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정말 안되겠다고 느낀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 내 마음대로 펑펑 쓰다가 집은 커녕, 노후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것 같은 위기감. 30대 후반, 너무 늦은 나이였다. 닥치는 대로 유튜브와 책도 찾아보고 재테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시드머니가 필요했다. 많이 돈을 넣는 만큼, 벌 수 있는 구조였다. 살고 있는 집 전세금을 제외하면 그저 수천만원. 시드머니가 부족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최대한 많이 넣고, 복리의 마법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내 자산을 늘리려면 지금의 행복을 미래의 것으로 치환해야 했다. 소비 욕구를 참아서 -> 차곡차곡 안전성 주식을 적립식 매수하는 식으로 늘려나가자는, 모두가 다 하고 있는 그 전략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소비 패턴부터 바꿔야만 했다. 카드와 은행 앱을 통해 지난 1년간 소비 내역을 뽑아봤다. 사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모두 평소 생활이 바쁘고 힘들어서 가계부를 쓰지 못할 거다. 걱정할 것 없다. 앱에 다 상세하게 하나하나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꼭 한번 주말에 시간내서 본인의 소비 패턴과 분야를 점검해보시기 바란다.
따져보니 나는 쓰지 않아도 될 돈을 너무나 많이 쓰고 있었다. 생활에 꼭 필요치 않은 돈이 무의식 중에 엄청나게 많이 나가고 있었다. 일단 그 항목부터 나눴고, 두 달간 해당 분야에는 최대한 돈을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른바 짠테크를 시작한 것이다.
짠테크는 짠돌이와 재테크의 합성어다. 소액 절약형 재테크를 뜻한다. 아주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아껴서 불리는 경제 습관을 말한다.
만약 내가 매달 1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라면? 굳이 짠테크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쓰고싶은 대로 쓰고, 남는 돈으로 저축을 하면서 살아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소득을 당장 확 올릴 수는 없다. 부업이나 투잡으로 돈을 더 벌지 않는 이상.. 사실 기자일 하면서 부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현재 버는 돈에 감사하면서 지출을 줄여서 그 돈으로 재테크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선 나는 이것부터 끊었다.
1. 택시
기자와 택시는 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수습기자 시절, 나는 하루에 20번이 넘게 택시를 타고 관할 경찰서를 돌았다. 너무 피곤해서 차로 운전을 해서 다니기도 애매했다. 당시 택시비는 회사에서 줬다. 근데 문제는 그 습관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사건을 취재하고 했는데, 택시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그 안락함에 젖어있다보니 기자들은 수습을 뗴고 나서도 택시를 많이 탄다. 직업 특성상 술자리가 많고, 밤 늦게 자리가 파하면 택시 타는게 일상이 됐다. 많을 때는 수십만원이 매달 택시비로 나갔다.
이제 나는 택시를 절대 타지 않는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할때와 퇴근할때 버스를 이용한다. 현장 취재를 갈때도 지하철이나 버스만 탄다. 그리고 저녁 술자리를 줄였다. 술을 마셔도 1차나 2차까지만 하고 오후 11시쯤 파하고 대중교통으로 귀가한다. 역이나 정류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조금 귀찮고 피곤해도, 어차피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밤 늦게 택시는 잘 잡히지도 않는다. 난 오히려 택시를 끊고 나서 건강을 얻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경제나 재테크 유튜브를 보며 나름 공부도 한다. 지출도 줄이고 건강도 얻고, 공부도 하니 일석 3조라 할 수 있다.
2. 세탁 앱
두번쨰로 끊은 것은 세탁 앱이다. 나는 세탁특공대를 썼다. 지난해 사건팀장을 맡고 있던 때, 출근이 새벽 5시였다. 또 매일 밤늦게 들어오니 세탁을 맡길 곳이 없었다. 그때 아주 유용한 앱이었다. 문 밖에 옷을 걸어두고 앱으로 주문하면, 수거원이 와서 걷어간뒤 세탁된 옷을 수일뒤 다시 걸어놓는다. 시간 없는 직장인에게 딱인 시스템이다.
