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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호 Veilpale Sep 02. 2015

동생이 가버렸다. 장사치의 쩔그렁거리는 소리를 남기고

우리 모두 매일 뭔가를 팔아넘기며 산다.


Fiction.




  .  . 


폭풍처럼 속에 담긴 말을 쏟아놓고, 수치스러울  하건만 뻔뻔하게 악을 친 뒤 문을 닫는다. 이번만큼은 그애의 그런 수법이 통하지 않았다. 도를 넘은 것이다. 집 주인 되시는 정 여사께서는 점잖은 대화가 먹히질 않자 방 문을 몇 번 발로 '까셨'다. 방 문을 닫고, 마치 공부하는 척 가만히 침대 위에 담 있으려니 목구멍이 근질거렸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바둑에서 훈수 두기, 지나가는 젊은 애 보고 혀 차기, 목불식견의 사기꾼을 보고 제 삼자가 핏대를 올리는 그런 일. 따지고 보면 나도 완벽한 제 삼자는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에 끼어들 만한 정당성은 딱히 없었다. 정말로 미묘한 이었다. 가끔 상황이 지나치게 격해질 때, 혹은 내 동생의 말이 도를 넘었다 싶을 때 나는 가끔씩 신경질을 부려 주면 되었다.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네, 하고.

 애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성의하고   내세웠다. 어쩌라고. 누나 넌 빠져. 문을 박차고 나가 저 망할 자식의 양 뺨을 짝짝 싸돌린 뒤, 도서관에 가겠어요! 하고 앙칼지게 말하고 뛰쳐나가면 정말 죽여주는 그림이 될 텐데. 아쉽게도 나는 몇 마디 더 날카롭게 쏘아붙인 뒤 몸을 둥글게 말 수 밖에 없다. 

이곳은 전시 상황. 마치 라디오에 귀를 대고 숨죽이는 통신병처럼, 나는 방 문 너머 펼쳐지는 사건에 귀를 기울인다. 이것이 내 인생에 분기점이 될 것이냐, 아니면 여태까지의 많은 전투처럼 그저 소모전으로 흐지부지될 것이냐. 과거의 전투 경험을 되살리며 미래 상황을 점쳐보았다. 안타깝지만, 동생의 승산은 별로 없다. 엄마는  때처럼 에너지가 남아돌지 않았고, 저 애는 피해 의식에 머리가 미쳐 돌 . 오래 되어 왔던  , 인가가  이토록 망가지게 했다는  증거를 정 여사님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헐벗은 과거의 유산 멀리 치워버리는   남지 리라.  이제 기묘하게 변색되어 버린 억과 최악의 마지막을 남기고 겠지. 역시 하수는 이런 데서 티가 나는 법이다. 저 애는 아직 뭘 모른다. 가엾고 가엾은 내 동생. 가끔은 영악할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거늘. 




나는 눈을 감고, 좀 있으면 떨어질 원자 폭탄의 카운트를 쟀다. 리틀 보이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너, 아빠한테 가.


최후의 수단. 교섭 결렬, 협상 결렬, 회담 결렬에 싸움의 종지부였다. 될 대로 되라. 나도 이제 저런 거 몰라. 암담한 심정으로 나는 이불에 고개를 파묻었다.
제 3국의 비통함이란 미묘한 것이었다. 나는 껄쩍지근한 안정을 만끽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로 유쾌하다고는 말 못한다.





미적분을 조금 깔짝거린 뒤, 배를 깔고 누워 아이들과 시덥잖은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애들은 애써 저번 사설 모의고사 이야기를 피했다. 사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생각해서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대면을 하지 않는 게 이득이다. 비참할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 된다.
대신 단톡은 잘생기고 헐벗은 남자 연예인들의 사진과 치킨 피자 닭발 등의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나는 가끔 끼어서 같이 발을 굴렀고, 같이 꺅꺅거리고 헉헉거렸으며 또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학교에서 열네 시간 가량을 같이 보낸 뒤라도 할 말은 많았다. 서른 명이 한마디씩만 해도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풍요로웠다.

