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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Jan 01. 2020

양준일과 리즈시절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지는' 삶을 택해도 괜찮은 이유

슈가맨을 통해 양준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제서야 본편을 보았다. 

어렸을 적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그의 리베카를 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보았지만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와 노래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노래와 춤은 지금 보니 정말 자연스럽다. 그는 당시의 대중 정서와 맞지 않았던 것뿐이구나. 


그러나 그 ‘다름’ 때문에 그는 그의 존재 자체를 부인당했다. 돌팔매질이며 비자 문제를 들어보면 대한민국이 소수, 다름에 대응하는 방식이 경악스럽다. 이건 존재말살의 태도 아닌가.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양준일은 ‘살아가는’ 삶보다는 ‘살아지는’ 삶을 살아온 듯하다. 결국 가수로 빛을 보지 못한 채, 영어를 못하는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몇 년 전 미국으로 돌아올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 나이에 서빙 일을 시작해서, 2주를 빠지면 월세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누구라도 절망하지 않기가 어렵다. 그러나 오십대에도 놀라우리만큼 맑은 그의 얼굴은 그가 이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을지를 보여준다(주변의 오십대 아저씨들을 보라. 그들의 탁한 기운과 기름진 얼굴들을 보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가 서빙을 제대로 하기 위해 굶기를 선택한 것이 이 50대의 댄스가수가 여전히 이십대의 비주얼을 유지할 수 있는 트레이닝이 되어버렸다. 그의 가늘고 섬세한 춤선은 아직도 아름답다. 


 슈가맨에서의 제안이 왔을때 그가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은 2주간의 부재로 인한 일과 수입의 단절. 출연이 뭘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비행기에 올랐던 것은 자신의 꿈에 대한 마지막 미련이나 예의, 마무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십대의 자기 자신한테 보내는 말은 그래서 뭉클하다. “네 뜻대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어” 


 그렇게 한바탕 꿈으로 마무리될 듯했던 슈가맨은 마침내 최초의 팬미팅으로 이어졌다. 그토록 그의 존재를 부인했던 대한민국이, 그가 꿈을 포기했을 때 그에게 열광하는 아이러니라니. 삶이라는 긴 관점에서 보면 그의 이십대부터 사십대까지가 그의 시험 기간이었을 것이다. 시험 주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써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는 멋지게 응전했다. 


 나는 40대 이후 리즈시절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이미 통념상 뒤로 물러날 법한 그 나이에 어떻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지,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아리송했다(그렇다, 나는 아직 리즈시절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양준일이 고맙다. 타의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하루하루 내 존재에 책임을 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그가 더 이상 월세를 걱정하지 않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삶이 그 정도는 그에게 보상해주었으면 좋겠다. 


P.S. 그나저나 ‘2019 리베카’는 정말 좋네. 언젠가 양준일과 김재환의 콜라보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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