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에서 싼타바바라로 이사 온 뒤에 한 동안 Los Angeles 에 있는 전에 다니던 교회에 나갔다. 약 2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담임 목사님이 친한 친구였고 전에 알던 분들이 다 그곳에 있어서 그리로 나갔다. 그래서 일요일이 더 바쁘다. 이래 보여도 성가대원 이었다. 그래서 10 시 반까지는 교회가야 하니까 적어도 8 시 30 분 정도에는 떠나야 했다. 미국의 일요일은 매우 한가 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늘 장을부리다가 늦게 떠나는 날도 있다.
어느일요일 날 교회에 가다가 과속을 해서 밴츄라에서 경찰에게 걸린 적도 있었다. 나는 대체로 무사고 무벌점의 우수 운전자인데 이렇게 걸려서 벌금을 120 불 내고 교육까지 받은 적이 있다. 어쨌건 교회를 2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로 다니니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아이들도 집사람도 큰 불평 없이 잘 따라와 주어서 몇 년을 그렇게 다녔다.
우리가 결정적으로 교회를 옮기게 된 것은 LA 에서 강도 경험을 하고 나서였다. 집사람이 준비 하고 있는 병원 QI 에 관한 자격시험이 UCLA 에 있어서 그 날은 나와 집사람만 LA 로 내려 갔다. 저녁 때가 되어서야 시험이 끝났다. 아내가 시험을 잘 본 것 같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는 조건이 되면 먼저 자격 시험을 준비 해 자격증을 따 두는 것이 좋다.
둘 다 배가 출출해서 LA 에 있는 자짱면으로 유명한 중국집으로갔다. 거의 6 시가 되었고 겨울이어서 어둑어둑해 지고 있었다. 손님들이 꽤 붐비는 집이어서 문가에 자리를 잡았다. 워낙 문가는시끄러워서 망설였지만 그 날은 다른 자리가 없어서 그냥 앉았다.
집사람이 음식을 시키고 나는 옆에 있는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누가 싸우는 소리가 카운터 쪽에서 난다. 누군가 술을 먹고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줄 알았다. 그 놈의 술때문에 망 한다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카운터를 쳐다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2 명의 젊은 아시안이 주인 중국인 여자의 가슴에 목걸이를 잡아 채는 것이 아닌가? 야 이것 봐라. 별 난 놈도 다 있네.
나는 눈이 나빠서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치키고 보니까 우리 집사람에 발로 툭 치면서 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왜? 그랬다. 집사람이 "여보 저거 강도야" 하는 것이다. 뭐 강도? 그러면서도 나는그 쪽을 안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 때서야 그 두 명의 청년들이 손에 쥐고 있는 까만 물건이 권총 인것을 알았다.
그순간 아 나도 강도를 만나게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칫 잘 못하면 오늘 큰 사고가 일어 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LA 에서는 식당에 강도가 들어와 주인은 물론 손님들의 지갑을 털고 반항 하게 되면 큰 사고도 난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기에 긴장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강도를 만나고 하겠지만 뭐 나야 그럴리 없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강도 행각이 일어 나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을 권총을 들고어슬렁거리며 내 옆으로 온다.
야, 정말 등골이 오싹 했다. 그 날 따라 은행에서 돈을 좀 찾아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그 까짓 돈 보다 더 지갑을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고민 했다. 크래딧 카드며 면허증 기타 중요한 증명서등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건너편의 사람들을 보니까 시계와 반지를 빼서 땅에 떨어 뜨리고는 발로 밟고 있다. 아, 저렇게 해야 ㄱ귀중 품이 없는 줄알겠구나.. 이 곳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나름 대로 대처 하는 방법이 있었다.