지금 한창 단톡에서는 누군가가 엄마와 싸우고 도서관 화장실에서 울고 있다는 하소연을 푸는 중이었다. 나는 내 동생에 대해서 언급하려다 손을 멈추었다. 쓸데없는 이야기. 우리는 충실히 저 애를 위로해 주면 되는 일이다. 한시라도 빨리 털고 일어나 징징거림을 멈추고 공부나 하기를. 손은 충실히 자판을 뛰어 놀았다.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다.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손에 쥔다. 바로 옆에 침대가 있었지만, 매끄러운 정석 종이에 얼굴을 모로 대고 누웠다. 교과서 종이는 개기름 돌면 얼굴에 들러붙을 것처럼 싸구려더니만 사제 자습서 종이는 질도 좋아요. 질도 좋아 문제도 어려워 실력 정석. 저 종이의 부드러움은, 수학에 지쳐 세상을 저주하며 잠을 청해 본 사람만이 절실히 느낄 것이다. 이것은 홍 모 씨의 아름다운 배려임이 틀림 없었다. 한바탕 욕을 하고 싶었다.
알고 있다. 사실 고마우신 분이다. 전국의 고등학생을 어엿삐 녀기시는 분이니까. 풀어도 풀어도 문제가 산더미처럼 있지만 그래도 계속 풀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과 섀도우 복싱을 한다. 정말로 아쉬운 건 나다. 대학교 입학하면 다시 안 볼 책들이다. 다시 안 올 시간들이다. 더럽고 짜증나고 억울하지만 알고 있다. 나중엔 그 때가 좋았지 하고 중얼거릴 것이라는 사실을.

샤프를 탁탁 치며 생각했다. 이 사건의 분기점 또한,  인생의 핀 포인트가 될 것인가?



 영양가 없는 위로를  위해 떠벌 정도로 가벼운 사건이 아니다. 이혼가정이 널리고 널린 건 사실이다. 이쯤하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도, 아빠 대신 엄마를 택한 다섯살 나의 선택이 천운이었다는 것도 맞다. 이 삭막한 삶 상기된  어떤 실로도 풍요로워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애석할 뿐이고, 그렇기 남들이 알길 원치 않는다.    . 원망이나 방황할 의는 없었다. 시끄럽게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공부가 바빠서 그래요, 공부가. 난 이미 머릿속이 충분히 복잡했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겪는 것은 피곤했다.
내 성적이 엄마를 뿌듯하게 할 지언정, 과거 우리가 겪었던 그 수많은 싸움과 지난한 역사를 덮지 못하는 것처럼.      .    .
이게 대한민국 학생의 숙명 때문인지, 아빠의 죄악 때문인지, 아님 나의 사춘기나 엄마의 인내심 부족 때문인지 알지 못하겠다. 왜 모를까. 생각하는 것이 피곤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나는 어쩌면 타협하는 법을 배운 걸지도 모르겠다. 기쁘지 않은 공부를 해도 괜찮고 아버지의 얼굴을 혐오 괜찮고 경멸하는 아이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연기해도 괜찮고. 인생은 타협의 과정이며 포기의 연이었다. 타협하지 않았더라면 도태되었을까. 나도 동생처럼 아빠에게 쫒겨가 진저치며 또 세상을 미워하며 살게 될까. 그 애의 삶의 태도는 종래엔 아버지조차도 슬그머 모른체하게 만들 것이다. 아버는 인격자가 못 되므로. 그야말로 어머니가 역겨워하던 이기적인 현대인의 표.


 그를 싫어한다. 가끔 그는 지나치게 많이 포기. 그 대신 얻는 돈, 명예, 인맥 따위를 못 견디게 좋아했으니까. 나와 동생을 목숨바쳐 사랑한다고 속삭일지언정, 용감하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랑이 맹목적이지만 일차원적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알아야 했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꼬여 넘긴 , 그리고 때론 사과  와도 같은 지독한 혼을 가졌다. 타고난 사업가였다. 그는 거래를 참 잘했다. 스스로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보냈다는 사실에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애를 잡지 않았던 것을 떠올린다.

상야릇 깨달음 잉크가 번지듯 번져 나간다.

덜컥 겁이 났다.


아, .


눈을 감았다.

눈꺼풀 속에서 희미한 장사치의 소리가 들려왔다. 비열한 내가 손 안의 또다른 장물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이제 뭘 팔 테냐? 나는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게 가슴을 눌렀다. 나서야 할 때에 나서지 못한 죄, 그러한 죄목이 없기를.    .

속이 쓰리다. 밤을 샌 탓인가 보다.

토를 실컷 하면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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