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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란 Aug 03. 2018

오늘은 구름

 


  길가에 발가락들이 찰싹찰싹 붙어 다니는 계절이다. 그 계절의 한가운데에 말랑말랑 늘어지는 마시멜로우처럼 축축 늘어져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아침 9시부터 단수한다는 소식과 낮 한복판에 돌아다닐 자신이 없으니 나는 아침 일찍 짐을 챙겨서 연구실에 짱 박혀 있었다.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고 에어컨 아랫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장 시원할 것 같아서 선택한 아랫자리도 극세사처럼 파고드는 더위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헥헥거리며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언제 비가 올지 몰라 예전에 챙겨둔 검은색 장우산을 들고, 커다란 백팩을 뒤로 메고, 노트북 가방을 사선으로 짊어지고 연구실 문을 나섰다.

  요즘 같은 날은, 교내에서라도 선글라스를 꼭 낀다. 새카만 우산을 들고 옆으로 멘 노트북 가방의 까슬한 줄은 목에 빨간 자국을 남기며 목에 매달려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우산을 어깨까지 푹 눌러썼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더위에 우산을 꾹꾹 눌러쓰고 다닌다. 그렇게 털털털 걸어서 내려오다가 중앙로로 들어섰다. 학교의 중앙로는 정문 바깥의 도시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이어진 8차선 도로가 정문을 지나면서 2차선으로 좁아져 도서관까지 쭉 일자로 뻗어있는 모양인데, 그 사이에는 길 옆에 인공적으로 심은 나약한 나무들, 툭툭 던져진 건물뿐이라서 가운데 중앙로를 오늘처럼 더운 날 걸어가는 것은 아프리카의 사막 그 어딘가를 걷는 것 같다. 헥헥. 샌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눌어붙으면 어쩌지를 걱정할 만큼 뜨거운 길을 걸으며 우산을 좀 더 여미고 걷던 중 갑자기, 오늘 같은 날의 하늘이 궁금해졌다. 어제까지는 구름이 정말 1도 없었는데 오늘도 그럴까 우산을 등 뒤로 빼고 하늘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오늘 나에게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하늘에는 뜬금없이, 비가 올 것도 아니면서 먹구름이 딱 하나 떠있었다. 솜사탕 모양도 아니고 강아지 모양도 아니고 그냥 아무 모양도 아닌 구름이 태양 바로 아래 떠 있었는데, 태양이 구름 위로 햇빛을 일직선으로 물결처럼 깔아 내리고 있었다. 아, 최근에 봤던 그 어떤 광경보다 근사했다. 내리쬐는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길 한 중간에서 그 장면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세상에. 문득 이번 주 내내 내가 생각했던 논문에 대한 고민과 내가 아무것도 아니면 어떡하지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뭉툭하게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던 미움의 마음이 사라졌다. 안녕. 모든 기억들이 멀리 뭉개지고 구름 위로 내린 빛만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 순간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도, 텅 빈 캠퍼스에 간간이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귀에 때려 박는 매미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태양이 구름 계단을 만들어 타고 내려오는 소리만 귀에 들렸다. 그렇게 멍하게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의 기억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2018년 여름의 기억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늘은 아주 더운 날이었다. 나는 집으로 오늘 길에 본 듬성듬성 깎아놓은 향나무 위로 웃자란 줄기들, 초코 나무숲처럼 초록과 연둣빛으로 어울진 나뭇잎들, 여름의 열기를 푸르르 흔들며 뿜어내는 자동차들, 끈적하게 녹아내릴 것 같은 얼굴로 작은 선풍기를 코 앞에서 흔들고 있는 사람들, 다닥다닥 붙어있는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반갑게 인사하는 얼굴들, 쫄쫄 고픈 배를 달래며 어렵게 걸어가 문 앞에 섰을 때 '8월 둘째 주까지 쉽니다'의 단골 라멘집 그리고 어느 날 새벽, 친구에게 엉엉 울면서 전화를 걸었던 그 시간의 공기가 2018년 내 여름의 기억으로, 나에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정찬란 남김

- 추천 음악: 윤딴딴-토로

https://www.youtube.com/watch?v=pPLnmz6lH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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