강도는내 옆을 지나 옆 사람의 금 목걸이를 나 꾸어 챈다. 반항을 하자 권총으로 위협한다. 서서히 움직이더니 주방으로 들어 간다. 아마도 누군가 주방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을 염려 해서 인지 모른다. 서너 번 강도가 내 옆을 왔다 갔다 했다. 그 사이에 다른 강도는 벌써 계산대에 있던 돈과 주인 여자의 다이아와 목걸이들 몇 손의 지갑과 목걸이 시계등을 강탈하고는 신고하면 다시 와서 죽인다 라고 중국식 영어로 떠들고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강도들이 가게를 나가자 좀 있다가 주인이 경찰에 연락해 어느 쪽으로 갔니? 저 쪽이다. 난리가난다. 우리 둘은 맥이 탁 풀렸다. 정말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다닐 찌라도 내가 해 받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 나는 이런 기도를 할 자격도 없지만 그런 기도가 정말 나오더라. 인간은 죽음과 가까이 가게 되면 신을 찾는 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그 와중에도 우리가 시킨 음식이 나왔다. 한 젓가락을 집다가 집사람과 나는 일어 났다. 주인이 미안하다고 안 받겠다는 것을 음식값을 계산하고 강도가 누구였냐고 물어 보았더니 베트남 갱단이라고 했다.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드는 모습이 저런 놈들 때문에 이 장사도 못하겠구나 하는모습이다.
우리가 차를 빼서 나가려는데 경찰차가 도로를 다 막고 범인을 찾는 듯 했다. 놀랍게도 2~3 분에 경찰이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역이 LA 한인 타운 8 가 근처여서 경찰이 근처에 있었겠지만 헬리콥터가 뜨고 경찰 차들이 골목을 막고 범인을 수색하는 모습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배를 쫄쫄 굶어서 배에서쪼르르 소리가 났지만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도 그 일이 생각이 나, 먹는 것을 즐기는 내가 밥을 제대로못 먹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를 말 해 주었더니 아이들도 크게 놀란다. 우리는그 일이 얼마 있지 않아서 LA 교회로부터 싼타바바라에 있는 한인 교회로 옮겼다.
한국 교회는 교포들을 자주 만 날 수 있고 또 한국적이어서 좋은데 싸움을 많이 한다. 메간 가족과 다른 좋은 이웃들을 여기서 만났다. 1 년 반 정도 다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다니다가는그 싸움에 휘말릴 것 같아 미국인 교회로 옮겼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교회를 가건만 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다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더 좋은 길을 찾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토의 하는 것 이겠지만…… 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다.
집에서길 만 건너면 되는 미국인 교회여서 그리로 옮겼다. 우리가 전에 LA 에서다니던 교회와 같은 커버난트(Covenant) 교단이어서 결정하기가 쉬었고 그 전해 교단 총회에서 한번 만났던 적 이 있던 미국 목사님이어서 쉽게 결정을 했다. Dennis 목사와의 만남이 이때 이루어졌다.
다니던한국 교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배신자가 되었다. 우리가정과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몹시 섭섭해 했다. 그럴 수가 있느냐? 혼자만살겠다고 나가냐? 니네 들은 영어가 되니까 미국교회라도 가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가느냐? 제발 내년 까지만 있어서 교회문제가 해결해 놓고 나가라.
나이가있는 어르신 권사님들과 우리를 의지 하던 분들을 생각 하면 정말 떠날 수가 없었지만 신앙문제는 어떤 정 때문에 밍기적 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우리는 미련 없이 그 한국 교회를 떠나 미국인 교회로 갔다.
그런데아이들이 문제였다. 아이들이 울고 난리가 났다. 그 동안 사귀던 한국 아이들과 떨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나는 단호히 잘라야 했다. 아이들이 아빠 제발 이러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했지만 우리는 그곳을떠나 미국인 교회로 갔다. 지금 생각 해 보니 아이들은 그냥 한국교회에 보낼 걸 그랬나 한다. 그 나마 교회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서 간단한 한국어는 했는데, 교회를 옮기고 나니 한국어 공부가 뒷전이 되어 지금도 아이들의 한국어가 서툴게 되었는데 내 책임이 큰 것 같다.
