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남을 따라서 힘겨운 짓을 하면 도리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속담 구절이다.
분수라고는 수학의 분수밖에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상적인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적이라는 말 뒤에는 현실성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 세트로 붙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 뜻도 제대로 이해못하던 시절부터 내가 현실성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다들 말했다. 하지만 직업이 아닌 꿈은 큰 꿈이 아니라 이상적인 꿈이었다. 매년 장래희망을 적거나 발표해야 했을 때 나는 직업으로 특정하기 어렵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들을 적었지만, 반대에 부딪혔던 나는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길 바라는 어른들의 기대에 맞추어 교사나 간호사를 적어 제출했었다. 꿈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책이 재미있었던 초등학생 때도 그랬고, 작가나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어하던 중학생때도 그랬고, 입시와 학폭으로 인해 꿈을 잊었던 고등학생 때마저도 주변에서 기대하는 직업을 적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꿈들을 이루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꿈을 꾸되, '현실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꿈만 꾸어야 했던 나는 어느 순간 꿈을 꾸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도 주변 누구에게도 내 꿈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성적이나 등록금 등 당시 내가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만 쫓아 시간을 보냈다. 점점 더 이상과 현실의 간격이 벌어졌다.
그랬던 내가 2016년도~2017년도 경 브런치를 알게 되고, 글을 쓰고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고, 글감을 찾느라 나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무언갈 공부하면서 잊었던 꿈을 생각해냈다. 1년여의 방황 끝에 지난 몇 년간 멈춰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것처럼 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후회한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들만 생각하기보다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의 꿈과 맞닿아 있는 곳에서 일도 해보았고,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도 도전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해 생각하고 아주 조그만 일이라도 시도해 볼 수록 더 이상 시간이 멈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나는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 꿈을 찾는 것이 꿈이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가 되어 무리에서 낙오될까 걱정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찢어진 가랑이를 치료하는 일보다 있는 힘껏 뛰어보지 못했던 일이 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었다. 이 말들조차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말들이라고 취급될 수 있지만 나는 이상없이 현실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두 스푼의 현실에 여덟 스푼의 이상을 넣어 몇 년만 더 뛰어보려 한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내가 노력하는 모든 순간들이 더해져 조금 더 단단한 근육을 가진 뱁새가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