특히 세탁특공대는 배민이나 쿠팡처럼 구독시스템도 운영한다. 매달 얼마를 내면, 세탁비를 깎아주거나 배송 요일을 자유롭게 조정할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나는 이 돈도 매달 냈다. 그런데 지출 내역을 보다보니 이게 생각보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외투나 바지 몇벌을 맡기면 금세 5만원을 넘겼다. 거의 매주 배송을 시키니까, 지출이 확 늘어났다. 그래서 직접한번 빨래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옷들은 드라이가 필요하니 별수 없다. 다만 나는 반팔이나 여름바지도 다 세탁 특공대에 맡기고 있었다. 대신 손빨래 세제와 세숫대야를 쿠팡에서 저렴하게 하나씩 사서 퇴근 이후에 빨기 시작했다. 빨랫대도 2만원 주고 하나 구입했다. 사실 별스럽진 않고 물을 받고, 세제를 풀어서 옷을 헹구는 정도다. 이후 세탁기에 넣고 탈수를 해서 빨랫대에 말리는 방식. 결과는.. 놀라웠다. 매달 18만원 정도를 줄일 수 있었다. 빨래를 하면서 음악을 듣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다.
3. 배달
나는 배달 마니아였다. 혼자 살기도 하고, 직접 요리하기도 귀찮아서 퇴근 이후나 휴일에는 주로 배달을 시켰다. 배달의 민족 앱을 썼고, 매달 구독료를 내면서 배송료를 면제받았다.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주로 먹는 음식은 보쌈이나 족발, 찜닭과 치킨, 삼겹살 류. 사실 배달음식은 대부분 기름지고 자극적이다. 건강에도 좋지 않다. 모두가 잘 알지만, 쉽고 맛있으니 배달을 찾게 된다.
나는 매달 평균 30~35만원을 배달에 쓰고 있었다. 이걸 끊기로 했다. 그럼 식사는? 인근 마트에 가서 야채를 사서 닭가슴살과 함께 샐러드를 해먹거나, 그게 아니면 그냥 귀가할때 집 근처 식당에 직접 들러서 먹기로 했다. 배달은 최소주문금액이 있어서 항상 많이 시켰다는 점도 떠올랐다. 평일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최대한 간편하게. 건강식으로 직접 만들어 먹거나 간단하게 외식.
그 결과 한 달 배달비가 3~4만원대로 줄었다. 가끔 너무 햄버거가 먹고 싶거나 할때 배달을 시키긴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1번 정도로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마트에 직접 들르니까 재료 원산지도 더 보게 되고, 함유 성분도 따지게 된다. 또 마트까지 가니까 운동도 된다. 결국 짠테크는 그저 지출을 줄이는게 아니라, 나의 생활습관 전반을 진단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4. 명품 비롯 사치품
나는 은근 명품에 관심이 많았다. 이상한 허세도 있었고, 남들이 하나씩 다 갖고 있으니 나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수에 맞지 않는 아이템이 몇개 있다. 100만원이 넘는 가방과 지갑이 있다. 또 냄새에 민감해서 향수도 자주 사 모았다. 근데 저렴이가 아니고 니치 향수가 대부분이었다. 바이레도가 있고, 딥티크와 크리드 등도 구매한 적이 있다. 40만원을 넘나드는, 내 월급으로는 과도한 아이템들이다.
이제 그런 아이템을 사지 않기로 했다. 집 없이 이런걸 사면 살수록 밑빠진 독 처지를 면치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명품들은 사실 자기 만족도 있지만, 남들 보는 눈치 측면이 크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남의 시선을 의식한 소비. 근데 이런 제품들은 하나 사면 또 하나 사고 싶어진다. 계속 사도 만족이 안 된다. 이제 좀더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고, 남보다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리기 위해 명품은 사지 않을 작정이다.
5. 해외여행
돌이켜보면 나는 입사 후 매년 여름과 겨울 휴가 마다 여행을 갔다. 국내여행도 몇번 있었는데 대부분 해외 여행이었다. 이런 심리였다. 안그래도 힘들게 일하는데 휴가 때는 외국을 가야지 그래도 뭔가를 했다는 기억이 남는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그렇긴 했다. 휴가때 빈둥빈둥 집에만 있으면 휴가가 너무 아깝긴 하니까.
