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Aug 13. 2023

아부지와 떠난 일본여행


일본 여행 내내 아버지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네가 앞장서" 였다. 넘쳐나는 사람 통에 가이드북을 뒤지며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백발의 아버지가 인파 속에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왜 뭐 잘못됐냐" 하는 아버지에게 "아니요 잘 가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삿포로 시내 곳곳을 걸었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아버지는 아들과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기억의 끈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홋카이도 대학의 무성한 나무 사이를 걸으며 아들이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 갔을 때의 기쁨을 이야기했다. 아들 덕에 서울 구경도 하고, 대학로에서 뮤지컬도 봤다고 했다. 삿포로 중앙 오도리 공원 근처에 위치한 홋카이도 신문사 건물을 지나면서 아버지는 기자 아들을 둬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술로 점철된 방탕한 대학 생활과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 지면 막기 바쁘다고 차마 답하지 못했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가 무심코 던지는 진심에 맞아 그저 "예예" 할 뿐 이었다. 이국적인 공간에서 아부지는 그렇게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


오타루와 삿포로 여기저기 한국인 가족 여행객이 많았다. 점심을 먹다 말고 아버지가 갑자기 "왜 우리 가족은 그 흔한 해외 한번 못와 봤을까"라고 했다. 이번이 아버지의 두번째 해외 여행이다. 최근 동생과 내가 보내드린 부부동반 싱가포르 여행이 육십 평생 첫번째 출국이었다. 



돈과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닐진대, 쌍둥이를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나도 아닌 두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소풍 도시락 싸 보내고, 군대 보내고, 둘째 아들 장가 보내고 하다보니 어느새 늙었다는 아버지의 세월은 숱 많고 까맣던 그의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래도 이제나마 여유가 찾아온 것에 감사해야겠다 싶었다. 굳이 수백 수천만원이 아닌 얼마간의 사치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휴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최근 우리네 50대 이상 남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관한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에 나오는 큰오빠처럼 일생의 목표를 다 이룬 사람이 느끼는 무료함 같은 감정이 그네들의 마음에 돋아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목숨같던 자식들은 장성해 떠나가고, 평생을 바친 직장은 이제 자신을 나가라 한다. 돈 나갈 곳은 태반인데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아버지란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지 하는 것이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동생의 눈빛에 박힌 그 책임감을 30년 넘게 길러온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귀국하고 사진을 정리하는 데 유독 내 뒷모습이 많다. 앞서가는 아들을 아버지가 찍은 것이다. 항상 뒤에서 오거나 손을 잡고 걷던 아들이 이제 다 커서 서툴지만 영어와 일본어로 예약도 하고, 길도 묻고 하는 모습이 대견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어리기만 했던 자식은 크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받은 만큼 베풀고 헌신할 거다. 그러니 당신도 해 봐라! 굳이 효도라는 거창한 말 필요없이, 머나먼 타국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이와 걷고, 먹고, 대화하면서 내뿌리를 찾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아빠와 아들 조합이 딸과 엄마의 케미만 못하란 법도 없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미미를 떠나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