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다. 새벽 4시쯤 아부지와 함께 누워있는데 미미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몸으로 아부지의 손을 밀쳐냈다고 했다. 이후 10분 만에 숨을 거뒀다.
미미는 온 몸의 장기가 파열된 상태였다. 원래부터 기도가 좁았는데, 노화로 갖가지 병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일주일 전까지 미미는 멀쩡했다. 하지만 갑자기 배설물을 가리지 못하고 집안을 빙빙돌거나 몸을 떨었다. 동물병원에선 치매라고 했다. 속안이 까맣게 되어 온 몸이 아플거라고 했다. 그래도 미미는 짖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신음만 냈다. 그 모습이 더 딱하고 안타까웠다고 엄니는 말했다.
미미는 2010년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엄니 아부지는 13년 간 사랑으로 미미를 키웠다. 취업해 떠나간 자식들 대신 딸처럼 대했다.
은퇴한 노부부에게 박미미는 좋은 여가가 됐다. 미미를 산책시키거나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일. 또 미미가 먹을 간식을 사러 마트에 가는 일. 미미를 위한 미용실을 예약하는 것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노부부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가끔 아부지는 돈이 많이 든다고 툴툴댔지만 그만큼 미미에게 고마워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게 아무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미미는 용감한 강아지였다. 몸집은 작았어도 가족들과 함께라면 더 용감해졌다. 산책 도중 자신보다 3~4배는 큰 강아지를 봐도 미친듯이 짖어댔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덕분에 사회성은 떨어졌다. 가족끼리 휴가를 가려고 강아지 돌봄소에 미미를 맡겨놓으면 2박3일 간 짖는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하루 이상 집을 비우는 걸 포기했다. 미미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미미는 도도하기도 했다. 절대 입술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을 갖다대면 고개를 돌려 피하고 발로 밀어냈다. 그랬던 미미와 단 둘이 집에 있을때가 있었다. 미미는 당시 배탈이 나서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상황이었다. 그가 토한것을 휴지로 닦아줬는데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미미가 먼저 다가와서 내 무릎위에 앉았다. 이런적이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 동물이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잘 한다는 당연한 명제는 때로 인간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그가 찼던 목줄과 머물던 조그마한 개집, 각종 간식과 사료, 샴푸까지 집 안 곳곳에 미미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걸 다 치우면 집은 허전해질 거다. 페이스북에 미미의 소식을 알리자 한 교수님은 "반려인은 언젠가는 겪게 되는 아픔이다. 사람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보는것 같다. 그런 과정도 우리 삶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과 함께하는 것은 많은 책임감을 요한다. 우리네 부모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려오면 질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미가 13년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그에게 느꼈던 마음을 그도 우리에게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미미의 빈자리를 조용히 감내해야 할 우리 식구들도 잘 감당했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한 추억을 갖고 또 잘살았으면 좋겠다. 회자정리가 있으면 거자필반도 있다고 믿는다. 최고의 강아지였던 박미미. 그곳에선 건강하고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