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상담의 덫
정신과를 찾아가게 된 것은
사실 상담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가장 컸다.
어느 순간부터 상담선생님은 내게 집단 상담을 권했다.
내가 거절해도 계속 집단 상담을 권했다.
어느 샌가 이 집단은 그저 집단 상담을 위한 곳인가 싶었다.
집단 상담은 기간도, 비용도 더 들었다.
나는 단호하게 집단 상담을 거절했지만,
나에게 자꾸만 화를 내러 가야한다고 했다.
부산으로 한 달간 일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상담을 그만둘 기회가 생겼다.
나는 한 달간 상담을 그만둬야할 것 같다고 상담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어하면서도
다녀오면 집단 상담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순간을 잘 넘어갔다.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부산으로 떠나고 얼마 뒤,
상담선생님은 내가 걱정이 된다며 연락이 왔다.
같이 밴드를 만들어서 거기다가 내 소식을 전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나를 이렇게까지 케어해준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면 얼마 내면 되나요?
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이건 그냥 가볍게 하는 거니까
다녀와서 집단 상담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자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집단 상담의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밴드를 개설하고,
너무 괴로울 때, 두어번 글을 썼다.
거기에 상담선생님은 우는 이모티콘 같은 것들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밴드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백번 상담을 받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더 회복에 빨랐다.
매일 같이 보내니, 매일 같이 맛있는 것을 찾아 먹었고,
매일 같이 머피를 마셨고, 매일 수다를 떨었다.
가끔은 맥주와 과자를 먹기도 하고, 바닷가 카페를 가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부산에서의 생활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소중했고, 고마웠다.
다시는 상담센터엔 다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센터에서는 한번도 좋은 경험이 없었다.
횟수를 더해가면 해결될거라는 말은 그냥 말일 뿐이었다.
잔고가 바닥이 날수록, 상담에 더 기대하게 되고 더 실망했다.
더이상 상담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경계선 인격 장애라고 진단하고 있었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말 앞에 좌절하고 있었고,
나는 끝끝내 이모양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슬펐다.
내겐 나아지는 게 너무나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아지기 위해서 책을 찾아보고,
유튜브에도 검색해보았다.
그러던 와중에 유튜브를 통해서 다른 정신과를 접하게 되었다.
정신과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정신과 의사들이 만든 유튜브라고 했다.
그 전에 보던 정신과 유튜브보다
더 일상적이었고, 더 소박한 느낌에 끌렸다.
지난번에 받은 정신과에 대한 거절감을 넘어,
이번엔 뭔가 내가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주었다.
나는 부산의 삶을 끝내고 싶지 않으면서도
얼른 빨리 병원의 진료를 받고 싶었다.