처음에 몇 주일은 우리 아이들이 힘이 없었다. 전에 한국인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이 없고 모두 미국 아이들뿐이어서인지 교회를 가도 시쿵튼 했다. 다행히도미국인 교회 목사님은 40 대 되는 Dennis Wadley 라는분이었는데 아주 설교를 재미 있게 하는 분이었다. 특히 부인 수잔(Susan)은아주 미인이어서 목사님과 친한 친구들이 모이면 Dennis 에게 어떻게 저렇게 미인을 얻었냐고 농담을 할 정도이다.
나는 학생부 목사님인 Jeff Shaffer 에게 찾아가서 우리 아이들이 학생부에 새로 오게 되었는데 전에 교회에 아이들과 친하게 지나다 보니 새 교회에 정을 잘 못 부치는 것 같다고 사정이야기를 해 주었다. Jeff 는 알았노라고하며 걱정 말고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 했다. Jeff 와 Kei 같은그의 Staff 들은 우리 아이들을 더 관심을 가지고 돌 보아 주었다.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만나는 미국 아이들을 다시 교회에서 만나서 같이 놀게 되니 점점 교회 생활에 재미를 붙여 갔다.
특히 우리 집과 교회는 불과 100 미터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아이들이 저녁에 교회에 가서 아이들과 농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며 노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중등부 학생들은 따로 모여서 예배를 보고 활동을 같이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곧 미국아이들과도 친해졌다. 집이 길만 건너면 되는 이유로 인해서 미국 교회에 아이들이 우리 집 드나 들 정도로 자주 왕래 하면서 아이들이 급속하게 친해졌다.
한국 교회를 떠나면서 한국어 교육에 차질이 왔지만 미국교회 나가게 된 것이 다른 교육에는 좋게 작용 했던 것 같다.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미국 아이들에게 왕 따를 당할 기회가 많지만 같은 학교에다니는 미국아이들과 잘 놀게 되어 그런대로 큰 문제 없이 중고등 학교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교회 학생부의 힘이 컸다고 생각 한다.
나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너 교회 못 간다 하면 아이들이 방을 청소하고 숙제를 하고 잔디에 물을 주고 난리를 할 정도로 교회에 정을 붙였다. 미국에 이민 가시는 분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미국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시도 해 보라고 권한다. 아이들 교육에 정말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그렇게해서 미국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우리로 인해서 몇 몇 한국인 가정이 우리가 다니는 미국 교회로 몇 달 동안 나오게 되기도 했다. 나는 이 교회를 나가면서 주보를 나누어 주는 어떤 아저씨를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은 다른 분과 좀 다르다. 키가 나 보다 작고 다리를 좀 절고 눈이 좀 다르게 생긴 대니(Danny) 를 알게 되었다. 대니는 다운증후군의 희생자였다.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의 주위를 끌기에 충분히 달랐다. 주보를 나누어 주는 분이 이래서 나는 굉장한 관심을 갖고 보게되었다.
나는 처음에 대니의 말을 거의 알아 듣지 못했다. 빵을 잔뜩 입에 넣고 뭔가를 말 하는 그런 발음이었다. 대니의 말을 알아 듣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나이가 든 분들 몇 분 밖에 없었다.나는 교회에 나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나는 껍데기로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생활에 익숙해 봉사 하는 일은 익숙해 있었다. 다행히도 전자 분야에 관한 일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었으므로 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회 사람들과 친해 질 수 있었고 교회 오디오 비디오 부서에서 일을 돕게 되었다.
