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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Jan 24. 2024

경찰팀장(시경 캡) 발령


지난주 인사가 나서 사회부 사건팀(경찰팀) 팀장이 됐다. 언론사에선 사건팀장을 보통 시경캡이라고 부른다. 모자(Cap)라는 뜻이 아니다. 캡틴(Captain)을 줄여 말하는 것이다. 경찰기자의 대장쯤으로 부를 수 있겠다. 캡은 정식 직책이 아니다. 다만 상징적인 의미는 있는 것 같다. 


요새 내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6시 40분에 눈을 뜬다. 7시에 회사 차량이 집앞으로 와 있다. 후다닥 준비해서 내려간다. 수송부 형님과 인사를 나누고 서울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서울경찰청에 도착하면 7시 25분쯤 된다. 10층 기자실로 입성한 뒤 조간을 체크한다. 통신사 기사도 본다. 타사의 사건 사고 보도나 기획보도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서울 각 라인을 맡고 있는 일진들은 오전 9시까지 보고를 한다. 기획이든 단독이든 발생이든 오늘 사회부 지면을 이 기사로 채우겠다고 보고한다. 나는 그들의 발제를 읽고, 고치고, 부장이나 데스크와 통화한 뒤 추가 지시를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기사계획이 확정된다. 나는 일진들이 올린 기사를 읽고 고치고 넘긴다. 곧 오후 6시가 되고 또 이제 고쳐야할 추가적인 기사를 수정한다. 집에오면 대충 오후 10시 정도다. 피곤해서 바로 잠드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나의 수습 시절, 캡은 곧 하늘이었다. 함부로 전화조차 할수 없는 그렇게 두렵고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다만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에선 캡에게 이례적으로 승용차를 배정하며 예우한다. 거의 임원급 대우다. 그만큼 캡이라는 자리는 고되고 힘들다는 뜻이겠다. 


그 이유를 좀 생각해봤다. 언론사 내부 구조에 답이있다. 신문 방송 통신사든 언론사는 일단 수습기자 시험을 통과하면 사회부 사건팀으로 배치된다. 사건팀에서 취재를 하는 법과 기사 작성법 등을 익힌다. 이때 이들을 총괄해 가르치고 교육하는 책임을 캡이 지게 된다. 


보통 캡들은 서울지방경찰청(서울경찰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모여있다. 그래서 통상 캡을 '시경 캡'이라고 불러왔다. 왜 하필 시경 출입기자가 사건기자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됐을까. 대선배들의 회고록을 찾아보니 통신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전화기 자체가 귀했다. 당시 가장 넓은 통신망을 갖고 있던게 경찰서였다. 경비전화로 불리는 별도의 통신망이었다. 그 전화를 원활하게 받을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시경이었다. 결국 회사에 있는 데스크나 부장과 바로바로 연락하며 기사를 불러줄수 있는 곳이 시경이었고 여기에 캡들이 상주하게 된 셈이다. 




출근길


사건팀은 딱히 나와바리(출입처)가 없다. 경찰서가 주된 출입처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내가 수습이나 사건팀 일진을 하던 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강남경찰서만 1년 넘게 출입했는데 11년 전에는 완전 전쟁이었다. 사건 하나에 기자들이 달라붙어 기묘한 단독이 쏟아졌다. 너무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요새는 사건기사가 별로 중요치 않다. 3매나 4매짜리 단독이 천시받는 시대가 됐다. 그만큼 우리네 먹고살기가 힘들어 졌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 밑의 일진들도 아마 아이템을 찾기 쉽지 않을 듯 하다. 회의때 뭐라도 챙겨오는 후배를 보면 좀 마음이 안쓰럽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로 많이 갈등도 겪겠지만 그냥 나도 얼마 기자생활 안했지만 내 과거를 보는 것 같고 그렇다. 


큰 대형사고나 사건이 터졌을때 현장으로 가는 것이 바로 우리 팀이다. 젊은 기자다운 패기와 열정,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보여줘야 하는 것도 우리 사건팀이다. 그래서 마음이 좀 무겁다. 지치지 않고 에너지를 유지할수 있는 그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무작정 혼내거나 윽박지른다면 지속가능한 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풀어주고 방임하는 것은 자멸로 가는 길이다.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지 고민 또 고민하고 있다. 


나 자신도 배우고 있다. 내가 쓴 기사가 아니라 남이 쓴 기사를 고치고 바꾸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 내가 의도한 바와 달리 다른 기자나 독자가 어떻게 내 기사를 바라볼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게 됐달까. 사실 후배들이 내는 기사도 내가 고치면 거의 내가 책임을 져야하니 오후만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어제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화장실 갈새도 없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기사를 고쳤다. 


시경 기자실에 들어서면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일단 다른 캡들은 다 피곤에 쩔어있다. 또 하나는 캡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40명이 채 안된다. 출입기자만 1000명이 넘는 국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용하지만 다들 고됨이 느껴진다. 후배들에게 계속 조언하고, 채근하고, 이것저것을 신경쓰고 계속 긴장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기가 맡던 캡 자리를 물려받게 됐을때 회사 뿐 아니라 공무원분들이나 취재원분들은 다 축하한다고 했다. 드디어 팀장으로 영전했다며 영광스런 자리라고 힘내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승진이나 자리에 욕심이 없다. 다만 캡을 맡은 만큼 팀을 잘 이끌고, 후배들이 성장해서 다른팀으로 전보가서도 잘 하도록 제대로 잘 이끌어보고 싶다. 능력이 안되면 후배들과 함께 하고, 또 부족하면 선배들에게 조언도 구하며 좋은 중재자, 좋은 조율자로서의 소통 방안을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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