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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Sep 08. 2024

방콕에서 생긴 일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었지만 사실 방콕 여행 내내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늦은 여름 휴가를 방콕으로 다녀왔다. 수년 전 나는 방콕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오른쪽 무릎이 골절됐다. 덕분에 3개월간 휴직을 하고 철심을 박았다가 뺐다. 그 이후로 태국을 갈 생각은 안하다가 어찌저찌 트라우마 극복 여행처럼 방콕을 다녀오게 됐다. 수완나품 공항을 나서자 텁텁하고 묵직한 더운 바람이 몰려와 내 뺨을 때렸다. 익숙하지만 또 낯선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낙원에 들른 사람들(손님)'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로스터 호텔 이야기다. 최고의 호텔인 이곳에 매년 7월 마담 엘르와즈라는 이름의 귀부인이 찾아온다. 우아한 몸가짐과 태도를 갖춘 여성이다. 그가 호텔에 온지 3일째 되던날 멋진 외모와 옷차림의 젊은 남성이 호텔을 찾는다. 엘르와즈 부인은 손수건을 떨어뜨렸고, 패링턴 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그 손수건을 주워 준다.


라포를 형성한 그 둘은 휴가 말미에 대화를 나눈다. 엘르와즈 부인은 자신을 양말 가게 점원이라고 소개한다. 이 곳에서 휴가를 나기 위해 1년 간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패링턴은 웃으며 자신도 비슷한 처지라고 말한다. 둘다 현실을 잊고 꿈의 공간인 이 호텔에서 머무는 일주일의 휴가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해온 것이다.



방콕의 다양한 5성급 호텔 가운데 수코타이 호텔을 선택한 나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1년간 돈을 모아야 할 정도로 호텔 숙박료가 비싼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콕의 밤거리를 누비는 자유로운 모습의 외국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아둥바둥 살고 있는가.


혼자 떠난 이번 여행에서 나는 태국인 친구들과 만나서 저녁을 했다. 기자일 하면서 기획기사 작성 당시에 해외 출장을 가서 만나거나 태국에 주재하는 한국 기업인들로부터 소개를 받아 알게 된 또래들이다.


한명은 나와 동갑으로, 태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방콕 인근 지역 병원으로 출근한다. 환자가 다치거나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찾아오면 무조건 그와 먼저 대화를 나누고 상담을 받아야한다. 그가 환자를 1차로 진료하고, 특정 과로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의사긴 한데 공중보건의같은 역할이라 월급은 상대적으로 높진 않다고 한다. 그래도 오전 9시 출근에 오후 4시 퇴근하는 삶이라고 한다.


또 한명은 나보다 2살 형이다. 그는 싱가포르와 태국 혼혈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부자였다. 그는 매달 싱가포르에서 15일, 방콕에서 15일씩 지낸다. 출장도 자주 다닌다. 아무래도 CEO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승마나 골프를 자주 한다고 했다. 부유한 그는 방콕 미슐랭 식당에서 밥도 사줬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들은 나의 삶에 대해 궁금해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묘사했다. 신문기자로 일한지 12년 됐고, 사건팀장을 맡아 올해 1월부터 매일 새벽 6시30분에 출근하는 나날을 설명했다. 열심히하는 팀원들 덕에 힘도 나지만 때로는 나의 능력보다 과중해 보이는 부담과 책임감에 힘들다고 했다. 일적인 스트레스 이외에도, 나이는 마흔 가까이 되어가는데 딱히 이룬것도 없고, 돈도 없고, 아직 결혼도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 회색인처럼 방향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서투른 영어와 태국어로 그들에게 토로했다.


그들은 내 삶에 놀라워하면서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평범하게라도 살려면 미친듯이 이어지는 경쟁에 어느정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아름다운 정으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선을 넘어도 넘은 것을 모르는 오지랖 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남들의 시선에 너무 과도하게 노출된 한국인의 일상이 힘겨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 미지의 도시에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들도 태국의 상류층 가문 사람들이고, 나름의 노력과 경쟁을 통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을터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스스로 자신의 삶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퍽 부러웠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꿈에도 그리던 기자라는 직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10개의 일간지 가운데 한 곳에서 일하고 있고, 청와대와 국회, 기획재정부 등 주요 출입처를 거쳐 사건팀장이라는 직책도 맡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또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냥 정신없이 새벽부터 팀원들과 혹은 부장과 소통하고, 또 경찰들과 전화하고 기사를 막고 점심 저녁 약속을 하다보면 하루가 흐른다. 하루는 너무 느리게 가는데 또 일주일 혹은 한달은 금방 지나간다. 뒤돌아보면 사실 남는 것은 없고, 건강은 계속 나빠지는 것 같고.. 친구들은 가정을 이루든 아니든 각자 하나둘씩 앞으로 전진하는 것 같은데 또 나는 계속 한발씩 후퇴하고 있는 듯 하다. 경쟁은 아직도 계속되는데, 아니 죽을때까지 내 앞에 경기장이 펼쳐질 것 같은데 나는 30대 후반밖에 안됐는데도 너무 지쳐서 달리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런 와중에 남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말고, 조금만 더 힘내라는 태국 친구들의 조언은 어딘가 모르게 든든한 힘이 되었다.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면 다시 또 정신없는 나날이 펼쳐지겠다만 그래도 다시금 또 살아갈 의지를 얻었다.


여행 셋째 날. 친구들과 함께 크루즈에 올랐다. 배를 타고 방콕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을 약 두시간 가량 왕복하는 코스였다. 여행 내내 비가왔지만 운이 좋게도 딱 그날 저녁에는 비가 그쳤다. 살랑살랑 강 바람은 불어오고, 양 옆으로 왓포와 왓아룬 등 유적지의 밤 풍경이 펼쳐졌다.


배의 앞 부분에선 한창 공연이 벌어졌다. 필리핀인처럼 보이는 여성이 카펜터스의 '탑 오브 더 월드'를 불렀다. 'your love's put me at the top of the world'라는 가사를 탑승객 모두가 따라 불렀다. 태국인은 거의 없었고, 온갖 종류의 인종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팟타이와 전복, 싱하맥주를 먹고 마시며 팝송을 열창하는 그 풍경은 퍽 정답고 진기한 것이었다.


다음날은 룸피니 공원에 갔다. 길을 따라 걷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천막으로 몸을 피했는데 팔뚝만한 도마뱀이 의자 밑에 누워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귀찮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옆에는 깡마른 태국 할아버지가 웃통을 벗고 앉아 있었다. 또 옆에는 젊은 미국인 하나가 의자에 앉아 떨어지는 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후 2시의 풍경이었다. 기이한 조합의 풍경이 주는 그 기묘한 조화 때문일까. 나도 그 옆에 앉아 수박주스를 마시며 한참을 도마뱀과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마치 귀로 스며드는 듯한 빗소리가 참 듣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현지 사람들의 느긋함도 보기 좋았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나의 삶, 나의 인생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 기자를 계속할지 아니면 또 좋은 기회로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국에서의 끊이지 않는 경쟁은 또 다시 나를 옥죄어 오겠지만, 따뜻했던 방콕의 그 여름밤과 풍경을 마음에 담고 또 한발한발 천천히 또 살아 가야지 어쩌겠나. 그래도 참 행복한 여름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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