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었다. 곧 '우라까이 하루키'로 진화 하였다.
펜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언론사에 입사한 당신. 혹독한 수습 기간을 견뎌내고 드디어 정식 기자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너무나 즐겁고 당당하다. 그런데 왠 걸, 써야할 기사가 너무 많다. 마감은 다가오고 막아야 할 기사는 아직도 2개나 된다. 근데 그 2개가 이미 다 풀된 보도자료 기사다. 이때 당신의 선택은 두 가지다. 최대한 모든 역량을 발휘해 자료를 요약하고 나만의 야마를 잡아 기사를 쓴다. 두 번째는 연합이나 다른 매체의 기사 여러 개를 참고해 그들과 비슷하게 기사를 쓴다. 후자를 소위 우라까이라고 한다. 남의 기사를 베껴서 쓰는 것을 뜻한다.
사실 언론계만큼 저작권이 희박한 곳도 없을 것이다(이건 문제라서 고쳐야 한다). 어느 매체가 단독기사를 써도 통신이나 일간지 온라인 뉴스부에서 바로 이걸 받아서 쓰면 이 기사 조회수가 더 높고, 네이버나 다음에서도 상단에 노출되는 경우가 흔하다. 너무 똑같은 기사가 많아서 나만 새로운 내용을 넣더라도 데스크나 부장이 이거 진짜 맞아?라고 물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쯤 되면 기자들은 새롭고 독창적인 나만의 기사가 아니라, 모두가 판에 박힌 똑같은 기사를 쓰기 위해 아둥바둥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만약 "너 그냥 그 기사는 연합 우라까이해"라고 선배가 지시했다면 그냥 연합뉴스 관련 기사를 보고 베껴쓰라는 말이다. 우라까이의 어원은 일본어 우라가에스(うらがえす)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우라가에스는 뒤집다라는 뜻인데, 전혀 우라까이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아무튼 기자들은 일상적으로 우라까이를 한다. 아니 기자가 자신만의 아이템을 발굴해서 써야지, 다들 직무유기 아니야!! 할수도 있는데 현실이 녹록치 않다. 나도 하루에 기사 1개만 쓰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가끔 속보도 쓰고, 여러개의 기사를 처리하려면 집중하는 것도 그렇고 너무 힘들다. 그러니 풀된 기사, 자료 기사 등은 가끔 우라까이를 하게 된다. 이런 공개된 기사는 빨리 대충 처리하고, 나만의 단독이나 기획 기사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마인드도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의문. 그럼 타사 기사를 어느 수준으로 베껴야 우라까이인가? 우선 연합 전재사들의 경우. 연합 전사란 연합뉴스에 매년 수억원의 돈을 주고 기사 계약을 맺은 회사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연합 기사와 사진을 가져야 쓸 수 있다. 이 매체들은 주로 속보팀에서 연합에 뜬 기사를 그대로 가져와 속보로 처리한다. 이 경우에는 우라까이라고 보기가 좀 어렵다. 뉴스 소매상이 도매상으로 부터 기사를 떼와 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계약 없이 막 베끼는 경우다. 왠만한 매체는 기사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쓰지는 않는다. 다만 기사 구조와 야마(주제)를 비슷하게 가져오면 우라까이라고 볼 수 있다. 조사와 접속어 몇개만 바꾸고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기사로 소화하는 것도 일종의 우라까이다. 다만 언론계에는 기사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징계 절차가 없기 때문에 우라까이 관행이 확산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
나도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지금은 언론계를 떠난 타사 선배 A가 있다. 평소에도 칼럼 잘 쓰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몇년 전, 꼰대 문화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다. 마침 주말자 순서가 돌아와서 꼰대를 야마로 써보기로 하고 어떤 사람이 꼰대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래픽 거리를 고민하던 중에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꼰대 체크리스트를 만든게 있었다. 그 기사를 A 선배가 썼다. 나는 그 연구소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원문을 봤는데 큰 뼈대는 같았지만 세세한 내용이 좀 달랐다. 그래도 시간이 너무 없었고, 거시적인 카테고리들은 비슷해서 A선배가 기사에 적용한 그래픽 그대로 기사가 나갔다.
그 다음주에 모 일간지 B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저번주에 나간 꼰대 체크리스트 기사가 재미있어서, 자신도 쓰고 있는데 그래픽 거리가 애매하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내 기사의 그래픽을 그대로 차용해도 괜찮겠느냐고 했다. 나는 사정을 설명했고, B는 알겠다고 했다.
