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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사이 Oct 23. 2021

죽거나 죽이거나

가정폭력의 4단계

우리는 흔히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왜 맞으면서도 떠나지 않았어요?"라고 묻는다. 가장 안전하고 따뜻해야할 공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오히려 가장 잔인하고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결혼 전부터, 혹은 연애 초반부터 학대를 일삼는 사람이면 그 누가 만났을까요?

심지어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조차도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접근을 하듯이 상대방이 자신을 믿고, 사랑을 하고, 돈을 맡기고, 인생을 맡길 때까지 세상 다시 못 만날 귀인을 만난 것처럼 대한다. 그러다 자신에게 돈이, 사랑이, 믿음이 들어온 순간 돌변하기 시작한다.


TED, <Why Don't Domestic Violence Victims Leave?>라는 주제로 강연한 Leslie Morgan Steiner의 강연에서 그녀는 가정폭력에는 4단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피해자를 유혹하고 매료시키는 것. "그는 제 가족, 어린 시절, 꿈과 희망 등을 모두 사랑해줬고, 저의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양아버지로부터 4살 무렵부터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까지 둘 사이의 신뢰관계를 돈독히 쌓았습니다."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당하면서 자라왔다고 하면 더 마음아프고 내가 더 사랑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이 사람과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서서히 피해자를 격리시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 덕분에 너무나 안정감과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더 이상 월스트리트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뉴 잉글랜드의 작은 마을로 이사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뉴욕을 떠나기가 정말 싫었지만 제 정신적 동반자를 위해서는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이사를 가고, 이민을 가야 격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다. 옷차림을 단속하고, 밤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더 나아가 대인 관계를 정리하게 하고, 어떤 직장을 다닐지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미 통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트 폭력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이는 통제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본인이 가지지 못하게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랑해서 그런거야'라는 말도 안되는 명목으로 합리화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폭력을 가지고 협박해서 그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뉴잉글랜드로 이사하자마자 어릴 때 겪은 충격적인 경험때문이라고 말하며 그는 권총 3자루를 샀고, 그 총들을 우리 차 조수석 수납함에, 침대 베개 밑에, 그리고 한 자루는 항상 그의 주머니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코너가 저를 처음 육체적으로 공격한 것은 결혼식 5일 전이었습니다. 저는 프리랜스 업무를 하며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가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그는 제 화를 핑계삼아 두 손을 제 목 주변에 두르고 꽉 조이면서 제 머리를 벽에 몇 번이고 찧었습니다. 5일 후 제 목에 생긴 10개의 멍이 희미해졌을 때 저는 저희 어머니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정말, 정말 미안해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그래서 이미 일어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 중 2번의 폭력 이후 2년 반 동안의 결혼생활 내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저를 구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저를 학대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가 장전된 총을 제 머리에 갖다 대고, 저를 계단 밑으로 넘어뜨리고, 우리 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제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차 키를 빼서 시동을 꺼뜨리고, 커피 가루를 제 머리에 뿌려 채용 면접 옷차림을 망쳤을 때도, 한 번도 제 자신을 학대받는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매우 강인한 여성으로서 문제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며, 이 세상에서 오직 저만이 코너가 그 안의 악마들을 물리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최후의 가학적인 구타를 당하며 저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던 남자가 저를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죽을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도 막상 도망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도망쳤다가 발견되서 잡혀오기도 하고, 법이나 제도의 부실로 인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격리되어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제대로 된 처벌법,

가정유지가 아닌 개인의 인권이 우선시되는 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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