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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Feb 12. 2024

우리는 '또' 레트로에 열광 중

추억과 새로운 경험의 맞물림



둘째의 생일맞이하여 농촌 체험을 갔다. 사실 친정이 강원도 강릉인지라 농촌체험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꼭~ 가봐~ 애들이랑 가면 너무너무 좋아!"라는 말에 다녀왔는데, 정말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출발 전엔 10명 정도만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4인 가족 기준 24팀 정도 사람들이 있었다. 계산해 보니 약 100여 명. 이 팀은 4시에 하산하는 팀이고, 8시 하산팀과 1박 팀은 따로 그룹을 지어 체험을 하고 있었다. 예약 사이트에는 "농촌의 지저분함과 불편함이 있습니다"라고 적어놨는데도, 아파트와 쇼핑몰에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농촌 체험에 이렇게 진심이라니. 얼음 미끄럼틀, 트렉터 타기, 모닥불에 군밤굽기등 한시간 단위로 빽빽 짜여진 스케쥴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트렉터를 개조한 트렉터 라이딩. 안전벨트를 차고 달리는데도 무섭다.

(*그나저나... 4시 프로그램만 해도 일인당 5만 원씩이고, 계산 한 번 해보니- 와... 주말에만 얼마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 겨울은 비수기라 그렇고, 여름에는 주말 동안에 1000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양평에 땅이 없는 게 아쉽다. 아쉬워)



친정아빠는 폐암이 세 번이나 재발하여 폐를 다 잘라내고, 이제는 최소한의 폐만 남겨놓고 있다. 남은 평생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을 맞고 나흘정도는 후유증으로 죽다가 살아나는 스케줄을 보낼 예정이다. 덕분에, 64살에 (요즘 나이로 치면 굉장히 빠른 나이에) 은퇴하고 본가 뒤의 땅을 사서 아빠 정말 자신이 원하던 삶을 실현하고 있다.


아빠가 원하던 삶이란 어떤 삶인가 살펴보니, 아빠가 평소 이야기했던, "먹을 게 없어서 나무를 씹어먹었다"라는 그 어린 시절의 삶이었다.

새로 산 물건은 하나도 없다. 팔레트며, 바닥에 깐 철판 모두 이웃집에서 얻어온 것. 진정한 친환경 레트로가 여기있었다.


본가 뒤에 하우스를 크게 하나 짓고, 안에 난로를 하나 설치했다. 두 분은 오후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땔감용 나무, 가로수 정비 사업을 하고 남겨 놓은 나무를 하나씩 끌면서 집으로 간다. 큰 나무를 도끼와 톱으로 잘라서 땔감을 만들고, 난로에 불을 피워 고구마며, 밤이며 구워 먹는다. 그 위에는 스테인리스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며, 친구들이 방문하면 그 물로 믹스 커피도 타서 대접하시면서 올 겨울을 보내셨다.


정말 어디서 구했나 의문인 장작불 가마솥


하우스 밖 한편에는 가마솥을 하나 설치했다. 삼시세끼에서나 보던 장작불 가마솥 맛집이 우리 집이었다니. 그 가마솥에서 사골을 고아내고, 설날에 먹을 갈비찜도 하셨다. 며칠 전 부모님이 주신 "정말 진국인 사골"의 출처가 이 장작불 가마솥단지였다.


아이들은 신났다. 추운 겨울의 강릉은 갈 곳이 없어 친정집 안에만 있거나, 책방에 데려간 게 전부였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엄마 때문에 특히나 실내활동만 했다.) 하지만 올 해는 달랐다. 따뜻한 하우스에서 '지진이 날 때까지' 땅을 파다가, 노릇하게 구워진 고구마를 한입 깨물고서는 다시 흙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바깥의 눈을 퍼와 흙과 마른 파 부분을 섞어 머드파이를 만들고, 서울집에서 친정 하우스로 방출된 주방놀이에서 온갖 요리를 했다.


그러다 파워 J인 나는 아직 오지도 않은 여름 나기를 걱정한다. "엄마, 여름에는 어떻게 해? 난로를 치우는 거야?" 물어보니 엄마가 대답한다. "얘는, 여름에 하우스에 어떻게 있어. 더워서 못 있어. 집에 에어컨 아래에 있어야지."



레트로가 '또' 유행이다. 비단 위에 언급한 지저분한 농촌체험을 기꺼이 가는 가족들이나 먹을 게 없던 시절의 삶을 재구현한 친정아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디어에서도 90년대 사투리가 유행하고, 대기업에서도 그때 그 시절을 재현중이다. 롯데는 '쥬시후레쉬' 껌을 옛날 패키징으로로 다시 내놓았고, 에이스침대 역시 "침대는 과학이다"라고 말했던 그 시절 광고 영상과 박보검의 최신 영상을 같이 사용하여 광고 영상을 만들었다.

쥬시후레쉬와 에이스 침대의 레트로 광고 (출처. 국민일보, 에이스침대)


어른들이 이렇게 레트로에 진심인 이유는 이것이 일상이 아니라 잠시만의 "체험"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겨울 추운 농촌의 지저분함과 불편함은 하루 8시간 정도로 잠깐만 체험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고 웃풍하나 없는 아파트로 돌아간다. 비가 오면 불이 안 펴질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장작불 대신, 집에 있는 인덕션에다가 편안하게 요리를 할 수 있다. 나의 편안한 생활을 담은 집과 별개로, 불편함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가 레트로의 이유는 아닐까.


반면, 우리 아이들 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신기함이 레트로 너머에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던 빨간 벽돌집을 개조한 커피숍에서, 7살인 아들이 "엄마! 이 집은 옛날집인가 봐!"라며 빨간 벽돌집을 신기해한다. 80년대생인 나도 장작불이나 난로의 불편함을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친정집의 장작불 가마솥이나 난로의 매력에 홀딱 빠져버렸다.


불편한 경험과 체험을 할 수 있는 여유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신기함이 맞물려 레트로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40년 뒤에는 어떤 레트로가 유행할까. 머리에 칩을 다 심고는, 현재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구입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핸드폰을 하는 게 레트로라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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