대니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어른이지만 바퀴가 3 개 달린 자전거를타고 다닌다. 몸이 불편해서 그렇다. 자전거 뒤에는 커다란통이 있다. 그 통에 빈 깡통을 주어 담는다. 특이 한 것은대니는 교회를 나서면 택사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데 그의 자전거에는 Don’t mess withTexas! 라는 삼각형 깃발이 있다. 교회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길거리에서 대니를만나면 빵빵거린다. 대니도 손을 흔든다. 대니는 누가 자기에게빵빵대는지 모르지만 그냥 좋아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나이든 남자 집사님과 이본 (Evon)이라는 여자 집사님들이 대니(Danny)가 교회에 나오면 대니를 아기 처럼 돌봐 준다. 먹을 것도 주고 주스도 준다. 교회에서 남는음식들은 대니가 집으로 싸가지고 간다. 하루는대니가 빈 깡통을 모은 다는 것을 기억하고 집에서 나오는 깡통을 모으게 했다. 꽤 되었다.
그것을다 찌그러트렸다. 아이들과 같이 깡통을 찌그러트렸는데 아이들이 궁시렁 댄다. 그냥 주면 되지 왜 이걸 힘들게 찌그러트리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발로 깡통을 찌그리기가 좀 어려운듯 했다. 나는그게 대니 에게 좋은 거니까 그렇게 한다고 짤막하게 답하고는 혼자서 했더니 이것들이 마지 못해 따라 왔다. 좀하다 보니 나중에는 두 놈이 경쟁하며 깡통을 찌그러트리며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은 아빠 하는 대로 따라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거 같다.
막내 엔디에게 몇 개인가 세어 보라고 했다. 약 200 개가 된다고했다. 그래서 한 개당 5 센트씩 받는다고 하면 얼마나 될까했더니 10 불이란다. 너무적은 금액이었다. 200 개를 모았는데도그게 전체가 10 불이다. 나는 앤디에게 10 불 확실해? 라고 다시 물었더니 5 센트 곱하기 200 개는1000 센트고 그것은 10 불이라고 다시 말해 준다. 중 1 인 앤디는 내가 왜 10 불이 맞는가라고 묻는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가 대니를 돕는다고 깡통을 모아서 200 개가 되었지만 그래 봐야 10 불 밖에 되지 않아서 10 불이 확실한가라고 내가 물었던것인데…… 이 아이는 자기 계산이 맞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다음 주일에 아이들을 시켜서 깡통이 들은 박스를 교회로 가져 가게 했다. 대니의 자전거 옆에다 갔다 놓았다. 대니가 좋아서 웃는다. 대니는 웃으면 침이 옆으로 새서 질질 흐른다. 옆에 있는 이본 집사님이 휴지로 대니의 침을 닦아 준다.대니가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알아 듣기 위해서 정말 5 번은 들어야 했다. 옆에 있던 조우(Joe) 할아버지가 통역을 해 준다. 깡통을 갖다 준 것도 고마운데 찌그러트려서 갔다 주어 고맙다고 한단다. 그래봐야 10 불 밖에 안 되는데 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데 대니가 언덕 길을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지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를 세우고 작은 아이에게 20 불을 주면서 대니에게 점심 값이라고 말 하고 주고 오라고 했다. 앤디가 쏜 같이 가서 대니에게 돈을 주고 뛰어 온다. 대니는 고맙다고 하면서 손을 들어 흔들며 웃는다. 그가 웃으면 침이 세는데…… 우리 아이들도 아직 어려서 대니에게 좀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된다.
대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회에 일찍 와서 자발적인 봉사를 한다. 대니는 몸이 불편해서 겉 모습이 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이 교회에 새로 나온 중학생 여학생이 교회 건물 입구에서 대니가 그녀에게다가 오자 비명을 질렀다. 대니는 주보를 나누어 주려고 그녀에게 간 것뿐인데…… 다리를 절며 침을 흘리는 대니가 이 소녀에게 가니 이 놀랐던 것이다. 나중에 예배가 끝나고 그 소녀의 부모가 대니에게 미안 하다고사과를 했고 그 소녀도 자신이 소란을 피워 미안 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니가 주보를 나누어 주는 것을 못하게 하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겉 모습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교회에서까지 그의 봉사를 제한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했다.