B 선배의 기사는 주말에 대박이 났다. 네이버와 다음 뉴스란에 하루종일 메인에 붙어 있었다. 댓글도 1만개가 넘게 달렸다. 아 이것이 매체 파워인가, 좀 씁쓸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월요일이 되자 B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났다는 거였다. 당초 처음으로 기사를 쓴 A선배가 B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꼰대 체크리스트를 만든건 맞지만 기사에 적용한 것은 자신이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번 가공한 결과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했다. 이건 명백한 표절이고,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A 선배는 내 기사에도 그래픽이 비슷하게 들어간 사실을 인지하게 됐고 나한테도 전화가 왔다. 신문 1면에 사과문을 게재하라는 거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간 신문이 그래픽을 표절해서 사과문을 낸다? 그것도 입사한지 몇년 안된 기자의 실수 때문에? 나는 A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원본을 봤는데 조금 달랐지만 큰 틀은 비슷했다. 그래서 선배의 그래픽도 맞다고 보고 썼다..는 변명을 했는데 통하지 않았다. A 선배는 일주일을 시한으로 줬는데 나는 정말 일주일동안 잠도 자지 못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눈물을 흘렸다. 아, 한번만 더 확인할걸. 조금만 다르게 쓸걸.. 나는 결국 선배와 팀장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매일 이렇게 기사를 써왔느냐고 오해받을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A선배는 따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직도 미스터리다. 젊은 기자의 실수로 보고 봐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건 이후 하나가 더 있었다. A 선배는 평소 젠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매일 회색 티셔츠만 입는데 사람들이 검소하다고 칭찬하는 것에 주목했다. 이를 인용하며 메르켈 전 독일총리가 비슷한 옷을 이틀 연속 입으면 관리를 제대로 안한다고 비판하는 여론을 비판했다. 옷차림에도 젠더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는 야마였다. 난 그 기사를 재미있게 읽다가 끝의 바이라인에서 A 선배의 이름을 발견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얼마 후 야근을 서면서 모 종편방송사를 틀었다. 그러자 A선배 기사와 똑같은 야마의 리포트가 나오는 걸 봤다. 그 순간 또한번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저 방송사 기자 어떻게 하지. A선배가 전화가 갈텐데.. 결국 그 방송사는 표절과 관련해 정정, 사과 보도를 내보낸 기억이 난다. 굳이 단독 기사 뿐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 문제를 접근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기사이고, 이를 따라가면 표절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그 이후 나는 절대로 그래픽이나 기사 자체를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특히 사실관계 확인은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한다. 기사를 베끼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짓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2019년에도 비슷한 일이 터졌다.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의 칼럼 “뉴욕의 최저임금 인상 그 후”이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을 베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중앙일보는 논란 직후 사과문을 올리고 칼럼을 삭제했다. 해당 논란은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가 의혹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언론계의 무분별한 우라까이를 근절해야 한다는 시스템적 개선 운동이 잠시 일어났지만 다시 흐지부지됐다.
잠시 변명을 하자면, 한국 언론계 만큼 척박한 언론환경은 잘 없다. 물론 정권을 반대하면 소리소문없이 죽임을 당하는 러시아 등의 국가를 제외하고 말이다. 일본처럼 기자가 많고, 아직도 신문을 포함한 출판물이 인기가있는 국가의 언론은 상황이 낫다. 굳이 타사것을 베낄 필요가 없다. 우연히 출장에서 만나 친해진 아사히 신문 기자에게 물어보니 일주일에 자신의 기사가 3개 이상 나가면 그 주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만큼 기자가 많고 경쟁도 치열하니 촘촘한 취재를 거친 양질의 기사만 주로 지면에 실린다.
반면 한국은 기자와 매체의 절대적인 숫자는 많지만 제대로 된 매체와 기자는 별로 없다. 또 기자 개개인이 하루에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설익은 기사가 쏟아지고 우라까이도 왕왕 벌어진다.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신문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있다. 그중 8조에는 우라까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 통신 기사를 전재할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뉴시스 보도를 보면 등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주고 전재할 때도 마찬가지다(근데 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역시 타사 기사를 베낄 때에는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 정치권에 따르면, 여권에 따르면, 정부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애매하게 출처를 바꿔서 그대로 베낀다. 신문윤리강령은 말 그대로 강령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다. 다만 구속력이 있는 조항을 만든다고 해도 우라까이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척박한 언론 환경부터 바꿔야 하나. 아니면 방송통신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새로운 규제 조항부터 꾸려야 하나. 우라까이가 남의 노력을 빼앗는 나쁜 짓이란 걸 알겠는데 그걸 하지 않으면 온라인과 속보가 중요해져버린 현재의 언론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실 문제는 마음놓고 대범하게 베끼면서 원매체는 싹 지우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언론사들의 알량한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언론사 특유의 가오라는 놈 때문에 참 많은 사회 병폐가 우후죽순 자라나는 것 같다. 출처만 정확히 밝혀도 우라까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