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엘도라도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좀 넘은 시각이었다.
이미 출장을 한 번 와 본 적이 있어,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마중 나온 택시 기사 분에게 부족한 스페인어를 늘어놓으며 소통을 시작하니, 보고타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무거웠지만, 출국 전에 처남에게 스페인어 사전과 책들을 받아 온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동료의 도움으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숙소를 구하고 (고마워, 안드레아!), 핸드폰을 개통하고, 쌀, 과일, 음료수 등 각종 먹거리를 구입하니, 앞으로 '밥 해 먹고' 살 걱정이 들었다. 장 바구니를 들고 아파트로 가는 길에, 딸로 짐작이 되는 아이와 같이 걷고 있는 한 중년 여인이 내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내 장 바구니에 있는 것 중에 몇 개를 달라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2017년 12월. 보고타로 떠나기 전, 가족 여행 중에 속초 중앙시장에 들렀다. 몇 년 만에 방문한 그곳에서 달라진 점은 대부분의 가판에서 동남아시아 출신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시장 골목을 거닐다 튀김과 오징어순대를 팔던 곳에서 작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베트남 출신으로 추측되는 (하노이에서 장기체류 경험이 있어 그 정도 눈썰미는 있다!) 젊은 여성이 칼에 손을 깊게 베인 것 같았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한국 사람이 응급처치를 하려고 하는데, 이를 모르고 지나던 한 남자 손님이 이 여성에게 튀김을 주문했다.
그러자 이 여성은 피 흘리는 한 손을 잡은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왜소한 몸이지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이 여성은, 가게 주인 앞에서 제대로 본인의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번 제대로 밥 먹고 살아보겠다는 어찌 보면 극단적인 의지의 표현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삶의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보고타의 길거리. 그 여인은 내 장바구니를 탐했지만, 워낙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본능적 불안함에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밥 한 번 해 먹으려다, 콜롬비아의 만성적 빈부 격차의 한 단면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보고타에서는 이제 혼자 요리하고 살아야 한다. 이 나이에 뭐하는 짓인가, 푸념을 하려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디 내가 다친 손을 부여잡고 고객에게 웃음을 보이던 그 시장의 여성만큼 이겠는가. 장바구니를 달라고 구걸하던 여성만큼 이겠는가. 보고타에서 홀로 차린 조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밥은 설익었다!), 반성과 동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올해 초, 중앙일보에 게재된 문유석 판사의 글을 읽다가 '알고 보면 나도 힘들다'라는 말을 하지 말자는 다짐에 깊이 공감했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제일 힘들지만, 그걸 입에 담는 건 염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문 판사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모르고 그냥 봐도 힘든 분들이 많은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나은 처지면 최소한 입을 다물 때는 다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