대니와 빠이 빠이를 하고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갔다. 엔칭이란 중국집이다. 화교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우리가 가면 다른 사람 보다 더 잘 해 준다. 잘 하면 김치도 얻어 먹을 수 있다. 아주머니는미국이 좋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했다고 했다. 확실히 맞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 있을 때 화교들은 집을 살 때도 제한이 있고 취직도 잘 안 된다 했다. 내가 그럴 리 가 없다 하자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정부가 많은 제약을 주어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한다. 그 여자 주인의 오빠네도 다운타운에서 음식장사를 하는데 잘 된다. 이제 외동딸이 시집을 가면 가게를 팔고 대만으로 가련다고 한다.
대니는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산타바바라의 거리를 다닌다. 나는 그가 어디를 다니는 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마켓 주변에 있는 휴지통에서 병과 캔을 수집 하러 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대니와 많이 친해 졌다. 어느 날 턴파이크(Turnpike) 로드에 있는 모빌 주유소에 점심시간 경에 들렸는데 대니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반가웠다. 그래서인사를 하면서 여기서 무엇을 하냐고 했더니 모빌 가게의 문을 지킨다고 했다. 물론 10 번 정도는 들어야 했다. 왜냐 하면 이 내용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기때문이다. 그러냐고 했다.
그의 말은 근처에 있는 싼마코스 (San Marcos) 고등학교 아이들이 점심시간 주유소 편의점에 마구 들어 오면 물건을 집어 가지고 가기 때문에 일정한 수의 학생들을 들어 가게 하고 나머지는 기다리게 하는 일종의 경비 일을 대니가 한다고 했다. 나는좀 의아히 생각했다. 저렇게 몸집이 작고 몸이 불편한 대니가 어떻게 저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대니가 제대로 하는 모양이었다. 그 가게 주인은 인도 사람이었는데 고맙게도 대니에게 일을 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준 것이었다.
대니는자기가 한 달에 40 불을 번다고 했다. 한 달에 4 일 일한다고 한다. 하루에 4 시간 정도 허드레 일을 하며 문을 지키고 10 불이란 말도 안 되는 가격이지만 아마도 대니 에게는 처음 직업인 듯 했고 가게 주인도 큰 선심을 써서 대니로 하여금 거기에서 일을 하게 한 모양이다.
몇주 지난 후에 나는 다시 개스를 넣기 위해서 그 모빌 주유소로 갔다. 어디서 보았는지 대니가 내 차옆으로 왔다. 이번 주가 여기서 일하는 마지막 주란다. 모빌 편의점 가게를 지키는 것으로부터 해고 되고 주유소 청소를 돕고 있는데 그것도 이 번 주로 그만 두라고 했단다. 대니는뭔가 자꾸 말하려 하는데 나는 잘 못 알아 듣겠다. 나중에 내가 이해 한 것은 그가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커다란 고등 학생이 막 들어 가려 해서 막았더니 자기 얼굴에 침을 밷고 욕을 하면서 갔다는 것이다. 내가 대니와 대화하는 방법은 그가 말 한 것을 내가 다시 그에게 말 해 본다. 그 말이 맞으면 그는 웃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떤 하소연을 한다고 생각 했다. 대니가 나를 의지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 일을 본 주인이 대니 보고 이제 그만 두라고 했고 내일까지 여기서 청소하게 되는데 혹시 내가 자기에게 직업을 알아 봐 줄 수 없냐고 물어본다. 그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저래 보여도 나이는 족히 40 은넘었을 것 같은 데 고등학교 아이들이 그런 나쁜 일을 했다는 것도 걸렸지만 자신의 몸이 불구여서 이런 수모를 당한다고 생각 할 대니를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와 이야기가 길어 지자 주인이 뭐라고 한다. 손님에게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대니는 내가 손님이 아니라 자기 친구라고 화가 나서 큰소리로 외친다. 나는 대니가 그렇게 큰 소리로 씩씩대며 대는 것을 처음 봤다. 나는 주유를 마치고 직업을 알아 보겠노라고 그 사무실로 돌아 왔다.
