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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Tech May 21. 2020

Side view mirror

오랜 시간 무언가가 결핍된 채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본다. 그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런 이들을 접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언사나 행동에서 일정한 패턴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런 패턴을 캐치했다 하더라도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작 당사자만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판단할 때 과거를 먼저 되짚어 보는 편이다. 지금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믿기 전에 먼저 그가 살아온 자취, 써 내려온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그의 현재와 미래를 점치는 방식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고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똑같은 실수를 자주 반복했던 이는 동일한 실수를 다시금 되풀이할 확률이 높을 것임은 물론, 그때 그 상황의 분위기를 읽지 못했던 이는 앞으로도 당분간, 아니 사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전히 그 분위기를 읽지 못할 것이다.


나 자신을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나온 발자취는 어떠했나?’,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은 지금 어떻게 되어있는가?’,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은 어디로 갔나?’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부분부터 생각을 되짚어가다 보면 그 자체가 결국 나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물론 이 중에도 의도하거나, 인지조차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겠지만 말이다.


주관적이지 않고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은 채 자신을 판단하고자 할 때가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 자동차를 운전 중 좁은 골목을 만났을 때. 내 차량의 너비와 비슷해 보일 정도의 골목 앞에서 우리는 속도를 줄이고 눈 대중으로 내 차와 벽 면의 거리를 잰다. 때때로 차량 앞에 거리를 확인해 주는 이가 있다면 타이트한 그 간격을 “더 와도 돼.”라던가 “이제 그만.”과 같은 표현으로 내 차체와 벽면 간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몰고 있는 차량의 크기이지만 운전하고 있는 나보다 밖에서 바라보는 타인이 더 정확히 바라보고 판단해주는 것이다. 때때로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못 미더워 ‘아직 한참을 더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왜 그만 가라고 하지?’,  ’더 가면 닿을 것 같은데 더 와도 된다고?’와 같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면 그때가 바로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 타인의 시선과의 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양방향의 시선을 모두 모아 정확한 결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과거이며 역사이고, 사이드 미러로 바라보는 이미 지나온 골목 길이라 할 수 있다. 사이드 미러로 골목길과 내 차체의 간격을 판단할 수 있을 때는 이미 내 차량이 일부 그곳을 지나온, 말하자면 지나간 과거가 된다. 차량의 진입 전부터 그 간격을 정확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아쉽게도 이 전에는 그 간격을 어림잡아 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판단 여부에 따라 때때로 걱정했던 것보다 여유로운 간격을 유지하며 골목길을 통과하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반대로 벽 면에 차를 긁는 사고를 겪을 수도 있다.


결국 그때가 되어 후진을 한다 해도 내 차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내 차의 역사로 남는다. 지금 내 옆구리에는 어떤 흔적이, 어떤 역사가 남아있을까.



PUBLISHED : November.2013 by MOTF https://motwofeet.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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