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넷플릭스 화제의 예능 흑백요리사를 몰아보았다. '나는 가수다'가 떠오르는 프로그램이었다. 저런 대가가 직접 참가자로 나서 경연을 펼친다고? 저런 유명하고 뛰어난 요리사가? 백수저들은 서로 존중하며 예의를 표한다. 후배인 흑수저들은 그들을 우러러 본다. 그러면서도 대결을 펼칠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필살의 힘을 다해 미션에 임한다. 그들의 인생과 경험, 혼이 담긴 음식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심사위원 두명이 평가한다. 결과는 공정해보이고, 모두가 그에 승복한다. 매화마다 도파민이 터져서, 앉은 자리서 지금까지 나온 에피소드를 다 볼수 밖에 없었다.
경쟁이 체화된 한국인의 심리를 잘 활용한 프로그램 같다. 어찌보면 백수저 셰프들은 각자 분야에서 미친듯한 경쟁을 이기고 우뚝 선 이들이다. 그들이 스스로 경연프로그램에 참가해 경쟁에서 이겨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들에게 도전하는 후배들에게 본을 보인다.
후배들도 그들에게 예의는 표하되,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몸담고 있는 그 요리 하나로 선배에게 도전한다. 공정한 룰 하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 애초에 밀릴 줄만 알았던 후배 쪽이 대가를 꺾고 승리하는 그 역전의 드라마를 목도하며 우리 한국인은 너무나 즐거워 한다. 죽기살기로 자신을 내던져서 마치 목숨을 깎아내는듯한 그 치열하게 몰입하는 누군가에게 환호를 보낸다.
그럴때마다 아무리 경쟁을 잠시 내려놓고, 나 자신을 챙기자는 류의 노래와 책과 미디어가 쏟아져도 우리네 피부와 뇌 속에는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마인드가 새겨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유치원부터 초중고와 대학, 직장을 거쳐 결혼과 출산을 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일생은 그야말로 경쟁으로 점철된 삶 아니던가. 한번이라도 낙오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든 게 한국인의 삶이다.
나는 사회를 이끄는 세대가 바뀌면 일제시대와 남북전쟁, 보릿고개와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에게 각인된 이 헝그리정신이 사라질 줄 알았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민 생활이 나아지고 하면 죽기살기보다는 그저 살기 위해 경쟁을 어느정도 내려놓고 자신만의 웰빙 생활을 추구하는 젊은이가 많아질 것 같았다.
근데 또 아닌 것 같다. 요새 90년대~00년대생과 함께 일하고 대화하며 나는 이 젊은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서 오히려 선배 세대에 비해 더 단단해진 경쟁만능주의의 향기를 느꼈다(아예 삶의 의욕을 내려놓은 일부 청년들들은 제외하고). 이는 개인주의의 확산에서 비롯된 듯하다. 소속된 회사나 팀에 비해 자신이 더 드러나고 싶고, 자신의 성과를 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하는 그런 마음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신 그들의 마음 한편에는 손해를 절대 보지 않겠다는 생각도 자리잡고 있다. 이득이나 이점이 없으면 희생을 하려하지 않는다.
이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우리네 선배들을 보면 된다. 얼마나 말도안되는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는가. 다만 중간 세대인 나로서는 MZ의 말과 행동이 가끔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긴 있다. 아무튼 MZ들도 끊임없는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는 얘기다. 그들의 높은 자존심과 주체감,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으로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 논리를 걷어찰 줄 알았으나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특히 기자야말로 경쟁이 참 심한 직업이다. 매일 매일 성적표가 눈앞에 배달된다. 내가 단독을 하면, 다른 매체 기자들은 물을 먹고 경쟁에서 진 것이 된다. 나는 초년병시절 내일 다른 조간 혹은 방송, 통신에 내가 모르는 기사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공포가 너무 심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아무리 열심히해도 내가 모르는 정보는 너무나 많고, 매일 새벽 조간을 펼칠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다. 다른 일반 회사들도 엄청난 경쟁이 있겠다만 기자 직종은 기사 내용의 광범위함과 잦은 인사탓에 경쟁의 밀도가 더 두터운 것 같다.
