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물놀이터를 지키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역대급 장마기간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장마는 힘도 못쓰고 끝나버렸다. 올해는 유난히 습하고 끈적한 무더위가 일찍부터 시작됐다. 지자체에서는 서둘러 한강수영장을 비롯한 물놀이터를 개장했다. 그리고 도심의 아기 참새들은 물놀이터를 방앗간 가듯 드나들고 있다.
나의 유년시절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바닷가에서 여름을 보냈다. 개학날에는 나만큼 새까만 아이는 없을 정도로 눈뜨면 바다로 향했다. 게를 잡고 물고기를 따라다니다 보면, 옆집 친구도 하나 둘 나왔다. 멀리서 엄마가 간식 먹으러 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옥수수를 손에 들고 또 모래사장을 향했다. 그렇게 삶은 옥수수알처럼 촘촘한 여름 바다의 추억이 내 안에 박혀 있다.
이제는 바다보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더 길어진 어른이 되었다. 아이와 바다를 가는 날보다, 광화문 물놀이터나 한강수영장을 다니는 게 더 익숙한 도시 속 엄마가 되었다. 이 도시의 분수와 물놀이터에도 우리 아이들의 추억이 채워지고 있다.
물놀이터나 한강 수영장처럼 물을 사용한 시설을 볼 때마다 나는 묘하게 뿌듯하다. 우리나라가 진짜로 '물의 도시를 꿈꿀 수 있구나!'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고대 로마에도 분수가 많았다. 도시 내 물을 공급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라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20년 전 미국에 살던 시절, 커뮤니티마다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터와 큰 규모의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비치타월 하나 챙겨서 삼삼오오 수영장에 모였다. 이런 풍경을 이제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엄마들은 오늘도 각종 물놀이터 정보를 검색하고, 공원이나 광장 한편에는 으레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가 자리한다. 그리고 그 주변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인다.
아이들에게 물놀이터는 여름 최고의 교실이다. 반복해서 물을 튀기고, 친구를 발견하고, 낯선 공간에서 적응하고, 때론 갈등도 해결한다.
미끄럼틀 아래에서 내려오는 아이와 지나가는 아이들이 계속 부딪히는 사고가 자꾸 생기니, 아이들은 "저 이제 내려가요! 비켜주세요!"라고 소리치며 아래를 살피고 내려온다. 친구 한 명이 아래에서 수신호를 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어느새 질서와 배려가 자라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해 아이는 몸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배운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물줄기 곁에 앉아, 고대 로마의 철학을 새삼 느껴본다. "물이 흐르면, 사람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그곳은 도시가 된다." 오늘도 아이는 자기만의 도시를 짓는다. 뛰고, 소리치고, 젖은 발로 세상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