. 끝까지 듣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열 시 반에 잠들었다.

16년 전 어린 나의 이야기를 읽으니 분명 나인데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장르의 소설과 영화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알 것 같았다.

당시의 담임 선생님은 일기 끝 여기저기에 나를 생각이 깊은 꼬마작가라 부르며 소감들을 써주셨다. 그러고 보니 담임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어른이 되어 작가가 되면 책을 들고 꼭 찾아오라고 하셨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 어쩌면 내 것이 맞나 싶을 만큼 생경한 기억과 추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

그만했어야 했다. 들뜬 마음으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2001년부터 2002년까지의 일기를 기어이 읽었다. 또렷이 기억나는 시간들이 눈앞에 재현되었다. 두려움에 떨며 언니와 부둥켜안고 눈물로 지새우던 수많은 밤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과거에서 날아온 큰 돌덩이 하나가 오랜 시간의 인내로 피워낸 꽃들을 짓이기는 듯했다. 시간여행이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1999년에도 2002년에도, 그리고 2015년에도. 내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다고 말한다. 그때의 나를 이렇게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 어린 나는 더 큰 슬픔이 덮쳐올까 봐 작은 기쁨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기쁠 땐 웃었고 슬플 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일기장에 썼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달려가고 싶지 않은 미래에 펼쳐볼 나의 모습을 기록하며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혹시 모르지. 십 년 뒤쯤엔 십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지도.


92

혼자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서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는 게 어떨까.

편안함과 자유로움. 난 늘 그러한 상태를 꿈꾼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행은 고단하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마음의 편안함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자유.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 혼자가 편하고 익숙해서 같이 하자고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무엇인가 함께 하고 싶어 진다면 그 사람을 꼭 붙잡아야겠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저녁을 보내고 있다. 비바람이 치는 저녁에 굳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성가셔하며 책을 읽는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처음엔 한적하다가 이내 두세 명의 여자들이 옆에 앉아 시끄럽게 깔깔대거나 디저트를 쩝쩝거리는 통에 테라스로 나왔다. 열 살 미만의 어린 아이나 틀니를 한 어르신이 아니라면 음식을 쩝쩝대고 씹는 사람을 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예민하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누군가를 찾지 못했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데 아직 그럴 수 없다.

모든 것이 답답하고 미련스럽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도 미운 스물아홉 반이 되었나. 그런데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어차피 먼 길이다. 조바심을 내고 걱정한들 달라질 것은 없으니 태평스럽다. 그런 나 자신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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