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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Dec 10. 2019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1.

요가와 명상을 오래하는 사람들은 가사상태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 같다. <아무튼, 요가>에서도 명상 중 무를 체험하는 -무와 자신이 통합된다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 의식이 없음을 경험한 그 이후 죽음이 두렵지 않더라, 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 죽은 후의 시신화장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으니(도대체 뭘 느낀다고!) 무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못 느낀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만도 대단하긴 하다. 


2.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죽음 그 자체보다는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의 육체적 고통일 것이다. 삶에 집착과 욕심이 많을수록 이 순간이 길고 고통스럽다 한다. 가냘픈 숨에 의존하여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넘어왔다, 넘어갔다 하는, 지상의 시간으로서는 그 짧은 찰나.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꿈처럼 길고도 긴 시간. 그 순간이 어떻게, 얼마만한 고통으로 다가올지 몰라 그 미지의 아픔보다는 익히 알고 있는 아픔으로 가득찬더 긴 생을 참아내는 지도 모르겠다. 


3.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살다가 죽기를 원한다. 의식없이 육체만 살아있는 삶, 주변을 괴롭게 하는 치매의 삶은 물론이요, 정신이 멀쩡하지만 자신의 몸을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삶도 원하지 않는다. 오늘 친구의 어머니가 어느새 허리가 90도로 굽어지고 워커 없이는 걷지도 못하지만,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도우미 도움을 받지 못하여 해외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청소며 식사를 돌보아주느라 오고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도움 받는 어머니나 도움 주는 자식들이나 다 못할 일이다 싶었다. 


고령화사회, 독거노인의 삶이 많아질수록 멀쩡한 정신을 가진 자의 죽음 선택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 주변 지인의 정정한 90대 할머님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선택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흘간 자식들의 도리와 할머니의 고집이 충돌했다 한다. 산 자들의 도리를 꺾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래도 가족이 있는 경우는 나의 자취를 정리해주기라도 하니까 낫지. 독거노인의 경우는 대부분 한달 후 발견이리라. 그 삶의 자취를 치우는 자에게도 못할 일이다. 


4. 

어떤 책에서, 의사인 저자가 독극물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을 읽었다. 내일 급작스런 사고로죽을 수도 있겠지만, 수명이 너무 지속될 때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그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덜 고통스럽고 보다 확실하겠지. 죽음을 준비하느라 다 처분하고 정리했는데, 죽음에서 되살아오면 얼마나 황망할까를 상상해보곤 한다. 죽음은 확실해야 한다. 


국가는 전 국민의 인간다운 품위를 가진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니 인권 차원에서 좀 더 편하게 자살할 수 있는 권리를 다루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건 추상적인 인권, 사람이 어떻게..의 관점인데 대한민국은 이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는’ 나라가 아닌가. 이 때문에 인간답지 못한 삶을 마감할 권리를 허하지 않는게 더 비인권적이다. 

가진 게 많아서 자식에게 뺏길까 두려운 기득권이 특히 이를 반대하겠지. 재산 때문에 자식에게 강제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심리학적 상징을 넘어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렇지만 십년후, 이십년 후 이들보다는 가난한 독거노인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공리주의를 추구하느라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나라 아니었던가. 


5.

설사 이 권리가 통과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권차원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 통과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사람의 도리면에서는 각하되어야 마땅할 내용이겠으나 경제적 효율성 면에서는 슬그머니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비생산인구의 감소, 라는 말에는 경제적 짐을 덜어낸다는 뉘앙스가 숨어있다. 누군가의 짐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6. 

죽음은 순간적인 고통이 무서울 뿐이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삶은 더욱 두렵다.

나의 노년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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