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나온 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김은혜 의원의 질문에 격앙되며 “공직자 아버지 둬서 평생 눈치 보고 부족하게 산 그런 딸에게 갭투자라니”라고 항의했고, 옆자리의 우상호 정무수석이 그의 마이크를 젖혀가며 말리는 모습까지 영상에 담겼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논쟁은 빠르게 퍼졌다.
맥락은 이랬다. 김 의원은 김 실장 딸의 전세자금에 대해 질문을 하던 중 김 실장을 향해 “이 정부가 말하는 일명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로 (김 실장은) 집을 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실장이 자신의 집에 대해 “갭투자가 아니다. 중도금을 다 치렀다”고 반박하자 다시 김 의원은 김 실장 딸의 전세 주택으로 화제를 돌려 “따님은 전세자금을 (부모가) 도와줬든, 아니면 (자신이) 모았든 (전세금을 토대로) 자기 집을 살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 실장이 “(딸은 주택) 보유 아니고 전세”라고 언급하자 김 의원은 “집을 살 수 있는 주거 사다리로 전세를 (보통)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런 의미로 지금 가 있는 게 아니다” “그 주택을 소유하려고 하는 갭(투자)이 아니다”라고 재차 반박했다.
김 실장은 김 의원이 “따님과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에 살라고 하고 싶으냐”고 말하자 발끈하면서 “제 가족에 대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 꼭 딸을 거명할 필요가 없다”고 항의했다. 김 의원과 김 실장은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서로 “역지사지해야 한다”(김 의원), “왜 가족을 엮느냐”(김 실장)며 설전을 벌였다.
우선 일단 김 실장의 자산부터 체크하자.
그는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를 갖고 있다.
김 실장은 세계은행 파견 근무 직전인 2000년, 재건축 조합원 입주권을 4억원에 사들였고, 지금은 재건축돼 시세가 30억원대에 이른다.
김 실장은 한동안 임대를 주다가 지금은 실거주하고 있다. 지난 10/15 대책 이후 서울지역에서 실거주가 의무화돼 이런식의 내집 마련은 힘들어 진 상태다.
그리고 김 실장은 딸의 아파트 전세금 3억 가운데 1억3000만원을 지원해 준 상황. 30억대 아파트를 가진 아버지를 둔 딸이라.. 별로 불쌍해 보이진 않는다.
날선 워딩 가운데 나는 김 실장의 "공직자 아버지 둬서 평생 눈치 보고 살면서 부족하게 산 그런 딸에게 갭투자라는 게 무슨 말씀"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재산 공개도 있고,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다가 청와대까지 간 아버지를 뒀으면 뭐든지 부담스러울 터다. 전세사는 사실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게 좀 민망할 수도.
사실 정책실장의 말 자체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공직자 가족이 겪는 불편함과 시선, 재산공개로 인한 생활의 노출, 혹시 부모에게 누가 될까 하는 압박은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직자는 사적인 영역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고 살아야 하는 자리다. 가족도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장면이 남긴 느낌은 달랐다. “우리 딸은 평생 눈치 보고 살았다”는 말은 공감보다는 거리감을 크게 남겼다. 가족을 거론하는 야당 정치인의 말은 불편하고, 예민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직자가 자신의 가족을 희생 서사로 꺼내드니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공직자의 가족이 겪는 제약은 때론 과도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를 선택한 사람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 구조적 현실이다. 군인 가족이 잦은 전출을 감내하고, 교사의 가족이 지역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처럼. 공직자의 가족도 국민을 섬기며 공공의 업무를 맡는 부모의 삶에서 파생되는 감내의 필요성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공직자는 그런 존재다. 그만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김 실장은 행정고시에 합격해 평생 공직생활을 해온 사람이다. 오늘 발언은 수십년간 공무원 생활 가운데 느꼈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폭발한 데 따라 터져나온 이야기었을 터다. 공직자를 떠나 아빠로서, 딸의 일거수일투족이 공식석상에서 거론되는 게 불편했을 수도.
하지만 정부의 대출규제로 부동산 시장이 혼돈을 겪는 상황에서 김은혜 의원의 질문은 사실 그다지 도를 넘는 발언처럼 들리지 않는다. 부동산 폭등이 이번 정부의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번 대출 규제로 인해 박탈감을 느낀 젊은 층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성난 모습의 정책실장에게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저 저렇게 멘탈이 약해보이는 사람이 우리나라의 각종 정책을 총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부터 든다. 그냥 저희 딸은 갭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저런 정쟁 하루이틀인가. 그만큼 부동산 문제는 전 국민, 특히 청년의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경은 여러차례 반복돼 왔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자녀 입시 문제가 나오면 “아이를 그만 괴롭히라”고 했고, 부동산 논란이 터지면 “가족이 고생한다”는 말이 붙었다. 일부 정치인은 후원회 논란에서조차 “배우자가 억울해한다”고 했다.
근데 공직자의 가족이 누리는 사회적 혜택이나 구조적 안정성은 말하지 않은 채, 그들이 겪는 불편함만 강조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전세대출 예산, 갭투자 여부, 청년 주거정책에 관한 정책적 질문이었다. 그런데 정책 토론 과정에서 “내 딸은 평생 눈치 봤다”는 말이 튀어나오자 논점은 흐려지고 개인의 가족사로 치환됐다.
국민이 진짜 듣고 싶은 건 청년들이 앞으로 어떻게 집을 살 수 있을지, 그리고 보다 쉽고 안전한 전세를 어떻게 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다. 공직자의 딸이 얼마나 조심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로서 감정이 올라올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평생을 조심하며 살아온 김 실장의 딸보다 훨씬 더 힘들고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주거푸어 청년들이 이 나라엔 훨씬 많다.
그리고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바로 그 청년들, 나아가 모든 국민을 위한 양질의 주거 정책을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정책 책임자가 개인적 사연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주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듣고 싶어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직자는 공적인 책임을 맡은 자리이기 때문에 가족에게까지 영향이 미치는 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가혹하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직자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정책의 언어로 대답해야 한다.
“우리 딸이 고생했다”는 말보다 “청년 대출이 줄지 않았다면 수치로 설명하겠다”는 답이 설득력을 얻는다. “가족을 왜 건드리냐”는 말보다 “갭투자 여부를 객관적으로 밝히겠다”는 태도가 신뢰를 만든다.
이번 장면은 공직자의 감정과 가족 서사가 어디까지 공적 논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서사를 사용함으로써 공직자가 국민과의 거리감을 좁히는지, 오히려 벌리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국민은 공직자 가족이 감내하는 눈치를 불쌍하게 바라보길 원하지 않는다. 그 자리가 갖는 무게를 인정하되, 공직자가 그 책임을 감정이 아닌 정책으로 설명하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가족에게 미안하다면, 선택지는 분명하다. 공직을 내려놓고 온전히 딸 곁을 지키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과 커리어는 그대로 유지한 채, ‘딸이 불쌍하다’는 말만 앞세우는 건 모순일 수밖에 없다. 책임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으면서 동정에만 호소하는 태도는 설득력을 잃을 수 밖에. 멘탈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큰일 하려면 멘탈부터 단디 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