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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Apr 12. 2020

단편소설적 상태

효율성에 대하여

2015년과 2016년에 코스타리카를 종종 방문했었다. 출장을 갈 때면 미국, 엘살바도르 (혹은 멕시코)를 들러 비행기를 평균 3번 갈아타야 했었는데, 그 긴 여정 동안 주로 책을 읽었다. 어느 밤, 공항 가판대에서 무심코 집은 소설책("State of Wonder")의 작가 (Ann Patchett)는 책 에필로그에, "어느새부턴가 단편이라는 것을 도저히 적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라고 했다. 장편 이외에 짧은 이야기를 적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짧은 호흡으로 타자와 도저히 쉽게 소통할 수 없는 상태 말이다. 가끔 사람들 중, 본인의 생각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고는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는 데, 이 작가의 문구를 보고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게 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간결하게, 그리고 빠르게 소통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는 사실을 점점 알아가며, 또 그러한 소통에 적응하며 오랜 기간을 버텨왔다. 효율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전광석화 같은 현대사회를 살다 보면, 조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은 점점 힘들어졌다. 짧은 호흡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분량의 대화로는 그 사람의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장편소설 같은 관계는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리자에 직책에 앉아있다 보면, 아직도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효율성을 해치는 사람들을 못마땅해하는 마음과 내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분명 그들의 장편소설 속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효율성에 지배당하면 문학 작품 같은 긴 글은 볼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을 길게 같이 호흡해 주기도 힘들다. 글을 적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효율적인 상태가 꼭 좋다고는 볼 수 없다.


긴 출장과 함께하기 좋은 건, 어떤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 사실 자체가 또 한 추억이 되곤 한다.
2015년 8월의 기억. 인천-로스앤젤레스-멕시코시티-산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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