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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있는 크레이터

by 사이사이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괴롭고 아픈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는 뜻이다.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고 청년이 장년이 되면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여러 입장을 겪으며 이전에는 납득할 수 없었던 일에도 수긍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과거의 상처와 기억에 쓰라리고 아픈 순간이면 도대체 내 시간은 언제 다 지나가는건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자꾸만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너질만큼 무너진 것 같은데 아직도 바닥이 흔들리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는 내가 안타깝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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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억은 달의 크레이터처럼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처음 소행성이 충돌했을 때처럼 뜨겁게 파편들이 휘날리진 않아도, 부딪혀서 파였던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온도가 식으면 무뎌지겠지만 흔적들이 남아 망각할 수는 없게.


시간이 나에게 약이 되어 주진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그 동안 내가 찾은 방법은 바닥이 흔들리면 벽에 기대어 서고,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을 때는 그냥 계속 걷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주저앉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다시 일어서야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다. 이건 결국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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