이런 경쟁심리는 어느정도 도움이 되긴 했다. 남들이 안쓰는 기사를 써야지, 우리보다 큰 매체 기자들도 당황할만큼 재밌는 보도를 해야지.. 그러려면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남들이 만나지않는 사람도 만나야 한다. 근데 그렇게 하다보니 술도 많이 마시고, 건강도 나빠진다. 내가 100의 노력을 투입했는데 결과는 10정도도 안나오는 거 같다. 매일매일 심리적 긴장이 강하니까 불면증도 오고, 머리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고. 그 사이 회사에선 어느덧 중간관리자가 되어가는데 뒤돌아보면 또 이룬것은 없어 보이고. 경쟁이 동반하는 그 필연적인 불안감이 계속 사라지지 않고 나를 옥죄어 온다. 인사이드아웃2의 불안이처럼 통제 불능의 상황까진 오지 않았지만 난 언제까지 이런 상대가 보이지 않는 경쟁을 계속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요즘이었다. 친한 동료 기자나 후배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고.
누군가 보기엔 내가 경쟁에서 진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다. 최근 저녁 자리서 우리 회사를 떠나 더 큰 매체로 간 후배와 나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기자는 평판이 좋고 능력이 되어서 더 큰 매체로 스카웃 됐고,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기자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였다. 사실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후배는 원래 열심히 하는 친구였고, 아직도 자주 소통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근데 누군가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난 지난 12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출입처에서 놀고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체 파워를 떠나서 뭐라도 쓰려고 노력했고, 주요 매체가 내 기사를 받아쓴 적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하고 능력있으면 더 돈 많이 주고 영향력 큰 매체로 옮기지 그랬어요" 하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사실 언론사 입사 경쟁에서 어느정도 승리한 1등 신문, 1등 방송 구성원이라고 해서 모두가 1등일리는 없다. 매체 덕으로 연명하는 이도 많다. 오롯이 능력만으로 뽑히는 언론사도 아니다. 그저 지하철 2호선처럼 돌다가 걸리면 입사하는 이 언론 바닥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그럼에도 이직을 하면 잘났고, 남아있으면 못났다는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 이직한 후배들이 자랑스럽지만, 동시에 그들보다 못나다고 생각치 않음에도 그렇다.
만약에 인정받아 뒤늦게라도 더 큰 매체로 옮기면? 그 안에서 또 생존하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해야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 곧 40을 바라보는 지금에선 딱히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내 능력보다 더 오바하면서 관심을 갈구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다. 또 다른 경쟁의 판에 들어가지 않을거면 초연하게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가꿀 만한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또 내겐 그게 없어서 휘둘리고 하는 나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경쟁과 노력은 필요하다. 다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과 기준을 정해두고, 그 선을 넘었을때 내가 겪게 될 위험한 상황을 미리 인지하며 경쟁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 또 주변에서 부추기거나 비아냥대거나 하는 이야기를 한귀로 흘릴만한 여유를 갖고 내 자신을 좀더 사랑하는 마인드가 필요하겠다.
그렇게 겨우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내 마음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하나를 겨우 간직하게 되었다. 너무 남을 부러워 하지도 말고, 또 그래도 남이 부러워할 만한 나의 매력과 장점 한두개는 품으면서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 그렇게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경쟁공화국인 한국에서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 해도.
덧. 이렇게 경쟁을 매도하는 사람도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4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한 해결책으로 대입에서 서울 강남구 출신 학생들의 비율을 제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강남 출신 고교 졸업생이 국내 최고 대학에서 지나치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지역 지원자의 기회를 줄이고 있고, 치열한 경쟁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관보를 뒤져봤다. 이 총재는 배우자 명의로 강남구 역삼동 역삼래미안 아파트를 갖고 있다. 그는 자녀가 세명이다. 이들은 모두 해외 사립학교를 다녔고 이후 미국 사립대에 진학했다. 세명의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으로만 최소 2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가 한도 내에서 사랑하는 자식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는 게 뭐 잘못인가. 공직자라도 강남에 살면서 수십억원을 들여 자녀들을 해외 학교에 보낼 수 있다. 하나도 문제될 게 없다.
근데 그러면 가만히 있어야지. 짐짓 아는 척, 깨어있는 척, 산적한 현안의 해결사인 척 하면서 엉뚱하고 애먼 해법을 제시하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자신은 너무나 여유가 넘쳐서 아예 자녀들을 한국보다 경쟁이 덜하고 교육의 질도 훨씬 높은 해외로 보내 놓고선 경쟁이 모두를 망친다니.. 누구는 경쟁을 하고 싶어서 하느냐고요. 헬조선에선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을 안 하면 도대체가 살 수가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좋은 대학을 못 나와도 특기를 살려 고액의 연봉을 받는 다양성 넘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궁리해야지, 참 저렇게 감을 못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