근데 13년간 그렇게 지내다보니, 이제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공항가는 길은 여전히 설레지만, 여행을 못가서 죽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난 사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 나라에 직접 가서 1년 넘게 살지 않는 이상, 관광지 위주로 다니면서 딱히 엄청난 경험이 되지는 않을 터다. 비행기 값에 숙소 비용, 식비 이런걸 고려하면 100만원은 쉽게 깨지는데, 그 돈을 아끼면 미래의 나를 위한 초석이 될 것 같다. 대신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를 좀더 고민해야 겠다. 차라리 남들이 잘 안가는 조용하지만 실속있는 국내 여행지를 선택한다든가.
6. 목욕탕
어린시절 아부지는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우리 형제를 깨웠다.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간 목욕탕에서 아부지와 아들들이 나란히 앉아 때를 미는 광경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그런 우리를 많은 이들이 부럽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등을 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남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다.
그런 기억때문일까. 나는 목욕탕을 참 좋아한다. 기자가 되고 나서 매주 혼자 목욕탕을 간다. 주말에 가서 탕안에 몸을 누이고 스트레스를 푼다.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세신을 받았다. 때를 밀고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한주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근데 따져보니 이 비용이 꽤 나왔다. 세신이 2만원, 마사지라도 추가하면 4~5만원이다. 이걸 매주 받았으니 지출이 상당했다. 하지만 나는 목욕탕에서 힐링을 하고,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고 생각했기에 아깝지 않았다.
목욕탕 비용 1만원 정도는 낼수 있다. 하지만 세신은 굳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1000원짜리 이태리 타올로 해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주 목욕탕은 가되, 세신은 받지 않고 있다.
7. PT
사건팀장을 마치고 건강이 좀 악화됐다. 운동이 절실해서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아 PT를 등록했다. 근데 이게 또 비용이 상당했다. 매달 50만원 가량이 나갔다. 운동하는 습관이 들고, 몸도 좋아졌는데 너무 지출이 커서 몇달간 이어온 PT를 과감히 끊기로 했다. 대신 집근처 공원을 매일 한시간씩 걷고, 집에 둔 아령과 컬바로 운동을 한다. PT 자체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동력이 된다. 싫어도 돈냈으니 헬스장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PT를 받지 않는다면? 그냥 마인드 자체를 좀 바꾸면 된다. 여유있을때마다 나가서 걷고, 집에서도 아령을 하면서 넷플릭스도 보고. 결국 모든건 마음먹기 나름이다. 건강도, 절약도.
결국 돈을 아끼는 일은 단순히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습관으로 살고 있었는지, 무엇을 진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나둘 끊으니, 생각보다 내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돈이 남는 게 아니라 마음이 남았다.
처음엔 솔직히 불편했다.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배달을 줄이고 손빨래를 하며 살다 보니 귀찮고 피곤한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자 이상하게도 ‘살아있다’는 감각이 돌아왔다. 누가 대신해주는 편리함 대신, 내가 내 시간을 다시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지출을 줄인다고 해서 인생이 무조건 팍팍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니 진짜 내가 원하는 것들이 보였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에 시간을 쓸지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됐다. 그러자 하루하루가 더 명확해졌다.
이제 목표는 분명하다. ‘벌어서 쓰는 인생’이 아니라, ‘쓰면서 불리는 인생’으로 바꾸는 것. 늦었지만 괜찮다. 매달 자동이체로 투자금을 넣으며, 복리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자유가 된다는 믿음으로.
짠테크는 단순한 절약법이 아니다. 나를 단련시키는 생활의 리셋 버튼이다. 택시를 끊고, 세탁을 줄이고, 배달을 줄이면서 나는 돈보다 더 큰 걸 얻었다. ‘내가 통제하는 삶’이라는 감각. 언젠가 그 시간들이 모여 노후의 불안 대신 준비된 평안으로 바뀌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한 푼 한 푼을 아끼며 다시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