큰 아이에게 너희 학교 아이들이 대니에게 그렇게 했다고 하니 고 1짜리 큰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수 있다고 한다. 미국 고등학교아이들이 다 좋은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 나쁜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절대로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 하지 말라고 한다.
교회는 재미 있었고 특히 데니스 목사의 사역이 좋았다. 데니스의 설교 스타일은 쉽게 그리고 유머를 섞어 가면서 시작을 한다. 설교 1 분 이내에 청중을 사로 잡는 기술이있다. 어떤 날은 설교 하러 올라 서면서 하는 첫 번째 이야기가 “Guess What?” 이다. What? 하고 교인들이 답한다. 교인 대부분이 UCSB 와 Westmont College 학생들인우리 교회 교인들은 맞장구도 잘 친다.
예를들면 “Finally I sold my station wagon.” 이 처럼 아주 일상 생활적인 이야기로시작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뭔가 깊은 뜻을 엮어 낸다. 사람의 관심을 짧은 시간에 끌고 그것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잘 전달 한다. 데니스는부임한지 3 년 만에 50 명 안팎의 할머니 할아버지 장년 들만이다니던 교회를 거의 1000 명의 대학생들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 시켰다.
가끔 여의도 순 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 이야기를 한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고 하면서 그 교회가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 진다.
데니스는지금 3 남매를 데리고 남 아프리카에 가서 에이즈 환자 속에서 교육과 선교를 하고 있다. 선교를떠나기 전 데니스와 수잔에게 인사를 나눴다. 수잔이 나에게 이런다. “샘, 너 우리를 방문 할 거지? 꼭 와 주라.” 나는 모르겠다. 내가 교회에서 봉사 할 수 있는 분야는 전기 전자에 관한 것과 비디오 촬영 기록 부분이다. 취미로 비디오를 찍곤 했는데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혀 간다. 다좋은 전문가용 비디오 카메라이기 때문이지만.
내가 대니스와 수잔의 선교 활동을 찍기 위해서 에이즈가 득실거린다는 그곳에 간다는 생각을 하면 좀 그렇지만 그들에게 생각 해 보겠다고 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그들의 신앙을 나는 아직 따라 갈 수는 없었지만 숭고 해 보였다.
아무튼 대니는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고 나는 대니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 언제부터 교회를 다녔는지 모르나대니는 몸이 불구였지만 교회의 일은 매우 익숙 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성찬예배가 있는 주일은 예배가 끝나면 다른 사람들은 서로 짝을 지어 이야기 하고 자신의 일을 하지만 대니는 다른 사람들이 놓고 간 작은 성찬에 쓰인 잔을 바구니에 담는다.
그것을 본 학생들이 몇몇 그를 도와서 성찬이 끝난 잔들이 모아 사무실로 가져 온다. 그리고 씩 웃으며 뭐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해를 하려고 몇 번씩 물어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상황을 보아서 그 상황에 맞는 말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답을 한다.
“그래, 수고 했어. 대니. 집에 몇 시에 가니? 집에 가면 뭐해? 요즘도 여자 친구가 전화자주해?” 그러면 다시 씩 웃는다. 나는 웃느라고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그는 열심히 대답을 한다. 아마도 그에게 여자 친구란 단어는 사용 할 수 없는 단어, 생각해서는 안될 단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잘 못 알아 듣지만 답이무엇인지 알 것 같다. “샘, 나는 여자 친구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 한번이라도 여자 친구를 가져 봤으면 좋겠어, 여자친구가 있으면 내가 잘 해 줄 텐데” 라고 말 했을 것이다.
