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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초 Aug 11. 2020

8월 초순

일본 생활, 하나





8월 초순





  7월 한 달 동안,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비를 쏟아붓는 국지성 폭우가 계속되어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수해를 입었다. 그 비구름이 위로 올라간 건지 또 다른 구름이 생긴 건지, 한국도 최근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걱정뿐. 그렇게 꽤나 길었던 장마로 우중충했던 회색 하늘에 지난주부터 구름이 걷혔다. 


  덥다. 본격적인 더위 시작이구나. 아이폰으로 일주일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우리 동네는 평균 최고기온이 34도, 최저기온이 25도다. 우리 집은 작년부터 집에 사람이 있건 없건 24시간 에어컨 풀가동 중. 껐다 켰다 하는 것보다 켜 두는 게 전기가 절약된다고 해서 그렇다. 온도는 28도, 약한 바람으로 맞추어두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다. 8월은 어느새 열하루나 지나있다.










  일본에 사는 동안에는 일본 생활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될 텐데, 8월 초순인 지금도 역시 코로나 이야기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코로나 이전에도 문제는 많았지만, 이번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능력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역시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다. 


  한마디로 일본은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에 대실패 했다고 본다. PCR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에 나오는 확진자 수, 사망자 수 그래프를 믿기는 어렵다. 뉴스에 나오는 병원 관계자들은 비닐봉지로 만들어 입은 것 같은 허술한 방호복을 입고 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급격하게 폐렴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가 늘어서 곤란하다는 장의사를 취재한 방송을 본 적도 있다. 마스크 제조 업체로 페이퍼컴퍼니를 선정해 거액의 세금을 투자한 아베 정부다. 그것도 비밀로 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진실을 숨기고 가리고, 그 뒤로는 혈세 도둑질하기에만 급급한 정치인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랑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정부에게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걸 기대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엊그제 보도된 뉴스인데, 사카이미나토항이 있는 시마네 현의 한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88명의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 학교는 체육 특기생 학교로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식사, 목욕까지 함께 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문제인 점은 감염이 확인되기 전에 이 학교 학생들이 오사카와 카가와 현에서 원정 연습경기를 치렀고, 지난달에는 이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전국의 중학교 3학년 체육 특기생들을 학교에 초대해 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에는 시장이 직접 저녁에 NHK 방송에 나와 이에 관련해 1시간 동안 기자회견을 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정부는 경제 살리기 목적으로 여행 장려 정책을 실시한 상태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됐을까 답을 고민해본다. 일본에는 왕이 있다. 일본인들은 천황(天皇)이라고 부르고, 영어권에서는 '황제(Emperor)'라고 불린다. 원래 천황은 임기가 없어 죽은 다음에 황위 계승이 이루어졌는데, 아주 의례적으로 2019년 5월에 아키히토 천황은 장남 나루히토에게 천황 자리를 물려주었다. 지난 10월에 있었던 천황 즉위식에 참석한 180개국 대표 중 우리나라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즈음에는 티브이에서 나루히토 천황의 생애를 자세하게 다룬 방송을 며칠에 걸쳐서 했다. 


  입법부는 의원 내각제라, 국민들의 손으로 국회의원은 직접 선출할 수 있지만 총리는 그렇지 않다. 현재 일본은 아베가 속한 자민당이 제1여당으로 정책의 거의 모든 면을 총괄하고 있다. 가끔씩 티브이에 나오는 국회 방송을 보면, 일을 못하는 자민당 의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는 야당 의원들도 많다. 그걸 보면 속이 조금 시원해지기는 해도, 눈을 가늘게 뜨고 졸린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면 나와서 대충 두리뭉실한 답변을 하고 다시 쌩하고 자리로 돌아가 앉는 아베를 보면 속이 터진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방송을 잘 보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그걸 보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자민당을 보면 국회의원이라는 직업도 세습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이 나라의 맨 위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왕이 있고, 그 아래에는 세금을 받아먹으며 잘 먹고 잘 사는 귀족 같은 초금수저 집단인 국회의원이 있다. 일본 역사에서는 국민들이 피땀 흘려 자유 민주주의를 쟁취한 일이 없다. 군주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기엔 시민의 힘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적다. 그걸 생각해보면 이 나라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게 아니라 그냥 이런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런 평화 속에 역시나 이 나라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외국인인 내가 아등바등 살고 있다. 









  정치적 얘기는 뒤로 하고, 일본의 8월 15일은 '오봉(お盆)'이라는 전통 명절이다. 선조들을 기리는 우리나라 추석과 비슷한 날이다. 보통 13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빨간 날이다. '오봉 기간'은 5월 '골든위크', 12월 '신년 휴가'와 함께 휴가도 못쓰고 매일같이 바쁘게 지내는 일본인들에게 내리는 단비 같은 연휴다. 게다가 월요일인 어제 8월 10일은 법정공휴일인 '산의 날'로, 좋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주말을 포함해서 일주일 넘는 휴가를 받았을 거다. 원래였다면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 이후에 맞는 휴가라 가족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겠지만, 코로나로 올림픽은 취소되었고, 지방정부의 타 지역 외출 자제 요청으로 부모님 댁은 물론이고 여행도 떠나지 못하는 슬픈 휴가가 되었다.


  나는 올해 초부터 일본의 프랜차이즈 외국어학원인 ECC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 감사하게도 긴 여름휴가가 있다. 기간은 무려 8월 8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 이놈의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오랜만에 한국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아직 오봉 기간은 아니지만 엊그제 남편과 함께 시댁에 다녀왔다. 차로 40분 정도로 딱 좋은 거리다. 지금은 남편이 휴일이 딱히 없는 일정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15일에 여유 시간이 생기면 시댁에 나 혼자라도 한 번 더 다녀올 생각이다. 


  오봉 기간에 우리는 시댁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종사촌 친척들도 시댁으로 초대해서 매년 마을에서 열리는 작은 '마쯔리(축제)'를 구경했는데, 올해는 취소되었다. 어쩌다 올해 이장을 맡게 된 시아버지가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4월 즈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마을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하셨다. 그것 말고 오봉에 꼭 하는 일은 시댁 선조들의 묘비에 성묘를 가는 것. 일본어로는 '오하카마이리(お墓参り)'라고 한다. 시댁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마을 사람들의 묘비가 모여있다. 일본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도심 속에서, 시골 논길에서 네모난 구역 안에 촘촘히 세워진 묘비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행할 땐 길가에 묘비들이 죽 늘어서 있어 저게 뭔가 싶었지만, 일본에서 성묘를 하는 입장이 되니, 한국처럼 산속에 묘가 있거나 사람들이 몰리는 납골당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곳에 묘비가 있으니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시댁에서 돌아와 집에서 조금 쉬다가, 해 질 녘 즈음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남편과 함께 셋이서 차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나갔다. 우리가 좋아하는 호숫가에 가서 매트를 깔고, 불을 피우고, 시댁에서 받아 온 채소들을 잘라 준비하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저녁이 되니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들도 돌아가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옷을 훌러덩 벗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했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곳에서 하늘을 본 적이 얼마만이었더라.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별똥별도 세 번이나 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에 지지 않으려고, 괜찮으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지내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는 것도 어려워졌고, 일도 줄었고, 건강을 매일같이 걱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전보다 더 예민해지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졌나. 8월 휴가가 끝나면 다시 마스크를 쓰고 기차를 타고 출근을 하겠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거실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글을 쓰겠다.


  우리 모두가 무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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