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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y 09. 2020

나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자신의 틀을 벗어나는 용기에 관하여


2019년 가을, 1인 쇼핑몰을 오픈했다. 주요 아이템은 타로카드 관련 핸드메이드 상품. 그렇다, 점술도구로 알려진 ‘그’ 타로카드가 맞다. 이 간단한 문장에 이르기까지 나에게는 6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20여년간 회사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경제적 미래를 생각하면 언제나 불안했다. 대개 자신이 하는 일로 창업을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인 마케팅은 이 자체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창업아이템이 간절했다. 어찌어찌 창업 아이템을 찾아 20년간의 조직 생활을 접었지만, 실제 그 분야에서 무급으로 일을 해봤더니 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잡 노마드 생활이 시작되었다.


문과, 사무직 경력, 비혼, 자본 없는 40대가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지식마켓인데, 그 분야의 일들은 다단계와 비슷했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교육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해서 신규 진입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개는 그 과정에서 실습이라는 명목의 저렴한 노동을 제공해야 했다. 일껏 쌓아올린 경력이 정부정책때문에 쓸모없어 지기도 했다. 그동안 해왔던 마케팅과 무관한 여러 일들을 하다보니 도대체 마케팅이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건지, 몹시 궁금해졌다. 스티브 잡스는 삶에서의 점(dot)에 관해, 돌아보면 전체가 연결되는 하나의 스토리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도대체 내 인생의 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하나도 내 것이 되지 못했고 시간과 저금만 성실하게 줄어들었다. 건강하다는 것이 천행이었다.


2019년 봄, 흰 종이를 펴고 나에게 남아있는 것을 적어보았다. 이미 십여년 전부터 공부하고 있던 타로카드가 떠올랐다.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상담의 도구 혹은 타로샵 오픈을 염두에 두고 타로카드를 공부할 때 나는 이것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를 계획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이 공부가 좋아서 오랜 시간 주말마다 창원으로 쫓아다녔고, 심지어 잡 노마드 기간 어렵게 번 돈을 이 공부에 투자했다. 한 눈에 반하지도 않았지만 쉽게 시들해지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타로카드는 내게 숨겨진 연인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지만 비과학적인 점술 이미지 때문에 지인들에게 차마 내 연인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타로카드 이야기를 꺼내면 어쩐지 우스워 보일 것 같았고 신뢰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질 것 같고 동정의 눈길을 받을 것도 같고 등등… 한 마디로 자존심이 상했다. 실제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이 대부분은 내 투사, 내 상상이 빚어낸 것이다. 내 에고는 그만큼 단단했다.


에고를 유지하고 살려면 경제적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자신의 밥벌이를 책임지지 못하는 에고라면 한번쯤 물음표를 던지는 게 마땅하다. 투사를 거둬내고 남은, 마케팅과 타로카드 두 키워드를 합하면 무언가 나만의 영역이 생길 것 같았다. 그게 쇼핑몰이었다.

1인 쇼핑몰이지만 사업계획서와 마케팅 계획을 썼고, 운영체계도 신중히 설계했다. 디자인 감각이 제일 많이 아쉬웠다. 한 상품을 일곱번이나 반복해서 사진촬영해도 퀄리티가 턱도 없이 부족하고 처음 다루는 포토샵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배우고 있다. 그렇게 7개월, 아직 모르는 게 더 많고 구매자 문의가 뜨면 가슴부터 철렁한다. 그러나 구매자들과 타로 얘기를 나눌 때 문득문득 그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건 뒤돌아서면 칼꽂기 바쁜 회사를 다닐 때에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한 감정이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쇼핑몰을 넘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더 나눌 수 있는 곳, 특별한 어떤 장소로 이 쇼핑몰을 포지셔닝 하는게 현재 나의 소망이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좀 더 큰 비전을 그려보게 된 것도 생각지 않은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대개 좋아하는 일이란 낯설고 위험해 보여서 그 일을 선택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그랬다. 나의 단단한 에고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므로 타로카드를 숨겨진 연인에서 공식적인 동반자로 명명한 것은 내 나름의, 더 이상 에고에 휘둘리며 살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짧아도 좋다. 좋아하는 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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