대니는 찬송 할 때 열심히 한다. 나는 맨 뒤 줄, 좀 높은 자리 오디오 비디오 컨트롤 부트에 앉아 있기 때문에 좀 떨어진 구석에 앉아 있는 대니를 잘 볼 수 있다. 문제는 대니가 부르는 찬송은 박자와 음정 그리고 그리고 가사도 다른 사람과 맞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대니의 사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킥킥대며 그를 놀린다. 다른 사람들이 다 찬송을 마치고 난 뒤에 몇 초후에 대니의 찬송이 끝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찬송을 부를 때 박자도 중요하고 화음도 중요 하고 음정도 중요 할지 모르지만 대니 에게는 이 찬송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기도요 울부짖음이기 때문에 음정과 박자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대니는찬송하면서 많이 운다. 특히 40 장 찬송가를 할 때 대니를그냥 볼 수가 없다. 이 찬송을 부를 때 그는 하늘을 쳐다 보며 굽어진 손을 하늘을 향해서 들고 열심히부른다.
특히 3 절과 4절을 부를 때는 그의 뼘에는 쉴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교회에서 대니를 친 동생처럼 돌보는 여 집사님도 같이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대니의 사정을 잘 알기에 그럴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대니의 사정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아프다. 나는어떤 때는 그런 대니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차라리 대니가 찬송을 따라 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적도 있다.
찬송가 40 장은 이렇다.
(1) 주 하나님 지으신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숲 속이나 험한산골짝에서 지저귀는
고요하게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 하도다.
(3) 주 하나님 독생자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네
십자가에피 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셨네
(4) 내 주 예수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 하리
나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 하리라.
주님의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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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4 절을 부를 때는 더 열심히 부른다. 4 절의 가사는 이렇다.
When Christ shall come
With shout of acclamation
And take me home
What joy shall I fill my heart
Then I shall bow
With humble adoration
And there proclaim
My God how great Thou art.
Take me home 이라는 구절에서는대니는 아이들이 안아 달라고 팔을 벌리듯이 굽어진 팔을 하늘을 향해 든다. 그는누가 뭐래도 열심히 부른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대니를 분명히 천국으로 인도 하실것이다. 그가 다시 세상에 오시면대니의 억울함을 들어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그의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더 이상의 그의 눈에서 흐리지않도록 해 주실 것이다.
대니는그것을 확실히 믿기에 이 찬송만 부를 때마다 그의 펴지지 않은 팔을 하늘을향해 드는 것이다. 나는 못 보았지만 그 때 주님은 그의 손을 잡아 줬을 것이다. 대니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그를 피해 가고, 놀리고, 때리고 때로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 보다 그를 먼저 그의 품에 안아 주실 것이다.
몇 주 후 어느 날 대니가 안 보인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나왔는데 9시 예배에 왔었나?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대니가 저기 있다 한다. 보니 내가 찾는 대니가 아니고 고등학생 대니를 말한다. 나중에 알아 보니 대니는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한다. 그를찾는 이들은 교회의 친구 몇뿐이었다. 데니스 목사님이 병 문안 갔을 때 대니는 사람이 그립다며 누구든와 주기를 원한다고 하더란다. 나도 대니의 친구들도 직장일로 바뻐서 자주 병문안을 갈 수 없었다.
대니는 며칠 후에 죽었다.
대니는 더 이상 바보라고 절름발이 바보라고 놀림 받지도 않는, 누구도 그에게 침을 뱉지 않는 하늘 나라에 갔다.
대니가 원해서 저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한달에 40 불을 벌었다고 손가락을 4 개 펴 보이며 얼굴을 찡그리며 침 흘리며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부분의 우리는 두 다리로 걷고,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대니 보다 몇 백배 이상 더 많은 돈을 벌면서도 늘 불평하며 잘 감사 할줄 모른다. 더 많이 받았음에도, 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감사 보다는 불평을 더 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